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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크립씨 Sep 09. 2022

취향을 존중해주지 마세요

라디오의 탁월한 선곡을 감상하며.

어떻게 내 취향을 이렇게도 잘 맞춰줄까? 나는 넷플릭스도 몇 년째 사용하고 있을 뿐더러, 유튜브도 유료결제를 하여 이용하고 있다. 어찌나 많이 봐대는지, 소위 말해 "흑자"를 내고 있는 것만 같다. 넘쳐나는 볼거리 뿐만이 아니다. 어느새부터 우리네 삶에 불쑥 등장한 알고리즘이라는 마법은 내가 원하는 영화나 음악만 기가 차게 골라내준다. 추천 영화나 음악을 보자면 대다수가 취향저격이다. 이제 우리로서는 내 취향에 맞춰 영화나 음악을 찾을 것 없이, 버튼 하나만 눌러주면 출근길이나 퇴근길 할 것 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즐길 수 있다, 자동으로!


바야흐로 우리는 아주 새롭고 낯선 무언가를 즐길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



          어느샌가 나는 내 취향을 너무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내 취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설계된 세상에 사는 것만 같다. 나는 새로운 것들을 듣고, 보고, 그리고 느끼고 싶지만 2022년의 세상은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이미 이런 세상이 된 지는 꽤 오래된 것 같다. 영상을 보면 볼수록 그리고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내 취향에 대한 데이터는 쌓인다. 이 때문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는 내 취향에 더욱 깊이 갇혀 살게 되는 것이다.



방 안은 모든 장르의 음악으로 가득해진다. 내 취향과 상관없이 랜덤선곡을 해주는 라디오 음악 프로 덕분이다.


라디오와의 재회


          최근에는 집이 너무 조용한 것 같았다. 아무 말이나 나오는 라디오가 있으면 적적함이 사라질까하는 희망으로 라디오를 구매했다. 적적함을 달래주는 것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라디오는 앞서 말한 문제를 해결해주기 시작했다. 아, 물론 라디오에게 감사한 것은 처음은 아니다. 중학교를 다닐 즈음에 들었던 라디오는 사춘기 시절의 알 수 없는 답답함을 해결해 주었다. 고등학교 당시에는 야자시간*이 있었다. 라디오는 끔찍히도 더디게 지나가던 시간과 그로 인한 지루함을 해결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큰 도움을 받은 시점은 첨단의 시대인 지금이다. 버튼이나 몇 개 달린 이 구닥다리 기계는 세상에는 다양한 취향이 있음을 내게 알려주고 있다. 내 취향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다양한 장르 그리고 다양한 아티스트의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야자: 야간자율학습. 이름은 자율이지만 실제로는 강제였다. 야자를 "째는 (도망가는)" 것을 실패할 때면 라디오가 지루한 시간을 '빨리감기' 해주었다.


          라디오에서 음악을 듣는 것은 즐거운 활동이다. 이따금씩 내가 아는 음악이라도 나오면 반갑기 그지없다. 모르는 노래가 나오는 것도 좋다. 첨단의 "알고리즘"이었다면 내 취향에 부합하지 않는 낯선 노래를 결코 틀어주지 않을 것이다. 라디오와 재회한지 며칠만에 이미 나는 내가 즐겨 듣지 않던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고 있다. 생소한 장르이지만 한참을 듣다가 마음에 드는 노래라도 있으면 그것은 내 취향의 음악이 되고, 나아가 내 취향의 장르로 발전한다.


          라디오로 음악듣기라는 활동은 몇 가지 즐거움을 준다. 우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생전 관심도 없던 장르의 다양한 음악을 접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에 나올 음악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예상치 못하게 듣게 되는 음악을 즐기는 것, 즉 불확실함은 또다른 묘미이다. 마지막으로, 바로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취향을 찾아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기계가 정해준 리스트를 수동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라디오에서 임의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메모해두거나 기억해두며 본인의 취향을 스스로 확장해나가는 것은 무척이나 의미있고 재미있는 일이다.



다채로운 삶을 위하여


          라디오와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 했지만, 사실 알고리즘의 위협은 '음악 취향 정하기'라는 활동에서 그치지 않는다.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요즘의 세상에는 '필터버블'이라는 것이 있다. 간략히 말하자면 (내게 익숙한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간략히 말하지 않고서는 말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검색 패턴 등을 분석하고 이에 맞춰서 정보를 제공한다 -- 그 정보는 광고가 될 수도 있고 뉴스가 될 수도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필터링된 버블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버블 속에서는 관심이 없는 것은 (과장하건대) 앞으로 살아가며 볼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마주칠 기회는 박탈된다. 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취향이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도 더욱 어려워질 것은 정해진 수순인 것이다.


          알고리즘은 나의 삶을 단색으로 만들어가는 것만 같다. 혹시 알고리즘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삶도 단색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는가? 단색이 끝이 아니다. 그렇게 단색의 삶을 즐기다보면 그러한 삶은 어느순간 지겨워질 것이다. 그리고 삶은 회색으로 변할 것만 같다. 삶을 다채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알고리즘에서 조금 벗어나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필터버블에 조그마한 흠이라도 내기 위해 라디오를 틀어보거나 혹은 여러 신문사의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눈으로라도 훑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 모든 활동들은 다양한 문화가 있음을 알게 되고,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대강이나마 알 수 있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나아가, 나와 관심사가 전혀 달랐던 사람들과의 대화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그렇게 우리를 감싼 필터버블을 조금씩 터트려보는 것이다.




          종이신문과 라디오라니! 너무 구식이라고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번쯤은 눈길을 주었으면 좋겠다. 택배 상자의 완충재 신세가 된 신문이나 차에 탔을 때나 그 흔적을 겨우 찾을 수 있는 라디오, 이 구닥다리들은 첨단의 시대에 우리에게 '새로움'을 선사한다. 원치도 않았지만 이미 "정해져버린" 당신의 취향에서 당신을 구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시작할 즈음에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려서 클래식 채널에 맞췄다. 라디오는 다양한 클래식 음악을 쏟아냈다. 이제 손가락에 힘을 조금 줘서 라디오의 다이얼을 다시 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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