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이상한 남자라 생각했다. 나이도 기껏 20대 초중반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데 그것은 소위 '힙'하다고 부름 직한 독특한 패션 때문만은 아니었다. 얼굴만 보더라도 나보다 한참은 어린 것이 확실했다. 지천명이라 불린다는 내 나이 50에 하늘의 뜻을 알기는커녕 아직도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있는 철없는 딸일 뿐이지만 내가 처음부터 독신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 그저 살다 보니 때를 놓쳐 이렇게 된 것이다. 이 말에 공감할 사람이 분명 꽤 많을 것이라 믿지만 중요한 것은 내 막내(35)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저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남자친구 있어요?"
"?"
껄렁껄렁 걸어오는 것을 보며 이미 눈살을 찌푸리고 경계하였지만 막상 저 질문은 너무도 삼빡해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내가 관리를 한다고 했지만 30대로 보는 사람은 아직 없었고 그런 나에게 결혼의 여부가 아닌 남자친구의 존재를 묻는 것은 상당히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나는 저런 소리를 언제쯤 마지막으로 들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아직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남자친구 있냐고요."
싱글싱글 웃는 게 귀엽긴 하다만 아무래도 너무 어려서 거부감이 들었다. 연애를 안 한 지 7년이나 되었기에 문득 연애 세포가 더이상 몸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긴 하였지만 에이,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나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를 담아 알 수 없는 미소로 기다리는 그에게 대답해 주었다.
"큰아들이 대학생이란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무슨... 갑자기 웃기지도 않은 거짓말을 해버렸다. 물론 얼렁뚱땅한 말에도 내 나이에 이 정도 노땅 느낌이라면 믿지 않을 도리도 없겠지만 굳이 처음 본 남자에게 거짓말을 해서라도 거절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는 잠시간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황당한 말을 하였다.
"아들은 무슨... 같이 밥이나 먹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에 말문이 막혀서 바보처럼 어버버 하다가 내가 어떻게 보였기에 이렇게 쉽게 대하는지 기분이 너무 나빠졌다.
"내, 내 나이 50이에요. 20대인 것 같은데 젊은 애들끼리 놀아요. 여기 카페에도 많이 보이네. 저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그리고 어른한테 갑자기 반말하면 어떡해."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내가 아무리 어리게 보였어도 지천명은 힘들 것이다는 이상한 자부심이 느껴져서 괜스레 더 처량해졌다. 나의 말에도 그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얼굴에 환한 미소를 가득히 머금은채 슬금슬금 더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그러더니 지갑을 열어 민증 같은 것을 나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그럼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3살 차이에 깐깐하게 굴지 말고요. 밥이나 먹고 생각해 보게."
"악!"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질러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어떤 축복받은 유전자이길래 47에 저 얼굴일까? 카페 내에서 모두가 나의 소리에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지만 나는 홍당무처럼 빨개지는 얼굴을 가릴 생각도 못 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너 뭐야? 장난치지 말고 그냥 꺼지라고. 어디서 개수작 부리고 있어?"
생긴 것도 솔직히 잘생겼고 아무리 봐도-물론 민증도 확인했지만- 47살로는 믿기지 않아서 이 청년이 중년의 여인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는 생각에 짜증이 확 밀려와서 나도 모르게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그냥 밥 한번 먹기가 이렇게 힘든가? 나 너 맘에 든다고."
"이게 진짜!"
내가 휘두르는 숄더백을 그는 유연하게 허리를 젖히며 간단히 피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그는 실제로 47살이었고 나처럼 때를 놓친 것이 아니라 자기 말대로라면 눈이 너무 높은데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도 진정한 사랑을 했다고 느끼지 못해 연애를 포기하려다 카페에서 나를 보고 딱 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였다. 나도 안다. 내가 얼마나 지금 재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지. 어쨌든 그가 나이를 속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심을 잠시 지우고 그의 가족사진을 보니 79살이라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50대로 보이는 것을 보고 그저 고개가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3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 얼굴이 무슨 20살 이상 차이 나는 것 같아서 둘이 같이 손이라도 잡고 다니다 보면 내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알 게 뭐야. 우리는 비정상으로 보이는 정상적인 커플인걸?
그동안 별별 소리를 다 들었었다.
"어머, 아드님 옷 사주시게요?"
이것은 쇼핑하면서...
"저기 모자간에 사이가 엄청 좋네? 세상에 깍지 끼는 것 좀 봐."
이것은 길거리에서...
"오빠, 여자친구 있어요?"
나랑 커피 마시는데 귀요미가 내 앞에서 대놓고 남자친구에게 물어볼 때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헤어지자고도 했지만 무인도에서 살아도 좋으니 자신을 버리지만 말아달라고 애절하게 매달리는, 진짜 47살이 맞는지 다시 의심스러워지는 그를 보며 차마 헤어지지도 못하고 또 실제로 나이 차이도 3살밖에 안 나는데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 것도 야속해서 계속 미루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펑펑 울고 만 사건이 일어났다.
"여보! 나야~"
잠시 시간을 가지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 영화관에서 만나기로 한 남자친구는 안보이고 대신 처음 본 듯한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아요...?"
말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 자세히 보니 낯이 익었다.
"나라고!"
전체적으로 40대 후반의 인상을 가진 남자가 '나라고'하는데 나는 그제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음성이었다. 내 남자였다.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기는 자기랑 헤어지기 싫어서 내 나이에 맞게 성형했지."
"미쳤어?"
펑펑 눈물이 났다. 미친 거 아니냐고 너 도라이냐고 계속 따져 묻고 싶었지만 나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알 것 같아서 또 마음이 무너졌다. 사랑을 너무 받아도 이별만큼이나 슬플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나의 남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