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나온 여자 아이가 한 명 있었다. 당시 나이에 비해 키가 조금 큰 편이었고, 까무잡잡하고 남성스럽게 생겼던 걸로 기억한다. 덥수룩하고 부스스한 헤어 스타일과 늘 구부정했던 자세. 성격은 털털하고 늘 밝은 얼굴을 하고 다녔던 것 같다.
나는 그 아이가 왜인지 참 싫었다. 말 한마디 제대로 섞어본 기억은 없지만 그녀의 어딘가 바보 같은 행동과 말투가 유난히 거슬리고 보기가 싫었다. 나와의 어떤 접촉도 없었거니와 해를 입힌 적도 전혀 없다. 그냥 싫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그 아이와 같은 반이 됐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만화 캐릭터를 자주 그렸던 것 같다. 그녀의 가방 안에는 그림을 그려놓은 여러 권의 공책과 무수한 종이들이 담겨있었다. 어느 날은 정말 못된 생각이 들었다. 쉬는 시간에 그 아이가 자리를 비운 틈에 가방의 그림들을 모두 들고 복도의 분리수거함에 다 넣어버렸다. "너 얘 진짜 싫어하는구나.", "응. 왜인지 너무 싫어." 가방에서 그림들을 꺼내면서 친구와 한 대화였다.
그리고 몇 교시가 흘러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당시 내 보물 1호였던 나의 첫 휴대폰이 사라진 것이다. 곡선 형태의 최신형 슬라이드폰이었는데,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던 (소유자로서의 기억으론 그렇다) '돌핀폰'이었다. 아무리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빠한테 혼날 걱정과 좌절감이 몰려왔고, 혼자 화장실에 가서 엉엉 울었다.
점심시간이 지나 5교시 쉬는 시간 즈음에 옆반 선생님이 한 손에 익숙한 물건을 들고는 찾아오셨다.
"분리수거함에서 발견했는데 이거 누구 거야?"
내 휴대폰이었다.
당시에는 분리수거함에 내 휴대폰이 왜 들어갔는지, 누가 버렸는지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소중한 내 휴대폰이 다시 내게 돌아와 준 사실에 대한 안도감만 가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이가 내 휴대폰을 버렸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모두 같은 날에 벌어진 일이었고, 내가 그녀의 그림을 버리는 순간의 수많은 목격자 중 누군가 그 아이에게 내가 범인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화가 나서 복수를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 사이에 그녀와의 다툼이나 대화 한마디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보복을 했던 것이다.
나는 그때의 행동이 생각보다 자주 생각이 나곤 한다. 내게 어떤 해도 입힌 적 없는 아이를 유난히 싫어했던 감정과 이해할 수 없었던 나쁜 행동. 나는 아직도 그때의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이야기에는 결말이 없다. 그저 그 시절의 내가 왜 그랬는지, 왜 그렇게도 그 아이를 싫어했는지 여전히 의문만 남는다는 결말이다.
다만 알 수 있는 점은 나는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이후에 그렇게 누군가를 괴롭힌 적은 없다. 내 기억상으론 그렇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품으면 망설임 없이 누군가를 충분히 괴롭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의 행동과 감정들에 대한 사과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