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앰블러의 '공포로의 여행' (1940)
작년 어느 겨울날이었다. 마침 온라인 서점의 장바구니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제서야 에릭 앰블러라는 작가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스파이 스릴러 장르를 종종 즐겼기 때문에 그의 소설은 어느 순간 내 장바구니에 들어와서 한동안 그 곳에 있었을 것이다. 다시보니 소설의 플롯이 꽤 재미있어 보였다. 금세 가상의 장바구니에서 내 손 안에 에릭 앰블러의 '공포로의 여행'이 들어왔다. 즐거운 독서가 시작됐다. 책이 나에게 배달되는 시간 정도 밖에 안 걸릴 정도로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줄거리?
걷잡을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갇혀 피할 수 없는 공포를 느낄 때, 한 개인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까? 1940년에 발표된 에릭 앰블러의 '공포로의 여행'에서 주인공 그레이엄은 2차 세계 대전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안에서 한 개인으로서 죽음의 공포를 수차례 직면하게 된다.
소설이 시작될 때 이미 두번째 세계 대전은 시작되었지만 주인공 그레이엄은 자신은 전쟁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저 한 엔지니어로서의 무심함은 그레이엄이 영국-터키 동맹조약으로 터키에 출장을 가야할 때에도 그저 "크리스마스를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내야 한다는 전망에 실망했을 뿐"이라는 묘사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출장을 가게 되는 순간부터 나치독일 정보부의 표적이 된다. 그는 어느 한 엔지니어가 아니라, 영국 무기 제조사의 엔지니어였기 때문이었다. 그레이엄은 영국을 향한 긴 귀국 여정동안, 평생 생각하지도 못했던 죽음의 공포에 매순간 직면한다.
2차 세계 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더이상 무기 제조사 엔지니어를 평범한 개인으로서 존재하지 못하게 만든다. 전쟁만 아니었다면 당시의 평화주의자들에게 "죽음의 상인" 같은 별명이나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쟁은 모든 걸 바꾸기 시작했다. 그의 출장은 "그저 그런 실망"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로의 여행"으로 바뀌고 만다. 터키에서 "집 (영국)"으로 가는 시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레이엄은 자신이 묵던 호텔에서 습격을 당할 때만해도 그저 어리둥절하지만,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신에게 닥친 위험을 감지한다. 배편으로 귀국 방법을 바꾼 이후에도 기어이 함께 배에 올라탄 독일 스파이/암살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레이엄의 공포는 극에 달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누군가 상선할 수도, 하선할 수도 없는 상황은 그레이엄을 점점 옥죄어온다. 그의 죽음을 바라는 이들이 항상 배 안 어딘가에서 그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기분에, 그레이엄은 공포감을 떨쳐내기 위해 온갖 방법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그레이엄의 격해지는 감정을 중심으로 소설의 긴장감은 절정에 치닫는다. 책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그레이엄은...!
사실 이 같은 소설 소개글에 줄거리를 모두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이미 읽은 사람에게는 길디 긴 내 글이 더 길어질 뿐이고, 아직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소설을 즐길 기회를 빼앗는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앰블러의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칙칙하고 씁쓸한 스파이들의 세계를 묘사한 존 르카레의 소설 등을 주로 즐기는 나의 개인적인 취향을 완전히 저격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앰블러의 소설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보다 "스파이 세계와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사람"은 언제든지 상황에 따라 "관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한 개인이 예상치도 못했던 공포를 어떠한 방식으로 마주하는지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생생하기 그지없다.
작가는 이런 개인이 도무지 처치가 곤란한 공포에 직면했을 때 느낄 법한 감정들을 그레이엄의 행동과 감정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레이엄은 공포를 억누르기 위해 총을 들고 있어보기도 한다. 총이라는 물리적인 방식으로 공포심을 다스리려 시도하기도 한다. 이와 동시에, 배에 함께 탄 무희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 스스로를 심리적으로 안정시켜 보려고 노력한다. 심지어 함부로 털어놓아서는 안되는 극비사항을 털어 놓기도 한다. 총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는 것보다는 효과가 있지만, 불행히도 이 방법조차 그의 공포를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그렇게 그의 공포는 이어진다. 결국 그레이엄이 사방에서 옥죄어 오는 공포를 (외부에서가 아닌)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얻어지는 힘을 통해 힘겹게 마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 깊다. 페이지마다 이어지는 긴장감을 즐기는 동시에, 한 개인이 어떠한 방식으로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며, 어떻게 그 감정에 잠식되며, 그리고 어떻게 공포와 그에 대한 감정을 다스리는가에 대해 주목하며 한 페이지씩 넘겨간다면, 짜릿한 긴장감을 배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주목할만한 점은 앰블러의 소설이 발표된 시점과 소설의 주인공이 존재하는 시점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소설은 1940년에 발표되었고, 소설 속 그레이엄이 위기를 겪는 시점도 2차 세계 대전의 초반으로 보인다 (아마 1940년 쯤으로 생각된다). 2차 세계 대전 (1939-1945)의 아주 초기 -- 혹은 직전 -- 영국인들은 이미 전쟁이 자신들의 현실에 더욱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꼈을 것이다. 나치독일이 서유럽 국가들을 향해 욕심을 드러내는 것도 이전보다 훨씬 분명해진 1939년과 그 다음해인 1940년이 되었을 때는, 영국인들도 "또 다시" 벌어질 세계대전에 휘말릴 것에 대해 걱정과 공포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현실에서도 "공포로의 여행"이 시작되는 시점이었으리라. 이런 분위기에서 앰블러의 '공포로의 여행'을 읽는 영국인들은 마주한 현실에 더욱 이입하여 소설의 페이지를 넘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끝내 스스로 공포를 다스리는 그레이엄의 모습을 그린 '공포로의 여행'이 발표된 당시에, 작가가 상업적 성공을 거뒀음은 의외의 상황이 전혀 아니었음을 짐작해 볼 수도 있다. 자신들이 마주한 상황을 대입했을지도 모를 그 당시의 독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이 가졌을 감정에 이입하여 소설을 읽어나간다면 한층 더 몰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레이엄은 어떻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