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하반기 - 2022년 상반기 독서기록
2021년 하반기부터 2022년 상반기 사이에 읽은 책들. 제때제때 정리를 했어야 했는데. 뭘 읽었는지 기억나지도 않지만 그냥 써본다. 저 중엔 다 읽은 책도 있고 몇 장 읽다 만 책도 있다. 또 읽었는데 까먹고 안 쓴 책도 있는 거 같고. 전에는 읽다 마는 걸 부끄럽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일부만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에 대해선 최재천 교수님 유튜브에서 들었는데 귀찮으니까 적지 말아야지. 볼드체 된 것은 좋았던 책들.
1. 미셸 푸코, 말과 사물
2.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 선언
3. 강요배, 풍경의 깊이
4. 박은미,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5. 김수영, 시여 침을 뱉어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0)
6.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7. 이상,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
8.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9. 장자, 장자
10. 도스또예프스키, 죄와 벌
11. 박상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12. 황정은, 일기
13. 조남주, 귀를 기울이면
14. Khalil Gibran, The Eye of the Prophet
15. Alain de Botton, How to Think More about Sex
16. Seneca the Younger, Letters from a Stoic
17. J. Humfrey Anger, Form in Music
18. Carl Emil Seashore, Psychology of Music
19. Voltare, Candide
20. Terry Eagleton, How to Read Literature
부끄럽지만 러시아 고전을 거의 안 읽어봤다. 너무 두꺼워서 겁이 났기 때문이다. 이제야 펼쳐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전자책 이벤트로 무료인 거 대충 다운로드하였더니 발번역이다. 오타가 너무 많다. 그런데도 책은 참 좋다. 왜 명작인지 알게 해준다. 스토리가 장마철 폭포수처럼 잘 흘러가고 인물 하나하나의 개성이 두드러지며 중간중간 정치 사회적 이슈, 철학과 예술에 대한 견해까지 조화롭게 잘 들어가 있다. 정말 너무 길긴 한데 지루하지가 않다. 한국어판 읽는 것과 더불어 유튜브로 영어 오디오북도 듣고 있었는데 저작권 때문인지 계정이 폭파되어서 이제는 들을 수가 없어서 아쉽다.
반면 도스또예프스키 <죄와 벌>도 좋기는 한데 너무 다크해서 마음이 지쳐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힘든 건 읽고 싶지가 않아... 그런 점에서 볼테르의 <캉디드>는 웃겨서 좋았다. 물론 웃기기만 한건 아니고 심오하기도 하다. 사실 이건 소설의 탈을 쓴 철학책이다. 볼테르의 계몽 철학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캉디드가 세상을 돌아다니며 겪는 인생의 고난과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한 신랄한 풍자. 나는 이런 블랙코미디가 좋더라.
20대의 초중반은 한국소설만 읽고 살았는데 이제는 도저히 읽지 못하겠다. 너무 가볍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새 가장 핫하다는 작가, 처음 읽어 봤는데 조금 실망스러웠다. 뻔한 소재를 가지고 깊은 얘기를 하는 소설이 있는 반면, 재기 발랄한 소재를 가져다가 얕은 얘기를 하는 소설이 있다. 내게 그 책은 후자에 속했다.
칼릴 지브란의 책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대단히 심오한 인생의 진리를 얘기하는 듯하지만 거기에 감동을 받기엔 너무 얄팍하고 superficial 하게 느껴졌다. 또 시대착오적이기도 하고. 애초에 이 책의 정체를 모르겠다.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눈>...? 중고서점에서 집어온 책이었는데 칼릴 지브란의 인기에 편승하기 위해 단편 글 몇 개 짜깁기해 만든 컴필레이션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EBS에서 철학 학습서 같은 걸 시리즈로 내고 있다. 유명해서 궁금한데 어려워서 읽기 겁나는 책 몇 권을 선정해, 작가는 어떤 사람이고, 왜 이런 걸 썼고, 이 책의 내용은 뭔지 쉽게 설명해 주는 책이다. 나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선택해 읽어봤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쇼펜하우어를 읽기 전이나 후에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읽어볼 예정.
음악 관련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네. Forgotten books에서 나온 <Form in Music>은 아주 좋았다. 서양 클래식 음악의 기본 포맷과, 또 음악 장르별 (소나타, 심포니, 등) 포맷을 예시와 함께 잘 설명하고 있다. 지난 한 해는 음악의 구조와 형식에 갑자기 흥미를 느껴 아티클도 찾아 읽고 리스닝 연습도 했다. (음악 듣기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그중에 Form in Fugue라는 아티클이 가장 인상적이었으며, 덕분에 푸가의 형식을 알고야 말겠다는 집착을 좀 내려놓을 수 있었다.
황정은의 <일기>도 전작들에 비하면 (소설이 아니니 어쩔 수 없지만) 흥미롭지 않았고, 공교롭게도 한국 작가들이 쓴 책 중에는 화가 강요배가 쓴 <풍경의 깊이>가 가장 만족스러웠다. 이분 웬만한 소설가 시인보다 글을 참 잘 쓰신다. 시적인 문구가 참 많다. 크라우드 펀딩 할 때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모 아이돌 가수가 추천을 해서 인기가 많아졌다고. 그러면 전자책을 내어줄 법도 한데 출판사가 돌베개이므로 기대해선 안 된다. 나는 올가가 한국 출장 갔을 때 부탁해서 종이책으로 갖게 되었다. 벽돌만큼 무겁지만 오래 간직하고자 한다.
가장 오랫동안 아끼며 읽은 책은 세네카의 <Letters from a Stoic>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병과 죽음, 슬픔 등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우정이 무엇인지 등등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조언이 담겨있다. 다만 세네카 본인은 인생에 큰 굴곡 없이 살았던 엘리트였기 때문에, 꼬아서 보면 위선적이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원래 목표는 올 상반기 중에 영문판을 다 읽고 하반기에는 더치어로 읽는 거였는데, 더치어 교재 이제 2과를 겨우 끝낸 중이기 때문에 아직은 무리일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