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로파 Jul 15. 2023

마녀와 일기

시선 #3

공연장에서는 BTS의 <Mic Drop>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분명 고대 그리스 비극을 창안한 연극이랬는데 BTS가 웬 말인가요. 심상치 않았다. 끝나고 직후의 감상은 이거였다. 찢었다. 방금 바닥에 마이크 떨어졌다. 내가 뭘 본거지?     


메디아는 살갗 바로 아래까지 이아손에 대한 사랑으로 부풀어 차오른 풍선이었다. 그녀는 고향을 배신하고 도망쳐서 이아손을 따라 코린토스로 왔다. 그리고 이아손에게 닥친 시험을 통과시켜 이아손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자식도 둘이나 낳았다. 자기들끼리 깔깔대며 놀 수 있을 만큼 키워냈다. 그녀는 할 일을 다 했다.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이제 사랑만 하려 했을 것이다. 바로 그때, 모든 것이 완벽했을 때 이아손은 그녀를 배신한다. 메디아는 사랑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녀의 내조가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메디아는 사랑으로 이루어진 존재였기 때문에, 아니 사랑밖에 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사랑이 부정되는 건 존재가 부정당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아손에게 네 앞에 내가 있음을 인식시키고자 이아손 주위의 사람을 산산조각낸다. 사랑은 사람도 찢는다. 사랑 그게 뭐라고.     


존재에 관한 강력한 외침은 끔찍하다. 이아손의 내연녀를 포함해 자신의 자식을 죽이면서까지 메디아는 자기 존재를 증명한다. 연회장에서 벌어지는 피의 원맨쇼다. 미쳐서 마구 휘두르는 것처럼 보여도 정확히 재단하고 움직이는 무도다. 그러나 이 공연은 미디어가 조명하면서 우습고 소모적인 것으로 전락한다. 미디어에서 렌즈의 방향과 편집점은 언제나 타인이 가지고 있다. 수익률을 위해 자극적인 장면만 교묘히 잘라서 조각보를 기워내듯 붙인다. 그래서 미디어가 조명하는 메디아는 목각인형처럼 어깨를 인위적으로 들썩이며 ‘흑-흑-흑-흑-’ 울고 호피 무늬 레깅스를 입고서 하는 요가를 하고 있다. 악마의 편집도 그보단 천사 같을 테다. 연극이 끝나고 배우들이 메디아의 소품을 전시하면 관객들은 1:1의 비율로 찍어 그 참상의 현장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이 작품은 관객조차 참여하는 확장성 코미디다.     


메디아가 일기를 썼다면 어땠을까. 글쓰기는 윤색되거나 왜곡되지 않고 원형을 지켜내는 강력한 힘이다. 글을 쓸 때는 오로지 본인만이 목소리를 낸다. 고심해서 단어를 조합해 문장을 만드는 것도, 문장을 삭제하고 추가하는 것도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편집의 주도권을 오롯이 쥐고서 써 내려간다. 그녀만의 시선으로 만든 이야기 하나를 이 세상에 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녀의 일기를 읽으며 그 비극을 제대로 인식했을 것이다. 글은 읽는 사람이 눈으로 단어를 쫓아가며 종이를 넘기고 상상하니까. 메디아를 여전히 우스꽝스러울 만큼 사랑에 매달린 마녀로 결론짓든, 자기인식이 강한 싸이코 살인자로 결론 짓든 그 과정은 미디어와 달리 능동적이다. 그러니 글쓰기는 최첨단 21세기에도 마술적인 힘이 있다. 한 존재를 온전하게 지켜내는 힘 말이다. 그러니 오늘도 글을 쓴다. 써 내려가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참을 수 없는 깊이에의 끝없는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