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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ach Soojin Dec 11. 2022

승부의 세계

농구로 배운 즐겁게 승부에 임하는 자세

나는 늘 내가 승부욕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외동으로 자라서인지 모르겠으나, 어려서부터 경쟁이 과열된다 싶으면 슬쩍 발을 빼는 성향이었다. 게임이나 오락실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승자나 패자가 되기 보단 기권을 택하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나이가 들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적당히 나의 전력과 게임의 법칙을 재는 법을 배웠고, 치열한 경쟁이나 패배의 좌절이 예상되는 길은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았다. 싸우기는 싫고 지기도 싫은 딜레마 가운데 승부는 나에게 가급적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피할 수 없다면 결코 즐길 수는 없는 그런 것이었다.


농구를 시작한 이후로 안선생님의 말씀은 늘 옳다.


그런 나에게 농구는 처음으로 피할 수 없는 승부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처음에는 공을 갖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집단 공놀이' 수준을 면치 못했지만, 조금씩 기본기가 쌓이고 룰을 익히면서 팀을 나눠 게임을 뛰기 시작했다. 방방 뛰며 아드레날린을 뿜어낼 때와 달리 게임을 시작하면서는 다소 감정이 복잡해졌다. “발렸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통감할 수 있었다. 난 사력을 다해 속공을 시도하지만, 번번히 골대 앞에서 추월당하고 만다. 간만에 온 슛 찬스에 큰 맘 먹고 쏘자마자 블로킹 당하기 일쑤다. 점수 차는 벌어지고 내 패스는 내가 봐도 별로다. 살면서 내가 이렇게 못하는게 있었을까 참담한 심정이다. 패배에 화려하게 기여한 날에는 이렇게 못하는 걸 왜이리 열심히 하고 있나 현타가 오기도 한다. 미엔 연습을 하는 일요일에는 월요병이 아닌 농구 자괴감에 잠이 안오는 밤도 있었다. 매주 2시간 연습 중 1시간은 기초 훈련을 하고, 나머지 한 시간은 게임을 뛰었는데 나는 사실 모두가 싫어하는 기초 훈련 시간에 더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농구가 그저 집단 운동이 아니라, 팀으로 하는 경기라는 걸, 승부가 없는 경기는 있을 수 없다는 걸 농구를 시작하고 한참후에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2013년 12월, 외부팀과 게임. 변변한 유니폼도 없이 허둥대는 모습이 역력하다.


미엔이 제법 농구스러운 플레이를 하게 될 때 쯤, 외부 팀과의 대전을 할 기회들이 생겼다. 지금도 많진 않지만 당시에 여자 아마추어 농구팀은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였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미엔에겐 다 범접할 수 없는 실력의 팀들이었다. 이런 미엔에게 (우리가 일방적으로…) 라이벌이라 생각하는 팀이 있었다. 다른 팀들은 선수 출신도 있고 베테랑들이어서 감히 견줄 수가 없었는데, 우리와 같이 유일한 신생팀이었던 J팀은 그나마 견주어 볼 만하다 싶었던 것 같다. J팀과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마치 한일전이라도 치르는 국가 대표들처럼 비장함이 흘렀다. 그날의 긴장감이 지금도 생생하다. 패배를 원통해하는 우리를 보며 감동님은 너네가 아쉬워하는 이유조차 모르겠다는 반응이었지만, 우리는 매우 진지했다. 그 이후로 오랜 기간 동안 우리의 목표는 1승이었다. 꼭 이기고 싶었다. 나는 포기할 수 있어도, 미엔이 포기할 순 없었다. 나에게 없던 승부욕이 생긴 것이다. 하필이면 농구에서 말이다.


영광스러운 첫 대회 출전 (좌측 뒷줄에서 꼴찌를 하고도 유난히 해맑은 미엔 멤버들)


농구 빼고 다 잘했던 미엔의 철저한 게임 분석


이기고 싶다는 마음은 생각보다 꽤나 쓸모가 많았다. 포기하기를 포기하고 나니 못해도 열심히 해야할 이유가 생겼다. 출근 전 평일 새벽에 자발적으로 모여 농구를 하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손이 까맣게 되도록 드리블 연습을 했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보였던지, 동네 공터에서 혼자 연습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차를 세우고 다가오시더니 체대 준비하냐며 드리블 연습 방법을 알려주시는 해프닝도 있었다. 퇴근 후 한강에서, 멤버의 결혼식 후 대학교 야외 코트에서, 지하 주차장에서 정말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모여서 연습했다. 대부분의 멤버가 극초보였기 때문에 서로의 작은 성장이 그토록 기특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밑도 끝도 없는 열정을 사랑했던 것 같다.


평일 저녁에 한강에서 연습을 하기위해 가장 먼저 퇴근하는 멤버가 먼저 가서 골대를 맡았다.
휴가를 갈 때, 출근을 하면서도 반드시 농구공을 챙겨가며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미엔


그 이후로 수많은 패배와 가뭄에 콩나듯 간헐적 승리를 맛보며 우리는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포기하지 않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력한 결과 결국 팀 결성 2년만에 여자 농구 자율 리그 플레이오프에 공동 4위로 진출하는 쾌거도 거두었다. 미엔의 올드멤버 인애 언니의 포스팅에서도 그날의 감동이 생생하다.



나는 이기려고 하는 모든 것은 재미가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농구는 나에게 이기려고 하는 마음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가르쳐 주었다. 아마 그건 팀과 함께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지부진한 실력에 끝이 안보였던 연습도 같이하면 늘 웃기고 즐거웠다. 성장의 기쁨은 혼자일때보다 나누었을 때 백배 천배 더 컸다. 실책을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좌절하고 포기할까 서로를 독려하고 일으켜 주었다. 이들과 함께 하니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더 이상 부담스럽거나 압박스럽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승부에 진지했고,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실패에 좌절하지 않게 되었다. 농구는 그렇게 나에게 즐겁게 승부에 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런 팀워크의 교과서적인 진리를 늦으막히 시작한 농구에서 배우리라 누가 알았을까. 누군가는 (사실 이 글을 먼저 읽은 남편이..) 국가 대표라도 출전한 것 같다며 웃을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농구는 그렇게 나를 바꾸었다. 그 여정을 함께해주었던 멤버들과 그때 그 미엔을 흥쾌히 상대해주신 모든 멋진 여성 농구인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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