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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사탕 Sep 07. 2023

우주를 엿보러 가고 있습니다.

매일 동화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어느덧 5개월이 되었다.

사실 그동안 계속해왔던 일이었으나, 그 마음이 확고하게 달라진 것이 아마 그 정도 된 듯하다.


처음에는 단순히 내가 책을 좋아해서, 아이들도 함께 즐거운 취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읽었다. 하지만 힐링의 의미가 너무 컸던 탓이었는지 서로가 피곤한 날이면 패스하는 날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아이에게 '틱'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최대한 마음의 안정이 있어야만 나아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들을 마주했다. 이후부터 아이와 책 읽기에 대한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테다. 무력한 어미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생각은 다르지 않다.


증상에 좋은 약도 있다고 하지만 여러 부작용도 함께 존재했다.

아무리 명약이라 할지라도 주된 원인으로 손꼽히는 '스트레스'가 온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거부했다. 그렇게 시작한 함께 동화책 읽기는 조금씩 적응이 되어갔다. 덕분에 이제는 밤마다 즐기는 일종의 루틴이 되었다.


솔직히 퇴근 후 눈이 감기는 본능은 무시할 수 없다. 그 와중에 책 한 권을 들고 등장하는 아이를 보면 무섭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애초에 작정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속으로 큰 숨을 한번 고르고 나서 첫 페이지를 넘기면 어느새 우리는 독자가 아닌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었다. 여기에 영혼을 넣어 한 줄 한 줄 읊다 보면 한쪽에서 관심 없던 존재들도 조금씩 동행을 하게 된다.



40 페이지 남짓한 그림 가득한 종이 뭉치.


그렇게 조금씩 변해갔다.

5개월의 시간이 흐르며 아이의 입에서는 의미 없는 음성소리가 사라졌다. 본인도 알아채지 못하던 눈 깜빡임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야기에 빠지기 시작했다. 몇 장의 종이일 뿐이었으나 그 과정 속에서 각자에게 맞는 치유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림책은 영유아 또는 어린이만 읽어야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살았다. 하지만 때로는 말도 어렵고 유식하게 보이는 어른책보다 훨씬 깊고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자극적이지도 않은 주제에 그 매력은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림 한 점, 짧은 글 한 줄에 점점 빠져드는 내가 오히려 신기했다. 백 마디의 설명보다 단 한 페이지에서 나오는 아우라는 지나치면 알아채지 못한다. 그런데 그 매력을 알아버리게 되었다.


동화책은 단지 읽는 것이 아니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맛을 느끼며 마음으로 되새김질하는 존재였다. 말 그대로 오감을 넘어 육감까지 모두 동원해야 제 맛을 알 수 있었다. 여전히 다양한 디지털 매체보다 종이의 질감을 선호하는 아날로그적 개인의 취향에 맞춰서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그 안에 숨어있던 우주를 만날 수 있었다. 자연스레 아이들과 대화를 넘어 수다도 길어졌다. 양쪽에서 재잘대는 통에 여전히 정신 사나울 때가 있으나 책으로 시작한 말꼬리는 밤을 더욱 길게 만들어 주었다.


본다는 것.

어쩌면 읽는다는 말과 같다.

때로는 그것보다 훨씬 넓게 다가온다.


아이를 위해 읽기 시작한 동화책은 어느덧 나를 길러 주었다.

내가 아이를 육아하는 것이 아닌 책이 나를 육아하고 있었다. 별 것 아니라 무시했던 그 짧은 한 권들이 모여서 더 많은 우주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끝이 어디인지 감히 가늠하기 어렵다.

대신 우주만큼 넓은 마음들을 엿보러 한 걸음 내딛도록 만들어 준다. 그렇게 동화책 읽기는 내 아이를 치료하고 있고, 나를 치유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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