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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벤자민 Dec 19. 2022

빌런과 히어로, 그 사이에서.

농구가 알려준 '팀 플레이' 의 의미

나는 빌런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팀 활동에서 무언가를 망치는 주범이 된 적은 없었다. 혼자보다 여럿을 좋아하는 나에게 팀 활동이란 ‘있는 그대로 즐기면 되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늘 스스로가 팀으로 있을 때 좀 더 시너지를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농구가 끌렸던 것도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닌 같이 하는 ‘팀 스포츠' 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사교성과 적극성을 겸비한 팀원이면서, 많은 순간에 팀의 리더를 맡기도 했다. 농구를 하기 전 까지는.


농구 게임에서 난 완벽한 빌런, 아니 빌런 생성기였다. 표현할 말이 없지만 비유하자면 그랬다. 왜냐하면 난 망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게임을 망치고 있었으므로. 농알못인 내게 농구는 몇 가지 단편적인 행위들로 기억에 남아있었다. 이를 테면 저 멀리에서 쏴서 들어가는 슛, 누군가 뛰어들어가 넣는 슛, 그리고 골대 밑에서 넣는 슛. 그렇다. 모두 슛과 관련된 것 뿐이었다.


나는 농구가 슛을 넣는 게임이라고 이해했고,

되도록이면 슛을 쏘기 쉬운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슛을 넣는 것. 이게 농구 아닌가요?  - 농알못 시절의 나


그렇게 난 늘 슛을 쏘기 좋은 자리를 잡아 전신주마냥 짱박혀 있었다. 때로는 림 밑에, 때로는 자유투 라인에. 프로리그에는 공격자가 페인트 존* 내에 3초 이상 머물면 안되는 룰이 있지만 동호회에는 없었기에, 룰 위반이라는 것도 모른 채 골대 근처에 전세를 낸 나는 항상 의아해했다. 내가 이렇게 골대와 가까운데 수비가 나에게 붙지 않아 의아했고, 내가 이렇게 골대와 가깝고 수비도 없는데 패스가 오지 않아 의아했다. 아니 설마 신입이라고 패스를 안 주는, 뭐 그런 건가?


그 의아함이 부끄러움으로 바뀌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페인트 존(붉은색 영역). 초창기 농구 시절의 나는 페인트 존 단골 손님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가만히 서 있던 내게, 누군가의 “움직여!!” 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 날 따라 그 소리가 마치 나를 향한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조건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슬로우 모션처럼 나에게 수비가 붙었고, 수비가 움직여서 생긴 공간으로 우리 팀원이 파고 들었고, 그림처럼 골이 들어갔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움직였기 때문에 기회가 생긴 것을 알았고, 동시에 ‘움직여' 라는 말의 의미도 깨닫게 되었다. 움직이라는 것은 슈팅에 유리한 장소를 찾아 혼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팀의 공격 찬스를 만들기 위해 ‘공간' 을 만들어 주라는 것이었다.


환호하는 멤버들 사이에서 나 혼자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 때부터 나는 허겁지겁 비어있는 곳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였다.

거짓말처럼 공격의 기회가 생겼고, 거짓말처럼 나에게 패스가 오기 시작했다.


농구의 공격은 수비를 움직이게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수비를 움직이게 하려면 공이 움직이거나, 공격하는 사람이 움직여서 수비수를 흔들어야 한다. 컷인 플레이, 픽앤롤, 픽앤팝** 같은 농구의 공격 개념은 모두 나의 자리를 이탈하여 움직이는 것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을 전혀 모르더라도, 농구가 ‘내가’ 슛을 넣는 것이 아닌 우리 팀이 슛을 넣을 ‘기회' 를 만드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다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볼을 돌릴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팀 플레이 라고는 공모전에서 상을 타기 위해,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서만 해 보았던 나에겐 이러한 센스가 전혀 없었다.


그 날 이후 빌런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나는 농구를 다시 정의하게 되었다.

농구는 슛을 쏘는 스포츠가 아닌, 5명이 한 팀을 이루어 공을 운반하며 기회를 만들고, 한 명이 골을 넣어 마무리 하는 스포츠라고. 


농구의 공격에는 ‘24초' 라는 공격 시간이 주어진다. 우리가 중계에서 숱하게 보는 인상 깊은 슛 장면은 겨우 ‘2초' 에 해당한다. 90% 에 해당하는 나머지 시간 동안, 모든 팀원은 악착같이 움직이고, 패스를 하며 기회를 찾아낸다. 수비도 마찬가지다.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내 영역 또는 나의 전담 플레이어를 마크하지만, 때로는 다른 수비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움직이기도 한다. 이렇게 5명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때 비로소 ‘팀' 처럼 플레이하게 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 팀플레이는 초보자나 아마추어 팀이 구사하기에는 난이도가 꽤나 높다. 하지만 동시에 농구를 계속 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매력이 되기도 한다.


**컷인은 공을 갖지 않은 선수가 수비를 제치고 뛰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픽앤롤, 픽앤팝은 설명 참고


[영상] 농구의 패스플레이 영상. 농구의 티키타카는 황홀함 그 자체이다.

출처 : https://youtu.be/tKjXT1mMhtQ


몇 달 후 누군가에게 ‘움직임이 좋았다' 라든지 ‘패스가 좋았다' 는 피드백을 듣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농구를 하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그 피드백은 속공이나 3점슛을 성공했을 때 보다 훨씬 더 기분 좋은 기억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더불어 이렇게 합을 맞추어 결과를 만들어내는 팀 플레이에 대해 체감한 후로는, 농구 뿐만 아니라 일을 하는 나의 태도도 달라지게 되었다. 빛나는 결과와 성과를 위한 2초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그 과정에 해당하는 90%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농구의 팀 플레이를 이해한 뒤로는 일을 좀 더 상호작용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었고, 과정에서의 유기적인 협업이 보장된다면 결과는 대부분 좋게 나온다는 것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능력이 좋지만 이기적인 플레이어보다 자신의 능력으로 다른 팀원을 드높일 수 있는 팀원들이 궁극적으로는 팀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개인의 성과는 화려하지 않더라도 팀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구별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때부터였다.  


농구의 세계에는 히어로가 없다고 생각한다. 스타 플레이어는 있을지언정 ‘혼자 하는'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히어로는 꿈도 꾸지 않았지만 어쨌든 농구를 ‘잘 하고’ 싶었던 나는 우습게도 그 욕심 때문에 한참을 빌런으로 지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스스로 깨닫도록 지켜봐주고, 끝없이 함께 뛰어준 미엔 덕분에 지금은 빌런도, 히어로도 아닌 ‘팀 플레이어' 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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