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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크립씨 Nov 03. 2023

우연한 첫 만남

2005년 봄

"서양사와의 만남"


지난 글 마지막에서 뭘 이야기했더라. 아 맞다. 그리스의 미케네와 미노스 문명.


처음 보는 단어였던 ‘미케네’와 ‘미노스’라는 이름은 어렸던 내게는 너무도 이국적이어서 간혹 헷갈리곤 했지만, 그 이름들을 시작으로 즐거운 서양사 수업이 눈 앞에 펼쳐졌다. 서양사를 배우는 사회시간은 언제나 기다려졌고, 기다림을 참다 못해 미리 사회 교과서를 넘길 때도 있었다. 아무래도 중학교 2학년 때는 사회교과서를 들여다 보는 시간이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유일하게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번 글에서는 중학생이던 내가 어떻게 사회과목 - 그 중에서도 역사과목 - 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써보려 한다.




으레 단체 생활로 표현할 수 있는 그 당시의 학교 생활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취향 같은 것은 아무렴 상관 없었다. 피할 수 없는 ‘의무 교육’은 나로 하여금 지루하고, 때때로는 긴장되는 그 공간에 몇 년이나 머물러 있게 하였다. 중학교에서 보낸 기간이 1년을 넘어서고 있었다. 큰 치수로 샀던 교복은 내 몸에 알맞게 맞춰지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된 것이다. 아직도 그 날의 분위기가 머릿속에서 어렴풋이 기억난다. 아침 일찍 학교에 들어서니, 여전히 대부분 학우들이 오지 않은 교실에는 봄날의 햇살이 창문과 커튼을 뚫고 교실을 비추고 있었다. 겨울방학동안 쌓여있던 교실의 먼지가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현실적이지 않은 장면이었다. 아무 자리나 앉아서 첫 날이 아무렇게나 흘러가게 내버려두었다.


나는 언제나 사회과목이 좋았다. 단순히 다른 과목들을 못해서 이것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국어, 영어 등에 비해 수학과 과학 과목을 상대적으로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우선 나는 암기과목이 즐거웠다. 무언가를 외워서, 어떠한 정보가 내 머릿속에 자리잡는 것을 느끼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이것과 더불어, 어릴 적 나는 사회과목을 통해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이 좋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릴 적부터 여러 사람과 동시에 어울리는 것은 그다지 즐기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이 동시에 어울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모습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회’과목이 어린 나의 눈길을 쉴 새 없이 끌었다. 사춘기 소년의 눈에는 사회라는 건 도통 이해가 안되는 것들 투성이였다. 초등학교 때만해도 모두가 사이좋게 지내야 하며, 배려만이 넘쳐야 하는 사회라고 배웠지만, 10대 중반이 되어 내 눈에 비치는 사회는 그러지 못했다. 내 머릿 속에는 여러 질문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가령 예를 들자면: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특정 행동을 하는 것일까?' '왜 어떤 특정 집단의 사람들은 다른 집단의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과거에 어떠한 특정 행동을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했을까?'와 같은 질문들 말이다. ‘사회’라는 과목은 이것들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과정이라 아주 겉표면적인 설명이었지만서도.




중학교 2학년 사회과목에서 처음 배웠던 것은 고대 그리스 세계였다. 서양사라는 영역을 처음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 때 당시 첫 단원이 서양사가 아니었다면 나의 진로는 아주 달라졌을 것이다 (화살을 쏠 때 오차가 조금이라도 난다면 그 화살이 도착하는 과녁에서는 아주 먼 곳에 화살이 꽂히듯 말이다). '서양사'라는 과목을 접한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지금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정보를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나간다는 느낌은 나를 매일 즐겁게 해주었다.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그 때만큼 무언가를 암기하고 배우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던 적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서양사를 접하면서 느꼈던 또 다른 즐거움이라면 인과관계를 생각해보는 활동이었다. 고대 그리스부터 짚어가는 과정에서 인간 역사에 있었던 대부분 사건들은 별개로 존재하지 않고, 모두 인과관계가 얽혀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은 내가 앞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도구가 될 것 같았다.


이즈음 나는 역사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춘기에 가지게 되었던 질문들을 대답하기에 역사학이 무척 유용할 것 같았다. 2005년 봄이 지나갈 즈음에 나는 사학과에 가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미케네와 미노스로 시작해서, 대학교를 다닐 시절에는 그리스로 발굴 프로젝트까지 다녀왔다. 반전이라면 (?) 내 전공은 고고학이 아니라 역사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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