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의 집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향수라고 한다. 누구나 향수가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거렸던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외국을 방문하는 경험에서 이 향수라는 "병"은 쉽게 발병한다. 신기하게도, 여정을 끝내고 자신의 나라에 도착할 때면 "병"이 고쳐진다.
나는 향수를 마음 가득히 느낄 때가 많다. 보통은 향수를 해소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나는 이것을 일부러 느끼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글은 외국 생활에서 느끼게 된 향수와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한 것이다. 시작하기에 앞서 일러두고 싶은 것이 있다. 이 글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느끼게 된 감정에 바탕했기 때문에 이제껏 작성했던 글들보다 훨씬 더 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외국에 있는 대부분의 이유는 학업 때문이며, 머물렀던 나라들은 영미권이라는 점을 우선 밝히고 싶다. 그러나 향수와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외국에 살고 있는 이유와 장소를 막론하고, 외국에서의 거주 기간이 길수록 내가 느낀 감정들을 비슷하게 느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나는 한국사람이지만 외국에 살고 있다. 약 10여년 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여러 국가를 옮겨 다니며 살고 있다. 물론 그 긴 세월 중간중간에 한국을 방문한 적은 많다. 한 달이 채 안되는 기간 정도만 방문한 적도 있었고,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한국에서 머무른 적도 있었다.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삶을 시작하게 된 이후, 처음 몇 개월 혹은 1년 정도는 향수가 있었다. 이것은 실체적인 것들에 대한 향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자주 거닐던 거리들, 시간을 때우러 가던 카페들, 자주 먹던 한국 음식들 등과 같은 것들 말이다. 외국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까지는 한국에 방문할 때면 향수라는 것이 언제 있었냐는 둥하며 자연스레 해소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외로움으로 바뀌어 갔다.
해가 바뀌어 갔지만, 나는 여전히 한국에 정착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삶이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진행될수록 한국이 나의 집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실체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이라는 곳에 대한 나의 향수는 다소 옅어졌다. 실체적 대상에 대한 그리움은 시간이 갈수록 마음속에서 희미해져만 갔다. 어느 순간이 되자, 더 이상 그립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향수는 이내 외로움으로 바뀌었다. 외국 생활에서 느끼는 향수라는 감정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으로 점차 대체되었다. 오랫동안 지속된 외국생활에서 느끼게 되는 외로움이란 마치 영원히 어딘가에 혼자 갇혀 버린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듯한 상태를 느끼게 된다.
성인이 되고 나서 (혹은 청소년 끝무렵 이후부터) 외국에서 몇 년 정도를 살다보면 느끼게 되는 것이 있다. 이 곳에서 완전하게 동화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감히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동시에 자국 ('자신이 태어났으며 자랐던 곳'을 대체할 말을 찾다가, 이 애매하기 짝이 없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다)에서 멀어진 기간이 길어질수록 본인이 속했다고 생각했던 사회와 그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렇게 느꼈을 시점에는, 외국에 나와서 초기에 느꼈던 실체적인 향수는 사라지고 외로움만이 마음속에 가득해진다.
내가 처한 특수한 환경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도통 찾기가 힘들게 된다. 내 마음속 안에서 사라져만 가는 향수와 커져만 가는 외로움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나 사회가 현실에 없다고 느끼게 된다. 외로움에 빠져있을 때, 단지 향수가 극심한 것이라 생각하고 한국을 방문해보는 것이 해답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그리웠던 한국 음식들을 먹어대고, 내가 살던 동네를 걸어보지만 좀처럼 향수는 해소되지 않는다. 이미 나의 향수는 실체적인 것들에 대한 향수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자주 걷던/방문하던 곳을 가더라도 반가움보다는 이질적인 느낌만을 갖게 된다. 이미 마음속 가득한 것은 향수가 아니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외로움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 방문은 내가 가진 외로움의 감정을 더욱 증폭시키고 외로움을 의식적으로 인지하게 만들 뿐이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집'이 어딘지 모르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사는 '머나먼 타지'는 내게는 영원히 낯선 곳일 것이며,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곳은 나의 과거 -- 혹은 나의 상상 -- 에만 남아있게 되어서 결국 나의 현실과 점차 멀어져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향수는 사라지고, 난감하게도 외로움만 남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이 괴상한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있었다. 상상의 향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한국을 실제로 방문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외로움을 달랠 수 없었다. 오히려 한국을 방문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내가 자라고 난 곳을 상상하며 마음속에서 보존할 때, 그때서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있다는 외로움이 조금이나마 사라졌다. 결국 존재하지 않는 곳을 스스로의 마음속에 만들어내서 향수를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외국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를 생각할 때면 외로움이 잠시나마 사라진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의 마음속은 고향에 대한 향수로 다시금 가득 차있다. 다만 이 두번째 향수는 외국 생활 초기에 느꼈던 향수와는 많이 다르다. 두번째 향수가 그리는 대상은, 사실 그 대상의 실체와 멀어져 있다 -- 오히려 나의 상상에 가깝다. 더욱 중요한 점이라면, 외국 생활 초기에 느꼈던 향수는 달래져야만 하는 것이었으며 지금의 향수는 해소되지 않고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향수를 느낀다는 것은 내가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감정을 유지하게 해준다. 이를 통해 나는 외로움을 극복하기도 한다. "상상의 향수"를 마음속에서 느낄 때면, 마치 어딘가 중간에 끼여 있는 나의 상황을 해결해 줄 것 같다는 희망에 가득차기도 한다. 그래서 향수를 느끼는 것은 꽤 좋은 일이며,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
단언하건대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감정을 느낀다. 굉장히 비슷해보여도, 조금씩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줄줄이 쏟아낸 감정들도 모든 이에게 완전한 공감을 받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설명한 감정들을 혼자서 외롭게 느꼈을 사람들을 위해 -- 그리고 나 또한, 나만의 감정이 아니라고 믿고 싶은 마음으로 -- 나의 감정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
향수를 느낀다는 것은 내가 속하는 '집'이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