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네는 이미 끝났지.”
“지방대? 그래도 괜찮은 데 다녔네.”
“거긴 공장만 있고, 할 게 없어.”
나는 어릴 적부터 지방에 대해 무심코 던져지는 이런 말들을 자주 들었다.
그땐 이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사실처럼 받아들였고, 때로는 나조차 그렇게 생각했다.
지방은 낙후되어 있고, 기회는 부족하며,
가장 유능한 사람들은 언젠가 서울로 가야 한다는 인식이,
마치 자연의 법칙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문득, 질문이 들었다.
지방은 언제부터 ‘실패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을까?
사실 지방의 쇠퇴는 단순한 경제 지표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먼저, 사회적 서사에서의 후퇴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지방은 성장의 공간이었다.
창원, 울산, 구미, 포항 같은 공업도시들은
수출과 고용의 중추였고, 수많은 청년들이 공장을 통해 중산층이 되었다.
지방에는 ‘살 수 있는 이유’가 있었고,
그 지역에 있다는 것이 ‘결핍’으로 읽히지 않았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판이 바뀌었다.
산업구조가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정보통신 혁신과 금융 자본의 집중이
서울이라는 공간에 집중되면서 지방은 상대적으로 뒤처지기 시작했다.
지방이 낙후된 것이 아니라, 낙후된 이미지가 생성된 것이다.
언론은 대부분 서울에 있고,
정책 결정권자도 서울에 살고 있으며,
성공한 기업가와 스타트업의 서사는 거의 예외 없이 수도권을 무대로 삼았다.
그렇다 보니 지방에 사는 사람은 ‘그곳에 머문 사람’,
‘이주에 실패한 사람’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정치도 그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단어는 끊임없이 반복되었지만,
실제 예산과 정책의 중심은 수도권이었다.
광역시에 ‘혁신도시’를 만들고,
지방에 ‘스타트업 허브’를 설치한다는 말은 있었지만,
그것은 대부분 중앙의 모델을 복사해서 붙여넣는 방식이었다.
지방의 고유성과 지역민의 생활 리듬, 산업 기반을 이해한 설계가 아니었다.
그래서 지방은 점점 정책의 대상이 되었다.
문제를 가진 공간, 돌봐줘야 할 공간,
서울의 성공을 나눠줘야 하는 공간으로 그려졌고,
그 자체로 자립하거나 선도하는 이미지는 퇴색됐다.
지방은 실패하지 않았는데,
실패한 것처럼 말해지고, 설계 되었으며, 보여졌다.
그 인식은 청년에게 가장 깊은 영향을 미쳤다.
지방대 출신 청년은 서울의 청년과 동일한 노력을 해도
기회의 첫 관문에서부터 차별을 느꼈고,
그 지역에 계속 살고자 한다는 말은
야망이 없는 사람처럼 받아들여졌다.
나는 이 경험을 수도 없이 들었고,
스스로도 체감한 바 있다.
그러나 정말 지방은 실패했을까?
아니다.
많은 지방 도시에는 여전히 수출 중심의 제조기업들이 존재하고,
고용을 창출하고 있으며,
지방대학도 지역 사회와 연계한 기술 기반 교육을 꾸준히 하고 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서울 중심 시선에선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곳에서 살아야 성공이고,
그곳에서 나오는 말이 뉴스가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국가의 공급망, 전략 산업, 고용 기반,
그리고 식량과 에너지는 대부분 지방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지방은 실패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그 가치를 바라보는 방법이 실패했을 뿐이다.
그 인식 전환이 없다면,
어떤 정책도, 어떤 균형발전 계획도
지방을 실질적으로 회복시키지 못할 것이다.
지방은 구조적 문제 이전에, 시선의 문제다.
서울을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구조를 깨지 않는다면,
지방은 계속해서 “안타까운 공간”으로만 남을 것이다.
이 장을 쓰면서 내가 확인하고 싶은 건 하나다.
우리는 지방에 대해 말할 때,
정말 그 공간에 가본 적이 있었는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방은 실패하지 않았다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는 지금, 정치 이전의 정치,
즉 구조 설계의 언어로 말하고 싶다.
그 설계의 첫걸음은,
실패하지 않은 것을 실패한 것처럼 취급하지 않는 데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