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것만 볼 때, 지불해야 하는 대가
1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프랑스는 2차 세계 대전에서는 나치 독일에게 속절없이 패배하고 만다. 1940년 5월, 나치 독일은 서쪽에 위치한 프랑스와 베네룩스 3국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을 침공한다. 같은 해 6월, 약 한달이 지난 시점에 "전통적 군사강국" 프랑스는 항복을 선언한다. 4년이 더 지나, 1944년 8월이 되어서야 프랑스는 나치 독일에게서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때때로 보기 싫은 현실들은 외면받는다. 그런 현실들이 버젓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주하기 싫은 현실들을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무시할 때도 있다. 두렵고 불편한 현실은 우리를 감싸지만, 간편하게 눈을 감아버림으로써 현실을 피하고는 한다. 그러나, 결국 보기 싫은 현실에 대한 외면의 대가는 종종 혹독하게 치르게 된다. 개인 뿐만 아니라, 한 사회나 국가의 차원에서도 비슷함을 찾을 수 있다. 약 90여년 전 프랑스가 독일과의 접경지에 설치했던 마지노 선을 통하여,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기꺼이 보는 것에 대한 중요함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마지노 선을 들어보았는가? 일상 생활에서 들어 보았을지도 혹은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후의 보루"라는 표현을 할 때, 마지노 선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 본 글에서는 마지노 선이 우리에게 주는 생각할 거리에 대한 나의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우선 마지노 선은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
마지노 선의 유래는 1차 세계 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전장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참호전이었다. 서부전선 (오늘날 프랑스 북동부와 벨기에 등지의 지역)에서 영국군/프랑스군과 독일군은 길고 긴 참호를 파고 지리멸렬한 소모전을 펼치게 되는데, 각 국은 참호를 뚫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병사는 "소모품"처럼 쓰이기 일쑤였고, 결국 "소모품의 소모"를 줄이고 더욱 효과적으로 상대의 전선을 뚫기 위해 협상국의 일원이었던 영국은 탱크라는 무기를 도입하게 된다. 그러나 눈에 띌만한 효과를 제대로 보이기도 전에 전쟁은 끝을 맞게 된다. 앞으로 다가올 전쟁의 양상을 넌지시 암시하며 탱크는 모습을 감춘다.
전쟁이 끝나고 전간기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 사이 약 20여년의 기간)가 찾아온다. 그러나 이것이 "전간기"가 될 것이라고 누가 알았으랴. 천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전쟁이 "1차" 세계 대전이 되리라고는 유럽인들은 알지 못했다. 어떠한 경우에도 다시는 세계 대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전운이 감도는 상황이 다가왔을 때도 효과적인 대책안보다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되내며 현실을 애써 외면한다. 1930년대에 히틀러와 나치당이 독일에서 득세하게 되고, 곧이어 주변국들에 대한 그들의 노골적인 침략 행위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추후 연합국의 주축이 될 영국과 프랑스는 또 다른 세계 대전의 가능성을 못 본 체 한다. 그들은 전운이 다가오는 현실을 무시하고 외면했다. 이들이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저질러버린 무시와 외면은 불행하게도 히틀러와 나치 독일이 자신들이 가졌던 침략적 계획에 더욱 자신감을 심어주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프랑스는 국제 정치뿐만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전쟁의 양상에 대해서도 외면하는 태도를 보인다. 1차 세계 대전 말미에 등장한 탱크 (그리고 비행기)의 역할은 앞으로 벌어질 미래의 전쟁의 모습을 암시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다가올 현실을 애써 무시했다.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믿음과 동시에, 적극적 전쟁 억제보다는 영토 방위에 집중한 다소 수동적인 태도, 무엇보다 다가오는 새로운 전쟁의 양상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 결과, 당시 국방 장관이었던 앙드레 마지노의 제안으로 독일과의 접경지에 길고도 긴 마지노 요새, 즉 마지노 선을 건설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프랑스의 예상과 달리 2차 세계 대전에서 지리멸렬한 참호전은 등장하지 않았다. 굳건한 마지노 선이 무색하게 나치 독일군은 탱크와 전투기를 바탕으로 기동력을 극대화시켜 서부로 침공한다. 나치 독일군은 베네룩스 3국으로 우회하여 프랑스 영토로 들어가게 된다. 그 결과, 프랑스는 속절없이 무너지게 되고, 나치 독일군은 파리 개선문에서 행진을 진행하게 된다. 이후 4년이 넘는 기간동안 나치 독일의 점령은 지속됐다.
물론 전무후무한 거대한 사건이었던 2차 세계 대전에서 프랑스의 패배를 전적으로 마지노 선 건설이라는 오판으로 돌릴 생각은 없다. 어떠한 역사적 사건도 단 하나의 요인 같은 것으로 벌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은 항상 작고 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나기 마련이다. 2차 세계 대전 초반기에 있었던 프랑스의 패배도 틀림없이 여러가지 요인들이 함께 작용했다. 그러나 수많은 요인이 있었음에도, 그 중 마지노 선 건설이라는 오판은 프랑스의 패배에 큰 영향을 끼쳤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프랑스의 무시와 외면은 결국 프랑스 공화국의 붕괴라는 참담한 현실을 낳게 된다.
우리는 이따금씩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 어렴풋이 보이는 그 순간마다 외면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게 의식적으로 외면하다 보면, 결국 잊혀지기도 한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내 눈이 가려짐으로써 현실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보기 싫은 현실은 끊임없이 우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보기 싫은 현실에 대한 지속적인 외면은 언젠가는 더욱 쓰라리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항상 재미있는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던 혹은 상상도 하기 싫었던 현실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가올 때도 많다. 그리고 애써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어두운 -- 그리고 가만히 둔다면 더 어두워질 -- 현실을 외면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 행동의 결과는 언젠가 지불하게 되어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쓰라리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보기 싫은 현실을 바로 응시하고 마주해야한다. 그렇게 부딪혀 나갈 때야말로 비로소 보기 싫은 현실을 이겨내고, 나아가 그 현실을 마주하지 않는 것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