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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미 Feb 23. 2024

숨길 수 없는 방울

세상에 강아지만큼 감정을 파악하기 쉬운 존재가 있을까?

간식을 들이밀며 ‘기다려’ 라는 말에 눈은 간식을 고정한 채 앞으로 나가려는 입을 겨우겨우 앞발을 동동거리며 막는 와중에도 꼬리는 기대감에 부풀어 살랑살랑.

이 세상 살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할까, 앞에선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다른 뜻 아니었을까 생각하는데 쏟는 시간만 한 세월인데, 너라도 그냥 너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니,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


정방울은 모든 것이 티가 난다.

‘산책 갈까?’ ‘간식 줄까?’ 등 방울이가 좋아하는 말은 모두 ‘~까?’로 끝나서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까?’만 말해도 좋은 것인 줄 알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방울이가 싫어하는 말은 ‘~게’로 끝난다.

‘금방 올게.’, ‘갔다 올게.’ 방울이에게 ‘~게.’는 혼자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 말을 들으면 따라오려다가도 멈칫 하며, 없는 눈썹이 아래로 축 쳐지고, 모든 털에 실망의 기력이 역력하다.

외출 후 집에 다시 돌아오면 반갑다고 꼬리가 떨어질 듯이 흔들며, 물을 마시는 중에도 꼬리는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나만 바라보는 정방울은 집에서 꼭 내 옆에 붙어있지 않더라도 내가 보이는 위치에 있는데, 예외 상황이 존재한다.

침대에 함께 누워있다가 공부를 하러 책상에 앉아있을 때 나를 감시하러 따라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방울이가 있는 곳으로 귀를 기울이면,

‘찹찹찹찹‘ 핥는 소리가 난다.

이 녀석,

항문낭이 차거나, 음식 알러지가 생기면 몸을 핥는데, 핥을 땐 혼난다는 걸 알아서 내 시야 밖에서 몰래 핥는다.

‘방울!’ 하고 부르며 현장을 잡으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곳을 쳐다본다.


또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방울이가 참아주는 것은 아니다.

차 뒷자석에서 동생이 내 어깨에 기대 잠이 들었을 때, 자세가 불편하지만 동생을 생각하며 그 시간을 참아주는 것과 달리 방울이와 낮잠을 자면서 통실통실한 앞발의 부드러운 느낌이 좋아서 만지고 있으면

탁, 하고 빼버린다.

다신 만지지 말라는 듯 등을 돌리기도 한다.

방울이의 체온을 느끼고 싶어서 안고 있으면 불편하다는 듯 앞발로 나를 밀고 품을 빠져나가 나와 가장 먼 대각선 끝자리로 가버린다.

가끔씩 끝까지 안겨있기도 한데, 그때도 역시 내가 잠들었다 싶으면 바로 빠져나가 자기 자리로 가버린다.

날 좋아하는 것과 불편한 것을 참아주는 것과의 상관관계는 없다는 듯이.


호불호도 명확하다.

강아지라 먹는 것만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다른 강아지들은 다들 좋아한다는 바나나, 고구마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물렁한 느낌이 싫은 건지 취향이 확실하다. 그 와중에 기준은 모르겠지만 사과는 좋아하고, 상추도 잘 먹는다.

좋아하는 강아지 취향조차 확실하다. 산책하면서 여러 강아지 친구들을 만나지만 방울이가 제일 반가워하는 건 흰색 작은 강아지다. 다른 강아지들이 오면 내 뒤로 숨어버리면서 흰 털의 강아지들에겐 엉덩이 냄새도 맡게 해주면서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포메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방울


방울이랑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숨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간혹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마음을 주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꼭 비슷하거나 같은 크기의 마음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내가 그들을 생각한만큼 그들은 나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방울이는 사랑을 낭비하는 법을 모른다.

자기가 받는 사랑을 온 몸으로 표현해준다.

하다못해 예쁘다고 쓰다듬어 주면 고맙다고 내 손을 핥아주는 방울이다.


애써 괜찮은 척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너의 티나는 모든 행동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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