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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파 May 10. 2023

틱틱...붐

커피 한 잔 값은 할만한 글이 써졌으면 좋겠다.

노트북을 켜고 자리에 앉은 지 2시간이 지났다. 바베큐 치킨 치아바타 샌드위치를 먹은 시간과 나루토를 본 시간을 빼면 1시간 30분쯤 됐을 거다. 유튜브에서 괜찮은 플레이리스트를 고른 시간도 빼야겠지.

     

“글이 안 써진다. 이렇게까지 안 써진다니.”


벌써 몇 주 째 쓰고 싶은 글이 없다. 써야 하는 글은 있는데 쓰고 싶은 글이 없다. 쏟아내고 싶어 안달이 났던 작년과는 이렇게나 다르다. 혹시 이런 건 아닐까. 인생에서 쓸 수 있는 글의 양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나는 이미 다 써버려서 더 이상 몸에 고여있는 게 없는 거다.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써버리는 바람에 이제는 카페에 앉아있든, 누워있든, 노트북에 쓰든, 노트에 쓰든 아무것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꽤나 절망적인 생각이네.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을까. 모르겠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왜 글을 쓸까. 그런 사람들 말이다. 유명한 김영하 작가님이나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장강명 소설가님이라든가. 매일 8시간씩 글을 쓴다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든가. (8시간 근무시간이면 직장인 아닌가요.) 왜 혼자서 일기장에 쓰지 않고 출판했을까. 찌질하든가 최대한 찌질하지 않아 보이도록 꾸며낸 이야기를.


A형 간염 예방주사를 맞은 왼쪽 어깨가 저려오기 시작한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삶은 계속되어서 몸은 백신에 반응한다. 그나저나 이 글은 어디까지 갈 생각이지?


오늘 아침엔 조너선 라슨의 삶을 다룬 <틱틱...붐>이라는 뮤지컬 영화를 봤다. 조너선 라슨은 뮤지컬 <렌트>를 만든 사람이다. 비극적이게도 그는 <렌트>가 초연하기 전날 사망했다고 한다. 브로드웨이에서 12년간 대박을 친 그 뮤지컬이 자기 것인지 모르고 죽었다. 


영화는 식당에서 웨이터 일을 하며 간신히 뉴욕에 붙어 살아가는 조너선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는 무명 작곡가로 8년간 <수퍼비아>라는 뮤지컬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드디어 워크숍을 열어 제작자들에게 <수퍼비아>를 선보일 기회를 얻게 된다.     


조너선은 <수퍼비아>의 중요한 한 곡을 아직 작곡하지 못했었다. 그는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연주자를 구할 돈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집에 전기가 끊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틀 전까지 그는 <수퍼비아>의 한 곡을 완성하지 못한다. 삶은 막장으로 치달아 그는 여자친구와 헤어질지 결정해야 하고 제일 친한 친구는 에이즈에 걸린다. 그리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30살 생일은 가까워진다. 머리가 터지기 직전인 상황에서 그는 수영을 하러 간다.


 “잠깐, 수영을 하러 간다고?”     


그렇다. 그는 수영을 하러 간다.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려는 수많은 생각을 치우고 어깨와 등과 손짓과 물에만 집중하려 한다. 그렇게 미친 듯이 수영장의 양 끝을 왕복하던 그에게 하나의 선율이 떠오른다. 그 선율이 <수퍼비아>의 마지막 곡이자 가장 중요한 곡이 된다. 그리고 워크숍 당일, 뮤지컬은 찬사를 받으며 마무리된다.     

이렇게 끝이 나면 멋진 뮤지컬 한 편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수퍼비아>는 지나치게 ‘예술적’이어서 어떤 제작자도 뮤지컬 제작에 나서지 않는다. 조너선은 진절머리 내며 또다시 <수퍼비아>를 만들었던 8년을 반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가장 친한 친구와 유명한 뮤지컬 작곡가, 그리고 자신의 매니저의 말을 듣고 계속 작곡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낸 두 번째 작품이 <틱틱...붐>이었고, 세 번째 작품이 <렌트>였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그는 계속 써내려갔을 것이다. 뉴욕의 문댄스 식당에서 평생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뮤지컬은 그냥 그의 삶이었다.     


<틱틱...붐>을 보면서 어떤 이에게는 소명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조너선 라슨은 <렌트>의 성공 이전에 사망하면서 뮤지컬이 자신의 소명이었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소명은 확신할 수 없는 거다. 그냥 써내려가보는 것이다. 내게는 글쓰기가 그런 것이다. 오늘 한 글자도 써지지 않더라도 놓을 수가 없다. 커피 한 잔 값을 하지 못한 채 카페를 나서더라도 내일 또다시 카페로 나서게 된다. 돈도 안 되는 이 걸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글을 읽은 사람들의 칭찬 한 마디에 또다시 노트북을 연다.   

   

“계속 써내려갈 것이다.”     


이 글은 선언문이다. <틱틱... 붐>의 조너선 라슨에게 감동하고 그가 계속 작곡을 하는 이유에 빗대어서 나도 그렇게 살겠다고. 그렇지만 내일은 한 글자부터 괜찮게 써졌으면 좋겠다. 커피 한 잔 값은 해야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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