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
“나를 여러 가지 정체성으로 나누어야 한다”
퇴직금이라도 주는 것 마냥, 석사학위증 하나가 배달될 것이라는 얘기를 듣는 것으로 대화가 끝났다. 나는 역사학과 행정실에 대학원생 전용 사무실 열쇠를 반납하고 밖으로 나섰다. 천천히 닫히는 철문이 철컥하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닫히는 소리가 내 등 뒤로 들렸다. 건물을 나오자마자 작열하는 남가주의 태양이 내 얼굴을 태우고 있었다. 뺨이 따끔거렸다. 태양을 피하려고 바닥을 보면서 걷기 시작했다. ‘선글라스나 쓰고 올 걸’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고개를 잠시 돌려, 뒤를 보니 어제까지 ‘직장’이었고 내 ‘삶’의 전부였던 건물이 보였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이제는. 후련한 마음이 들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가슴 속을 채웠다. 분명 눈시울을 적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는 나의 모습이 이상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학교 주차장까지 10분여를 걸었다. 언제나 차를 세워 두던 주차장 2층으로 가서, 얼른 차 시동을 걸었다. 다리 한 쪽이 비뚤어진 선글라스를 얼굴에 얹고 코 부분을 지긋이 눌렀다. 아마 뜨거운 햇살을 오롯이 받아내던 차 안에서 굳었다가 녹았다가 하면서 플라스틱이 휘었을 것이다. 주차장을 나가면서, ‘마지막일텐데… 학교 주변을 한 번 돌고 집으로 향할까’했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캠퍼스를 빠져나갔다. 이제는 이 곳과는 영원히 안녕일 것이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면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운전을 하면 할수록 학교는 나로부터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학교가 사이드 미러나 백 미러로도 보이지 않았다. 이 모든 순간들이 합쳐지면서 나는 그 날부터 소속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사학과 대학원생이었다. 하지만 더이상 사학과 대학원생이 아니게 되었다. 내가 원했든 혹은 원하지 않았든, 학업이 중단된 것이다. 그 사실은 내게 꽤 크게 다가왔다. 당장 직업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나의 현재는 과거와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바람에 휘날려 속절없이 흩어지는 종이조각처럼 지난 15년의 세월이 휘발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갑작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1년 전부터 대학원 생활은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이것이 마침내 터진 것이다. 지난 1년동안 나를 죄어오는 그 분위기를 나는 애써 외면했던 것이 틀림없다. 경고등이 끊임없이 울렸지만, 나는 그만둘 기회를 찾지 못했다. 혹은 그만둘 용기가 없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내 의지와 다르게 학업이 중단되었으나,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내가 학교를 그만두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내 정체성의 아주 큰 부분은 ‘사학과를 다니는 사람 (혹은 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사무실 키 반납'이라는 순간의 행위는 나로 하여금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느낌에 휩싸이게 했다. 이것은 곧 내 존재의 위기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학업이 중단되었다는 사실에 허둥지둥하며 이것을 다시 이어보려 했다.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차분히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 시간동안 스스로에게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나의 정체성을 꾸리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새롭게 구성해야만 하는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문득 떠오른 것은 나를 구성하는 많은 것들 중 어느 한 가지가 내 정체성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니게 됨’을 느끼지 않으려면 '나'를 구성하는 특성 중 어느 한 가지에 나의 가치를 모두 몰아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찼다. 이것들은 ‘나’를 구성하는 여러가지 부속이 될 수 있지만, 반드시 분할하여 보관되어야 했다. 혹여나 나를 구성하는 정체성'들' 중 한가지가 사라지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아님'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나는 지난 15년간 이것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오롯이 역사학을 공부하는 것이 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2023년 사학과 행정실에 '키를 반납하게' 되었을 때, 정체성은 온데 간데 없는 내가 되었다. 그 날이 지나고 열흘이 채 지났을 즈음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더운 여름이 시작되었고, 나는 공부를 다시 할지 혹은 다른 일을 찾을 지 우선 고민해대기 시작했다. 내가 왜 사학과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부터 생각하기로 했다. 중학교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교복이라는 것이 겨우 적응되기 시작했던 나의 중학교 시절이다. 물론 그 때는 역사학을 공부하는 애증의 관계가 30살을 넘어설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30대에도 내가 학생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아무튼 사춘기에 접어들 즈음, 나는 관심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고, 이와 동시에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 지에 대해서도 차츰 깨닫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으레 어른들에게서 듣던 칭찬들과 달리, 중학교에서 배우는 심화내용과 그것을 이해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성적표의 숫자들은 내가 무엇에 소질이 있고, 없는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역사 과목에 본격적으로 흥미를 느꼈던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중2 사회 교과서의 첫 페이지를 피던 그 날은 이 다사다난한 여행의 시작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첫 페이지에는 그리스의 미노스 문명과 미케네 문명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