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겨울
“애증의 튜토리얼 수업 1”
서양사 강의를 듣고 튜토리얼 수업이 이어져서, 강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순서상으로는 좋겠으나, 지난 글을 튜토리얼 수업으로 끝 맺은 후부터 튜토리얼 수업에 대한 나의 경험과 생각을 먼저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다. 그래서 이번 화(話)에서는 튜토리얼 수업들 뿐만 아니라 그 곳에서 본 여러 종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가급적이면 1편으로 끝내고 싶지만, 튜토리얼 수업에 대한 기억들은 꽤 생생해서 더 길어질 수도 있다.
내가 1학년 때 들었던 모든 수업들은 튜토리얼 수업이 있었다 – 심지어 천문학 수업까지도!
정치학 개론
내 인생 첫 대학 수업이었던 ‘정치학 개론’도 튜토리얼 수업이 있었다. 한 강의에 1,000명도 넘었기 때문에 25명 정도가 들어갔던 튜토리얼 수업은 모두 합해 40-50개 정도가 있었다. 그 중에 아무 튜토리얼 클래스나 등록해 뒀고, 내 튜토리얼 수업은 강의가 끝나고 2일 후였던 것 같다. 중앙도서관 꼭대기 층에 교실이 있었기 때문에, 수업 당일에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복잡한 미로 같은 도서관에서 겨우 길을 찾아서 꼭대기 층에 다다르니 창문 하나 없는 방이었다. 꼭대기 층이었지만, 그 곳은 꼭 지하실 같았다.
수업조교 (TA: Teaching Assistant)는 아무 표정 없이 앉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신입 대학원생이었던 것 같다. 본인도 긴장했을 것이다). 그 표정은 굉장히 고압적으로 느껴졌고, 그 때문에 더욱 쭈뼛쭈뼛하며 남는 자리에 앉았다. 영어가 한번에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옆에 앉은 사람들과 겨우 통성명을 마치고 나서야, 수업이 시작됐다. 강의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며, 수업조교는 무작위로 사람들을 불러, 생각을 말하게끔 했다. 무슨 질문을 하는지도 정확히 이해가 안됐고, 게다가 수업 이해도 안됐으며 영어도 못하는 나로서는 튜토리얼 수업 때마다 “수업조교와 눈 마주치지 않기” 게임을 했다. 대부분의 경우, 게임에서는 이겼다. 하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너무 노력한 나머지, 오히려 호명 당할 때도 있었다. 결국 힘든 튜토리얼 수업들이 됐다. 그래도 정치학 개론의 튜토리얼 수업은 좋았다. 격식 차린 (?) 발표수업도 없었고, 중간/기말고사에 대한 정리도 해주었다. 수업조교의 도움으로 무난히 정치학 개론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천문학 개론
‘천문학 개론’ 수업도 튜토리얼 수업이 있었다. 이과과목과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영원히 안녕이라고 생각했으나, 천문학을 듣게 된 이유는 자연과학 수업 몇 개를 들어야하는 것이 졸업 요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공강이 최대한 없도록 머리를 굴려, 천문학개론 튜토리얼 수업을 시간표에 넣었다. 그 수업은 채광이 좋은 건물의 1층에 위치한 교실에서 진행되었다. 어두컴컴한 지하실 같지 않아서, 훨씬 좋았다. 비(非) 이공계 학생들이 주로 졸업을 위해 수강하던 과목이었기 때문에 튜토리얼 수업에서 어려운 (?) 수학 문제 같은 것들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아주 다행이었다.
그 수업을 진행하던 수업조교는 중국에서 유학을 온 대학원생이었는데, 원어민보다는 영어가 능숙하지 않았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았던 이 수업조교는 무엇이든 설명할 때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 수강생 대부분이 비(非) 이공계 학생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점이 더 이로웠다. 발표 같은 것이나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튜토리얼 수업은 그냥 열심히 출석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출석만 해도 충분하다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주 느슨한 교양 수업이었기 때문에 학기 중에는 천문대 구경과 가상의 밤하늘 구경 (큰 천막 안에 들어가서 프로젝터로 빛을 쏜 후, 꼭 밤하늘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있어서, 어려운 과학과목이 조금이나마 흥미롭게 느껴졌다. 천문학 개론을 듣는 학생들 중에는 중국에서 온 유학생들도 정말 많았다. 당연히 튜토리얼 수업에도 적지 않은 숫자가 있었는데, 그 학생들과 수업조교가 중국어로 질의응답을 할 때는 아주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나도 한국어로 무언가 묻고 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영어로 모든 걸 해야 했던 것보다 조금은 수월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회학 개론
사회학 개론 수업도 수강했다. 정치학을 맛보면서, 사회학의 맛은 어떨지 궁금해서 수강했다. 물론 사회과학 전공 특성상, 학년을 올라가서 듣게 된 사회학 과목에서 숫자들이 “깜짝 등장”하는 것을 보자마자 도망쳤다. 사회학도 내 복수전공 후보에서 탈락이었다. 그래도 1학년 과정은 꽤 재미있었다. 사회학 개론 수업에서는 사회학 전반에 걸쳐 나오는 굵직굵직한 이론들을 맛보기로 소개해주었고, 주요 학자들에 대한 설명도 함께 나왔다. 이따금 그래프가 나오고는 했지만, 그럭저럭 이해할 만했다. 사회학 개론 수업도 튜토리얼 수업 참여는 필수였다.
사회학 튜토리얼 수업은 어수선했다. 인문/사회 전공이 몰려 있는 어느 한 건물의 교실에서 진행되었다. 내가 들었던 1학년 레벨의 사회학 개론 수업은 타 과목들보다 유독 ‘암기과목’의 성격이 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수업조교도 강의 내용만 주구장창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이 튜토리얼 수업은 갈 때마다 어색하게 들리는 (그리고 왠지 조금 먼 거리에서 느껴지는? 아득하게 느껴지는?) 수업조교의 목소리만 교실을 채웠다. 중간/기말 고사를 마치 학원 족집게 강사처럼 집어주고는 했는데, 꽤 도움이 되었다. 정작 시험을 칠 때, 수업조교가 복습해 준 문제들이 나와서 좋았으나, 영어로 읽는 것이 힘들었던 탓에 주어진 시간으로는 모든 문제를 세세히 보며 풀 수 없었다. 턱걸이로 겨우 B를 받았던 것 같다.
번호를 매겨가면서 써봤지만 결국 튜토리얼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 글에서 모두 담을 수가 없게 되었다. 다음 글에서는 서양사 개론의 튜토리얼 수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사학과 과목을 수강하던 중에 일어났던 일들이나 마주친 사람들을 풀어내려 한다.
그나저나 옛 기억을 더듬어 가며, 튜토리얼 수업의 이야기를 쓰다 보니, 수업조교들의 입장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 당시에는 수업조교들이 무척이나 “어른” 같아 보였으며,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다소 다가가기 힘들고, 심지어 가끔은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도 기껏해야 20대 혹은 30대의 청년들이었을 것이다. 각자의 연구를 진행하면서도 매 학기마다 40-60명을 담당해야했던 그들도 힘들었을 것이다. 올해 잠시나마 수업조교로서 활동을 하고 나니, 그 당시 튜토리얼 수업들을 맡았던 수업조교들의 고충이 조금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