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가 포기에 익숙한 이유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포기에 익숙해져만 갔다.
어렸을 때부터 레고를 좋아했다. 네모반듯하면서도 각졌기에 만드는 것들도 직선 형태로 만들어져서 보기가 좋았다. 간결하고 깔끔했고 정갈해 보였다. 물건 정리할 때도 그랬다. 원하는 위치에 정해진 물건이 있어야 했고, 내가 찾을 때 없어지면 하루 종일 찾곤 했다. 내 물건 관리 하나를 못하다니 라는 자책과 함께 잃어버린다는 불안감을 없애고자 노력했다.
오와 열이 맞을 때 희열을 느꼈고,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큰 성취감을 얻었다. 내가 도전한 것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했고, 극복하고자 꼭 성공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생겼었다.
공부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족한 머리로나마 공부를 했고 시험을 쳤었다. 성적은 내가 노력한 만큼 나오지 않았다. 엉덩이에 물집이 잡혀가며 노력을 했었지만, 그 결과는 나 스스로를 실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한 번 두 번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일이 많아지던 찰나에 나는 그만 나 스스로를 놓아버렸다. 내 삶은 내가 아무리 완벽하게 가꾸려고 해도, 세상이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공부를 손에 놓았고, 마시멜로이론을 정면 부정하기까지 이르렀다.
어차피 나중에 행복을 얻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의 행복을 얻어야 한다고. 카르페디엠이란 말이 가슴에 새겨졌고, 꿈을 위한 공부를 하기보단 당장의 기쁨을 위한 게임을 선택했다.
크나큰 실수였다. 게임은 내 인생을 어지럽혔고, 어렸을 때 내가 그리던 삶이 아니었다.
작년에 처음으로 친구들이랑 점을 보러 갔었다. 솔직히 한 번도 믿지도 않았고, 스스로 찾아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삶이 힘들었고, 불확실해서 내 삶을 알아보고자 했다. 예전에 종종 손금과 타로카드를 봤었던 적은 있었지만, 점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한편으로 무섭기도 했다.
점집에 들어가자마자 나보고 판검사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재차 물었다. 혹시 큰 일 하시지 않으시냐는 질문에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말했다. 큰사람이 될 운명인데, 어찌 이렇게 살고 있는고?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은 아니었다. 손금과 타로에서도 난 태어나길 큰 인물이 될 사람이라는 소리를 종종 하곤 했다. 어렸을 때도 영재라고 소문이 날 정도로 유별났다고 한다. 하지만 어렸을 때 나 자신에게 실망했어서였을까, 나 스스로를 계속 가둬두고 부끄러워했었던 것 같다.
얼마 전 오은영 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일에 늦장을 부리는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완벽주의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나는 그 말에 공감했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마다 결과물이 나 스스로 부끄러울 정도로 낮을 퀄리티를 만들까 봐 전전긍긍한다.
그러다 보니 무엇을 할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자 하고, 그렇게 스스로를 혹사시켜 갔다. 몸은 점점 안 좋아졌고, 삶의 의욕보다는 피곤함과 짜증이 밀려왔다.
완벽하면 최고가 될 것이고, 삶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어렸을 때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이번에도 세상은 나를 거절했다. 원하는 대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완벽이란 허상에 잡혀 살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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