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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Jul 05. 2022

태어나서 처음으로 - 11. 꿈? 아니 직업 말고

23살, 난생처음 홀로 떠난 교환학생

https://youtu.be/IRRa0hYQOxA

이 날의 영상. 썸네일이 좀 별로긴하다.




가끔 마음이 조급하고 답답할 때가 있다. 보통 내 마음대로 일들이 풀리지 않을 때 늘 그렇다.

정성을 들여 만든 모래성이 바다에 쓸려가듯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겁이 날 때, 내 손아귀에 쥘 수 있는 것들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 순간이 종종 있다.


그래도 미국에서는 그런 순간이 적었다. 여기에 와서 모든 것이 새로워,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서 그랬다. 잠시 미뤄 둔 미래에 대한 고민 대신, 새롭고 재미있는 모든 것이 나의 관심의 전부였으니까. 교환학생으로 있을 수 있는 순간이 반환점을 돈 지금은 조금 다르다. 다시 돌아가면 짊어져야 할 것들이 나를 겁이 나게 한다. 나의 행복만을 고민하자는 이기심과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어리숙하지 않고 싶은 절박함이 매일 고개를 든다.


나의 '삶'이라는 1인분의 시간 정도는 내가 능숙하게 다루고 싶은데, 그것이 참 어려운 일이라고 느끼고 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원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생각만 해도 무섭고, 상처를 받을까 두렵다. 쟁쟁한 사람들이 모두 원하는 직업에 내가 적임자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똑똑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카리스마가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우유부단하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쉽게 현혹되고 만다. 단단하고 직선적인 어른의 삶을 상상하지만, 나는 아직 작고 동그랗다. 이런 나의 특징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나를 깎아내어 그들처럼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나 다운 것이 맞는 걸까, 내가 변하는 것이 옳은 걸까?


전자가 맞다면, '나다운 것'이란 무엇인가. 그런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향으로 조금씩 덧붙여진 사람인데. 그럼 나는 곧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총합인가. 하지만 단순히 그들의 총합 이상의 것이 나에게 있을텐데. 있었으면 좋겠는데. 없으면 어떻게 하지? 난 그럼 특징이 없는 사람인가, 그래도 되는건가.


1월 1일, 불꽃놀이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안드레아스와 이야기를 했다. 매일 술에 취한 서로를 보던 것과는 좀 다르게,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대화였다. 각자의 꿈에 대한 이야기였으므로. 이미 꿈을 위해 하나의 큰 시험을 치룬 그는 어쩐지 그 동안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성적만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것에 지쳐있었고, 하지만 앞으로 해야하는 많은 일들에 조금 압도당했고,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깊게 생각한 것 같았다. 그 친구의 궁극적인 꿈은 '행복'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런 꿈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진짜 그럴 수도 있구나- 싶었다. 뒤 이어 그 친구는, 그래서 직업 자체가 아니라 인생 자체의 행복을 위한 노력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는 정말 놀랐다. 나를 되돌아보게 되어 충격을 받았달까. 나는 사실 직업이라는 목표에 매몰되어 궁극적인 목적은 잊고 있었던 것 같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짓말 하는 것을 들킨 것처럼 뜨끔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강렬한 동기를 잃은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 같았다.


직업을 이루고 난 후, 그 직업을 어떻게 활용할 지 모르니까.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어떤 목적이 없으니까.


그 직업을 이루는 것은 나에게, 마치 공주와 왕자가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는 결말 같았다. 빛날 것 같지만 너무 흐리고 모호해서 정말 반짝이는지 확신할 수 없는 것 같은 엔딩. 정말, 그 이후는 길이 없는 바다일 것 같은 엔딩. 그 엔딩 이후의 엔딩을 써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년도는 이렇게 정상적이고 이상적이고, 충격적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꿈은 과거에 더 강렬했고, 지금은 더 희미하다.


어릴 때는 이 일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았다면, 지금은 다른 것을 소거하고 나니 이 직업이 남았달까. 그때의 강렬한 동기를 내가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희미한 동기만으로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희미한 동기를 강렬하게 만들 수 있나? 어떤 것들이 그렇게 나에게 강한 동기를 줄 수 있을까. 룸메이트와 그런 대화를 나누던 중,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할 것들이 모여 자신의 꿈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랑이 자신의 동기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No body, No crime]에서 화자는 친구를 죽인 것으로 의심되는 - 하지만 증명은 할 수 없는 - 사람을 죽인다. 처음에 이 가사를 보고서는 바로, 사법체계에서 구멍난 부분을 개인이 처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에서 기인한 행위라고 생각했다. 증거가 없어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은, 지금은 화자에게 엄청난 원망의 대상이겠지만, 사실은 본인 역시 그 규칙에 의해 보호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라 단언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억울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면, 그 상처는 나에게 분명 가혹할 것이다. 이런 이성적인 생각을 바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일 것이다. 요즘 한국에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에 정신이 팔려서 그런가, 놀랍게도 그 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여기에 있다고 느꼈다.


사법 체계의 특성 상, 구멍이 난 부분들을 메우는 일. 개인들이 복수를 통한 자기파괴적 선택을 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도록, 끈기 있게 무언가를 찾아, 그것이 시스템의 과정에 맞추어 정당한 결과를 받게 하는 일. 그것은 억울한 희생을 증명하는 일일 수도 있고, 사법체계의 허점을 드러내는 행위 자체일 수도 있다. 아무튼 기존의 시스템이 놓쳐 사랑하는 것, 또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을 다시 사회로 붙여 놓는 일. 그래서 얼기설기 엮여진 우리 사회가 동작하게 하는 일.


그런 일을 해야 한다.


노래에서 화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원수를 죽이기 전, 난 내가 사랑하는 그 화자를 위해 뛰어 다니는 사람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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