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대 후반의 운동.
이제 서른아홉을 2년 앞둔 나는, 올해 상반기에 <서른 아홉>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서른 아홉>은 막 마흔을 앞두고 있는 세 친구들의 워맨스, 인생 중반 (물론 서른아홉도 평균 수명을 고려했을 때엔 한참 전반전에 가깝지만) 에 다다라서 다시 되짚게 되는 삶의 의미, 죽음에 대해서 가볍지 않고 차분히 다루어내고 있다.
드라마 인트로 부분에 손예진, 전미도, 김지현님의 서른아홉을 스케치하는 장면에서 특히 와닿는 한 장면이 있었다. 등산을 하려고 모인 셋. 등산화부터 옷, 그리고 등산용 지팡이까지 온갖 아이템으로 중무장을 하고 와놓고 막상 오르기 전에 “우리 신중해야 해. 나 어제 골프 치고 나서 발목이 안 좋아.” 라고 손예진이 말하자, 1초 만에 전미도가 “그래? 그럼 백숙이나 먹을까?”라고 하면서 행선지를 바꾼다. 그들은 산에 결국 올라가지 않고 산 밑에 있는 백숙집에서 회포를 풀며 시간을 갖는다.
아, 몸의 컨디션을 보며 운동을 미리 취소해야 하는 삶이라니. 그게 서른일곱의 내가 겪고 있는 상황과 똑 닮아있어서 너무 공감되고, 한편으로는 슬프기도 했다. 골프와 등산 모두 부상의 위험이 낮고, 나이 들고 60대 이상에서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의 마지막 종착지(?) 같은 운동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서도 몸을 사리고 있는 서른아홉의 세 친구들. 정녕 내 2년 뒤의 모습은 저 모습일까?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경로로 부상을 입게 된다. 킥보드를 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짐을 나르다가 허리를 삐끗하기도 하고, 하루 종일 사무직으로 앉아서 일을 하다가 터널 증후군이 오기도 하고. 하지만 부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쩐지 운동하다가 다친 것으로 단어가 재정의된다. 운동하다가 여러 번 다친 나로서는 그때마다 병원에 가거나 일터에 상황을 이야기하는 게 조금은 부끄러웠었다.
나의 첫 기념비적인 부상은 농구를 하다가 코 뼈가 부러진 사고였다. 때는 2017년, 농구 5년 차. 어느 정도 팀도 안정화되고, 다른 농구팀과 친선경기도 많이 하던 때. 팀 내 연습경기 중 수비를 무척 낮게 하다가 머리를 든 상대방에게 부딪혀 코 뼈가 부러졌다. 때아닌 성형수술을 하고 코 뼈를 다시 굳히는 과정은 2-3주 정도 걸렸었다. 참 크고 심각한 부상이었네, 라고 느낄 텐데 막상 코 뼈가 부러졌을 때엔 외형적으로 멍이 들거나 한 것이 아니어서 그 누구도 내가 말하기 전에는 먼저 눈치채지 못했었다. 그래서 약 일주일간 자리를 비워야 했을 때, 회사에 농구하다가 코 뼈가 부러졌다는 것을 설명하는 게 너무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아프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게 왜 부끄러웠을까? 그건 아마도 내가 스스로 ‘코 뼈가 부러질 정도의 심각한 부상은 프로 선수들에게나 어울리는 격한 부상'이라는 인식이 있어서였던 것 같다. 수술대 위에 누워있을 때 의사들이 “선수세요?”라고 질문도 해서, 운동을 하다가 무거운 부상을 입게 될 경우에는 그를 수반할 만한 직업적 무거움이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도 더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나는 큰 부상을 입을만한 운동 프로페셔널이 아니다. 그래도 운동을 꾸준히, 계속하고 싶다. 코뼈 수술 이후, 농구에 소소하게 복귀한 뒤 몇 번 얼굴에 공을 다시 맞고는 눈물을 머금고 다른 운동들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 시작한 건 농구 이전에 했었던 실내 클라이밍. 클라이밍을 1년 정도 하다가 좀 더 재미있는 구기 종목을 하고 싶어서 축구, 탁구, 테니스 중에 고민을 하다가 테니스에 입문하게 되었다.
난 테니스에 바로 반해버렸다. 라켓에 공이 맞을 때 그 통쾌함, 야외 코트에 나갈 때의 시원함 모두 너무 좋았다. 하지만 테니스 역시 무탈하지만은 않았다. 가끔 오른쪽 팔에 시큰한 테니스 엘보를 주기고, 큰 부상을 몇 가지 주기도 했다. 하나는 가볍게 랠리를 하면서 낮은 공을 리시브하다가 허리를 삐끗한 것, 또 한 번은 가장 최근에 백핸드를 연습하다가 목 부근과 팔이 한꺼번에 너무 아파서 정형외과를 방문해 보니 디스크 내장증이 온 것. 이 두 가지 부상 역시 2-3일 정도는 거의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무리를 주었고 2주 이상 꾸준히 치료를 받으러 갔어야 했다.
두 번의 부상 모두, 사실 게임을 하다가 다친 것이 아니라 가벼운 연습과 레슨을 받다가 다친 것이어서 스스로 납득이 잘 안되었다. 머릿속에는 크게 답이 없는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몸을 분명히 풀고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런 동작을 하다가 이렇게 다칠 수 있지? 이 동작이 나에게 그렇게 무리가 가는 동작인가?’ 나는 사실 부상 그 자체에서 오는 불편함보다, 내가 운동할 수 있는 범위나 한계가 계속 좁아지고 있는 게 너무 화가 나고 속상했다. 그것은 단순하게는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의 범위가 제한되는 것, 앞으로도 같은 운동을 할 때 더 조심해야 하는 것 - 혹은 이 운동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의미하지만 - 확장해서 생각했을 때엔 내 몸이 쇠약해지고, 이제 더 이상 상승하지 않고 하강하는 일들만 남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내 남은 삶의 에너지가 20대 때와 동일할 수 없다는 것, 내 물리적 에너지는 분수대의 물처럼 솟구치는 무언가가 아니라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관리해 주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 그렇게 조심조심 하더라도 어딘가 고장 날 수 있고 그로 인한 불편함 들을 오랫동안 가져갈 수도 있다는 것. 그 사실들을 받아들이는 건 참 오래 걸리기도 했고, 지금도 계속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아기들이 커나갈 때 키와 몸무게의 분포를 전국 아기들 중에서 몇 %에 위치하는지 체급(?) 데이터를 알려주는 것 처럼, 내가 지금 37세 여성으로서 얼마만큼 건강하고 각 뼈와 기관들이 어느 정도의 운동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는 생각도 하기도 했다. (이런 줄 세우는 몹쓸 한국적인 마인드)
‘부상과 공생하며 운동하는 법’은 아직 배워가는 중이다. 30대 이후로 계속하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내 기초 체력과 자세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과, 일할 때 거북목 자세가 내가 좋아하는 테니스를 치는데 무리를 줄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이 평소와 같지 않다는 작은 시그널들을 보낼 때 더 일찍, 자세히 눈치를 채고 ‘하지 않는’ 용기를 계속 내야 한다는 것도. 이는 37세의 나와 27세의 나는 물리적으로 다른 몸이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공감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곧 40대 초중반의 나는 30대 후반의 내 피지컬을 그리워하겠지만,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의 나를 아끼고 감가 상각되는 기울기를 최소화할 수 있게 계속 운동하지 않을 때의 나도 조심해야 한다. 50대의 내가 탁구도 치고 등산도 할 수 있게, 30대 후반의 내가 내 몸을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