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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금도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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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neon Aug 15. 2021

바다의 노래

물거품이 된 그녀들을 위하여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스스로 목숨을 버릴 순간을 정하는 게 정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헤치는 일인가 하는 문제다. 일생은 유수히 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시작과 끝을 정할 수 없단 건 그야말로 부조리가 아닌가. 알폰시나 스토니 Alfonsina Storni는 바다에 걸어들어감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아르헨티나에서 산 알폰시나. 여자의 몸을 가졌지만 스스로를 남자로 생각한 알폰시나. 시를 썼지만 문단에서 인정받지 못한 알폰시나.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알폰시나.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고, 유방암과 싸워야 했던 알폰시나. 마침내 휴양지로 유명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해변, Mar del Plata에서 깊은 잠을 자기로 결심한 알폰시나.


https://www.youtube.com/watch?v=eU1Hpc_iqL8

Mercedes Sosa - Alfonsina y el Mar
Por la blanda arena que lame el mar
su pequeña huella no vuelve más,
un sendero solo de pena y silencio llegó
hasta el agua profunda.
Un sendero solo de penas mudas llegó
hasta la espuma.

Sabe Dios qué angustia te acompañó
qué dolores viejos, calló tu voz
para recostarte arrullada en el canto
de las caracolas marinas.
La canción que canta en el fondo oscuro del mar la caracola.

Te vas Alfonsina con tu soledad,
¿qué poemas nuevos fuiste a buscar?
Una voz antigua de viento y de sal
te requiebra el alma y la está llevando
y te vas hacia allá como en sueños,
dormida, Alfonsina, vestida de mar.

 의역 오역 발번역 주의

바닷물에 밀려드는 부드러운 모래로 인해
그 작은 발자국들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아요
슬픔과 침묵의 외로운 길은 깊고 깊은 물에 도달하고
말 없는 슬픔만이 거품이 되어 도착합니다

신만이 어떤 고통이 그대와 함께했는지 압니다
그 어떤, 오래된 고통에 그대가 침묵했는지 압니다
깊고 어두운 바다의 저편에서
조개의 노랫소리에 누운 채

외로운 알폰시나, 그대는 떠나고 있네요
어느 새로운 시를 찾고 있었나요
바람과 소금의 오래된 목소리가
그대의 영혼을 따스히 감싸 들어 올리네요
그리고 그대는 마치 꿈속에서처럼 그곳으로 갑니다
바다를 입고 잠든 알폰시나



알폰시나의 죽음은 언제나 사포를 생각나게 한다. 고대 그리스 레스보스에서 살다 간 사포 Sappho.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를 썼던 사포. 아름다운 여성들의 사랑과 열망을 노래한 사포. 그래서 레즈비언의 기원이 된 사포. 사포는 짝사랑에 괴로워하다가 절벽에 몸을 던져 죽었다. 사포가 목숨 바쳐 사랑한 대상은 미틸레네 출신의 선원 파온. 사포는 바이섹슈얼이었던 걸까. 시인. 퀴어. 그리고 바다에서 생을 마감. 지독한 평행이론





의식의 흐름에 따라 알폰시나와 사포를 생각하다 보면 당연히 도달하는 지점은 버지니아 울프 Virginia Woolf. 버지니아는 조울증, 우울증, 환청을 심하게 앓았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사별해야 했고, 성적 학대도 겪었다. 그리고 익히 알려진 대학 내에서의 성차별도. 버지니아는 양성애자였으며, 여느 여성작가들처럼 글쓰기는 그의 도피처였다. 그가  <올랜도>  정체성을 바꿔가며 400년을 살았던  인간의 이야기란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도 강에서 생을 마감했지. 그는 돌을 잔뜩 채운 코트를 입고 강가로 걸어 들어갔다. 영화 < 아워스 The Hours>에서 니콜 키드먼은 작가의 죽음을 아름답고 처절하게 재연해냈다.


https://youtu.be/0pwjnLMpE28

The Hours, 2002

 

Dearest,
 I feel certain I am going mad again. I feel we can't go through another of those terrible times. And I shan't recover this time. I begin to hear voices, and I can't concentrate. So I am doing what seems the best thing to do. You have given me the greatest possible happiness. You have been in every way all that anyone could be. I don't think two people could have been happier till this terrible disease came. I can't fight any longer. I know that I am spoiling your life, that without me you could work. And you will I know. You see I can't even write this properly. I can't read. What I want to say is I owe all the happiness of my life to you. You have been entirely patient with me and incredibly good. I want to say that - everybody knows it. If anybody could have saved me it would have been you. Everything has gone from me but the certainty of your goodness. I can't go on spoiling your life any longer.

I don't think two people could have been happier than we have been.
V.


그대에게.
나는 분명히 다시 미쳐가고 있어요. 우리 그 끔찍한 시간을 다시 겪을 순 없는데, 이번엔 회복하지 못할 거예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집중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최선의 선택으로 보이는 걸 하려고 해요. 그대는 내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을 주었어요. 그 누구도, 어느 방식으로도 그대처럼 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그 어느 두 사람도 이 끔찍한 병이 오기 전까지의 우리보다 행복할 순 없을 거예요. 나는 더 이상 싸울 수 없어요. 내가 그대의 삶을 망치고 있단 걸 알아요, 그렇지만 나 없이 그대는 잘 해낼 거예요. 그리고 그대도 곧 알게 될 거예요. 봐요, 나 지금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있죠. 읽지도 못하겠어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 삶의 모든 행복이 다 그대에게 빚진 거란 거예요. 그대는 나를 완전히 견뎌내고 무지하게 잘해줬어요. 모두 다 아는 사실이죠. 만약 누군가 나를 구할 수 있다면, 그건 당신이었을 거예요. 나에게서 모든 게 떠나갔지만, 당신의 상냥함만은 남았어요. 그렇지만 나는 더 이상 그대의 삶을 망칠 수 없어요.

어느 두 사람도 우리보다 행복할 순 없었을 거예요.
 V.



행복한 삶을 살다 간 여성 작가는 없는 걸까.

왜 그들은 차디찬 물속에서 삶을 마감해야만 했을까.

그 죽음으로써 평화를 찾았을까. 자유를 찾았을까.


자살이란 패배의 방식이라는 까뮈의 부조리론에 동의한다. 그러나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그녀들을 이해한다. 그 고통에 공감한다. 반드시 우리가 승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안다. 동의와 이해와 공감. 그 단어들 사이엔 은하수만큼의 거리가 있다. 기억은 또한 위로이기에. 이 쓸모없는 번역과 기록은 나만의 추모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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