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한 지 1달이 조금 지나고 있다.
하루 일과는 9~10시 사이에 느즈막히 일어나서 헬스장에 간다. 1시간 근력 운동을 한 후, 트레드밀에서 5km를 뛴다. 샤워까지 하고 나오면 12시 반. 집에 와서 식빵 한 장을 굽고 그 위에 땅콩 버터를 바르고 슬라이스로 자른 사과를 올린다. 내 최애 샌드위치 조합. 가을 사과는 참 아삭하고 맛이 좋다. 날씨가 차가워져서 따뜻한 커피, 아니면 차를 내린다.
간단히 아침 겸 점심을 마치고 집 안에서 어슬렁 거리다가 노트북을 연다. 지인에게 받은 외주 작업을 금방 해주고 오늘도 채용 공고를 둘러본다. 지원할 만한 곳이 있으면 지원서를 한 두군데 넣어본다. 최근에는 지원한 회사에서 과제 전형이 있어서 일주일간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열심히 과제물을 만들고 겨우 제출했다. 열심히 했는데 떨어지면 많이 서운할 것 같기도 하지만서도, 이제는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심정이다. 교회를 안다닌지 1년은 넘은 것 같다. 그치만 이따금씩 마음이 힘들 때마다 기도는 하곤 하는데, 이 길이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면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쨌든 공식적인 하루 일과는 3시면 끝난다. 추가적으론 엄마랑 산책하거나, 책을 읽거나 그냥 누워 있거나.
조금은 괴롭다. 얼른 일을 하면서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생산적인 하루라는건 뭘까? 금전적인 생산이 이루어지는 생활이야말로 생산적이라고 칭할 수 있는걸까?
요가를 하고 싶어서 다녀볼까 생각한지 몇 주가 지났지만 생각만 하고 있다. 평소의 나였으면 길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등록해서 다니고 있을텐데. 아직 이직도 못하고 있는 마당에 무슨 요가냐 하는 생각이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여유 자금은 있지만 취업을 언제 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우선 직장을 잡고 결정 해야겠다며 모든 소비적인 것들을 미루고 있다.
어쩌면 지금의 이런 생각 자체가 문제일지도 모른다. 미래의 두려움 때문에 생산적이지 못한 하루들을 보내게끔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쩌겠어. 나는 아직 마음의 여유가 없는걸. 그래도 친구들의 말에 따라 1년은 채우고 퇴사하길 참 잘했다. 퇴직금이라는게 생각보다 든든한 존재였구나. 역시 '돈=여유'는 공식이다.
오랜만에 동네에서 친구를 만날까하고 약속을 잡았다. 언덕 위 편의점에서 맥주 한 잔을 약속했지만, 야근 때문에 늦어져서 결국 약속은 취소됐다. 연신 미안하단 말을 내뱉는 친구. 늦게까지 야근하는 네가 더 안타깝기만 하지. 괜찮다며 고생해라 답장하고 카톡창을 닫았다. 어딘가 씁쓸한 마음이 들긴 한다. 이제 겨우 30대에 진입했는데 예전에는 부르면 나오던 친구들이 벌써 슬슬 만나기가 힘들어진다. 일상을 공유하던 친구들에게 선뜻 연락을 하기도 망설여지기까지 한다. 이렇게 고독한 어른이 되어가는걸까? 아 싫다!
워킹 홀리데이로 호주에서 지내고 있는 4살 아래 여동생에게 연락을 한다. 내가 언니지만 내가 더 의지하는 사람이다. 내 기분이 어떻고 오늘은 어떻고 주절주절 하소연을 한다. 동생은 별로 성의껏 대답을 해주진 않지만 동생에게 징징대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된다. 동생이라도 없었으면 나는 아마 우울증에 시달려 벌써 이생에는 없는 사람이 됐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잔잔하고 비생산적인(?) 하루들로 버텨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