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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사탕 Aug 23. 2023

흔들리지 않는 힘을 말하기 이전에

아이가 아직 학교에 도지 않았어요.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큰 아이의 학교가 개학을 했다.

한 달이라는 방학의 시간이 나에게는 다소 길게 다가왔으나 아이 입장에서는 찰나같이 느껴졌을 테다. 그래도 기특하게 전날부터 오랜만에 보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위하여 옷도 신경 써서 고르고, 방학 숙제로 해왔던 그림일기와 독서 목록 노트까지 가방에 야무지게 챙겨 넣었다.


당일 아침.

아무리 깨워도 꿈쩍도 하지 않던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일찍 일어나 옷도 입고, 세수도 하며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준다. 누가 뭐라고 한 마디 하지 않았건만 아이에게는 학교가 그런 설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기쁘고 대견했다. 어렸을 적 학교 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던 나와는 사뭇 다르기에 더욱 보기 좋았다.


잔소리 하나 없었던 평화로운 시간. 덕분에 나는 수월하게 출근 준비를 마칠 수 있었고, 학교에 잘 다녀오라는 응원의 한마디를 남긴 채 기분 좋게 출근길에 올랐다.



9시가 넘은 시각.

지하철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던 나에게 갑자기 전화 한 통이 왔다.

어플을 통한 전화였으나 발신자가 학교 담임 선생님이라는 걸 확인하자 통화 수락 버튼을 누르기 전부터 간담이 서늘해졌다. 


"아이가 아직 학교에 오지 않았어요,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내용인즉슨 아이가 아직 도착을 안 했다고 선생님께서 걱정이 되어 전화하셨단다.


9시에 수업이 시작되는데 아직까지 도착을 안 했다니...

분명 어느 때보다 일찍 준비를 마쳤고, 내가 출발한 직후에 바로 할머니와 학교로 출발한다고 했었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지. 학교에 갔어도 이미 두어 번은 더 왔다 갔다 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곧바로 친정엄마께 전화를 걸었다.


'띠리링~ 띠리링~'


끝도 없이 울리는 휴대폰 너머의 신호음은 끝내 상대방이 받지 못한다는 무미건조한 기계음이 대체했다. 직감적으로 '집에 두고 가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도착을 안 하셨겠지', 또는 '함께 계신가 보다'라는 긍정의 신호로 받아들여도 되었겠지만 순간의 나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아차렸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었고, 아이의 행방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이 방법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몸으로 뛰어야 했다.


급하게 지하철에서 내려 반대 방향 열차에 몸을 실었고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곳에는 친정엄마의 빨간색 핸드폰만 엎어져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비어있는 집에는 아무런 생명체의 흔적이 없었다. 학기 초에 안전을 위해 사 주었던 아이의 휴대폰은 한글도 제대로 떼지 못한 8살짜리의 유튜브 전용으로 전락했다는 이유로, 장난 삼아 액정을 깨버린 대가로 없애버렸다. 학교 생활과 하루의 일정이 패턴화 되었기에 필요 없다고 여겼기에 그리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런 결정을 해 버린 나의 우둔함을 자책했고 스스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결국 학교 가는 길을 뛰어다니며 골목골목을 뒤졌다. 

혹여나 내 아이가 어디에서든 튀어나올까 두 눈을 씻어가며 두리번거렸으나 개학을 해서인지 고만한 사이즈의 어린이조차 머리카락 한 올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동네를 휘저어가던 그때 저 멀리에서 천천히 걸어오시는 친정엄마가 보였다. 저질체력의 소유자로서 이미 한계치가 다다랐으나 개의치 않고 달려가 드디어 만났다. 아이와 오전에 있었던 사정을 전부 들을 이후 다시 선생님과 통화를 하며 무사하고 안전하게 교실에 도착했다는 소리를 들으니 그제야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출근길 중에 일어난 에피소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처음 연락을 받고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는 고작 4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에게 그 40분이라는 시간은 내 아이의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억겁의 시간이었다. 안전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실 만으로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데 정말 큰일이라도 났다면 스스로 얼마나 나를 용서하지 못했을까. 분명 이번의 일은 몇 십 년이 지나도록 내 머릿속에 각인될 듯싶다.


사건 하나에 맥없이 흔들리고 있던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멘털.

이미 늦어버렸으나 다시 출근길에 오르던 그 순간 지체 없이 몸으로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험악한 세상에서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나의 마음이 너무 갈대 같아서 매 순간 휘청거리지만 결이 다른 문제에는 어떻게 이성을 찾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손이 부들거리고 다리부터 무너졌다. 몸은 정신과 마음의 명령에 의하여 움직인다 했었는데 그 시간 나의 의지와는 사뭇 다르게 보여주니 그 또한 혼란으로 다가왔다.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어떠한 순간에도 냉철한 이성과 정돈되어 있는 몸짓으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절대 그러지 못했다는 건 나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하게 되었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간절함. 행동으로 보여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함을 느꼈다.


철두철미한 사람이라는 것은 어쩌면 일에 관해서만 추구해야 되는 이야기인가 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 그렇게 삭막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억겁의 시간을 산다 해도 사랑하는 이에 대한 마음은 언제나 부족할 것이다.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이 지나면 후회가 당연히 남게 되겠지. 그러니까 그 후회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게 해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힘을 갖기 전에 가장 소중한 이들에게 마음껏 표현하는 나긋나긋한 사람이 되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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