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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ach Soojin Jan 01. 2023

미엔의 남자들

여자 농구팀 미엔의 역사를 함께한 남자들의 이야기

이상형이 농구 하는 여자라구요?

미엔 초창기 농구를 안하는 날에는 주로 소개팅에 열을 올렸다. “취미는 농구구요”가 나름의 한방이었던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소개팅남들은 다소 당황하며 진짜 특이하구나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몇몇의 농구인들은 순간적으로 눈이 반짝였다. 농구인이 농구인을 알아보는 순간이었다.


농구하는 여자가 이상형이라며 미엔에서 소개해 줄 사람 없냐는 질문들을 심심치 않게 들었다. 당시 미엔은 부족한 경기력으로 어떻게든 게임을 하기 위해 약간은 용병 식으로 남자 방문자들을 환영하고 있었기에, 겸사겸사 미엔의 게스트로 초대하기도 했었다. 뭐 “미녀들의 NBA”라더니 미녀도 없고 NBA도 없다며 실망했다고 하지만 결국 “웃겨서" 자꾸 오게 된다고들 했다. 일요일 밤에 개콘 보다 미엔이 더 웃긴다라나?


한편, 이상형이 딱히 농구 하는 여자는 아니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여자 친구가 미친 듯이 농구에 빠져서 본의 아니게 매주 코트에 출퇴근해야했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우리는 그들을 미엔의 형부들이라 불렀다. 매주 일요일 저녁은 눈이오나 비가오나 농구 연습에 가야하고, 평일이건 휴일이건 시간만 나면 농구 연습을 하고, 손가락/발목 부상을 달고 사는 여자 친구와의 연애는 그리 평범해 보이지는 않을 수 있다. 그래서일까. 형부들은 코트에서 만나면 몇 번 보지 않아도 서로 눈빛만 봐도 통하는 브로맨스가 느껴졌다. 말하지도 않아도 아는 그런 마음인 걸까.


“미엔의 형부”가 하는 일은 대강 다음과 같다.


물 사 오기, 바닥 닦기, 사람 모자라면 무한정 게임 뛰기, 경기 영상 찍기, 심판 보기, 스코어 세기, 누구라도 다치면 바로 뛰어가서 응급 치료해주기, 테이핑하기, 오가는 길 운전하기, 가끔 어이없게 진짜로 좌절하면 진정성 있게 위로하기, 웃지 않고 진지하게 전략 회의 참여하기, 농구보다 더 진지했던 각종 이벤트와 파티 참석하기, 각종 뒷정리하기, 짐들기, 그 외 기타 등등


코트 바닥닦기를 마스터 해버린 동현 형부
심판과 영상 촬영 1인 2역 중인 지훈 형부
숱한 무료 진료에도 지치지 않는 팀 주치의 재후 형부


인생의 열정을 불태우는 데에는 배우자나 파트너의 지지가 절대적인 힘이 된다. 특히나 농구처럼 몸과 마음과 시간을 함께 불태워야 하는 취미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최근 미엔에 복귀한 은아의 남편인 진규님은 흔쾌히 일요일 저녁마다 독박 육아를 자원하여 많은 미엔 선수들에게 출산 후에도 코트에 복귀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선사했다. “미엔의 형부”들은 우리의 가당치 않은 꿈을 너그럽게 함께 꾸어주었고, 각자 본인의 방법으로 우리의 열정을 지지해주었다. 그리고 남자 동호회에 부인들이 관람을 오고 교류하는 것은 일반적인 모습이지만, 그 반대의 모습은 왠지 더 희소하고 멋있어 보이지 않나. 사실 그들도 우리를 내심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을 거라 믿는다. 미엔의 막내들은 형부들 때문에 눈만 높아져서 사람을 못 만난다고 투덜댈 정도였으니, 보통 멋진 남편들은 아닌가보다.


엄마의 화려한 복귀를 응원 차 코트에 방문한 종윤군(4세)


미엔의 남자들을 이야기하는데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 있다면 감동님과 코치진이다. 미엔 롱런의 비결은 아무리 생각해도 인복이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들을 끌어당긴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미엔의 감독+코치진은 우리에게 과분하다. 미엔이 지금껏 “농구”하는 팀으로 남을 수 있던 건 이들의 봉사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감동님은 와서 룰만 설명해달라는 직장 동료의 꼬임에 넘어가 미엔 첫 모임에 온 날로부터 9년째 미엔의 수장으로 역임하고 있다. 9년째 미엔 최다 출석을 기록하며 미엔 맞춤형 커리큘럼으로 생초보를 어엿한 농구인으로, 우왕좌왕하는 운동 집단을 제법 그럴싸한 농구 팀으로 만들어내었다. 9년 전 미엔 첫날 우리의 실력을 떠올려 보자면, 감동님은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과 진배없다. 어릴 적 꿈이 구단주였다고 하셨으니 어찌 보면 꿈을 이룬 걸 축하드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미엔을 경험한 모든 멤버는 늘 한결같은 그의 리더십에 감동을 안 할 수 없으니, 그는 미엔의 영원한 감동님이다.


감동님 못지않은 헌신을 보여주고 있는 코치진도 미엔의 큰 자랑이다. 짹 코치는 미엔의 리그전 일정에 맞추어 본인의 휴가 계획을 짠다고 할 정도니 미엔에 대한 그의 열정은 말 다 했다. 기본기 훈련 진행에서부터 멤버들의 멘탈 관리까지 미엔이 건강하게 오래 운동할 수 있도록 코치는 모든 곳에서 열과 성의를 다하고 있다.


미엔의 자랑스러운 감동님과 짹 & 시형 코치


미엔은 취미 농구팀을 넘어 커뮤니티가 되었다. 서로의 청춘을 농구와 함께 불태웠던 우리는 같이 나이 들어가면서 새로운 가족들과 농구 말고도 많은 인생 대소사를 함께하고 있다. 농구장에서 프로포즈 이벤트를 하기도 하고, 결혼식에서 부케 대신 농구공을 던지고, 신혼집에 쳐들어가 고주망태가 되기도 하고, 이제는 꽤 많이 생긴 미쥬(미엔 쥬니어)의 어린이 농구단을 꿈꾸기도 한다. 하나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기까지, 미엔을 좋아해 주는 많은 사람의 보이지 않는 지원과 노력이 있었다는 걸 안다. 미엔의 남자들이 있었기에 미엔도 가능했다. 


미엔 패밀리의 아름다웠던 어느 여름날



오늘 이 글을 빌어서 그동안 미엔을 지켜준 “미남”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노고와 헌신에 진심을 가득 담아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제 마음 알죠?


Special thanks to :

박성호(감동님), 신찬영(짹), 김시형, 김태경(테드), 강충구(충치), 김정훈, 김동현, 한지훈, 이재후, 권호현, 김성근, 김봉진, 그 외 다수의 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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