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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Jul 17. 2022

태어나서 처음으로 - 14. 영어로... 면접이요?

23살, 난생처음 홀로 떠난 교환학생

https://youtu.be/e4rGoDiR0po

오늘의 영상





나는 자유롭고, 겁에 질려있었다. 몸 만큼 커다란 크기의 캐리어를 하나 끌고, 검정색의 백팩을 등에 꼭 매고서.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었다. 공항의 차갑도록 깨끗함이 무언의 거절의사를 보내는 것 같았다. 두려웠다.

번잡스러운 차의 경적 소리,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비행기가 머리 바로 위에서 나는 듯한 굉음.


나는 면접을 보기로 한 장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하나 잡아탔다. 실리콘 밸리라고 했다. 온 세상의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랬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기업들이 줄 지어 있었다. 그 중에서 노란 색으로 눈길을 끄는 로고를 가진 회사에 캐리어와 백팩까지 끌고 들어갔다. 들어가자 마자 있던 안내 직원에게 물어 짐을 맡겼다. 몸뚱아리 하나만 옮기는 일이 갑자기 아주 쉽게 느껴졌다. 지금 감정이 잠시만 유지될 것을 알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반투명한 자동문 뒤로 바삐 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왁자지껄한 말 소리들이 배경 음악에 섞여 들렸다. 공항에서 들렸던 소리들에 버금가는 소리였다. 무엇이 더 큰 지 알 수 없는 것 같았다.


조금 두렵고 조금 시끄러워 피하고 싶은 문 뒤에서 키가 큰 남자가 나왔다. 내 이름이 익숙치 않은지, 머뭇 거리며 내 이름을 불렀다.

"S...Hun?"

반도 안 맞는 그 호명에도 난 자연히 나 임을 인지하고 일어난다.

"Present."

그의 말에 답하며 긴장하지 않은 척, 입꼬리를 끌어 올린다.

"Did I called you right?"

그가 내 이름을 맞게 불렀냐며 확인한다.

"Actually, no. It's Seihyun. Almost perfect though."

맞기는 뭐가 맞겠냐고, 그 정도 부르고 맞다고 생각한 건 오만하지 않냐고 생각하지만 또 웃음기를 지어내며 말했다.

면접장에 들어갔다. 4명의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은 사람들이 밝게 인사했다. 떨리는 나도 밝은 척 말했다. 몇 가지의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면접은 끝났다며, 그 중 대표라고 본인을 소개했던 사람이 마지막으로 말을 이었다.

"You did so well in this meeitng. I am really gald to have this opportunity to meet you and hear about your thoughts. Eventhough you don't get contact from us to have you here, it is not because you are not good enough. It's because we are looking for circle, and you are triangle."

그 말을 들으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떨어진 것을 직감했다. 난 나를 거절할 사람한테 미리 위로 받고 있었다.

또 거짓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Thank you for saying that. I'll definitely remember your kindness."

'친절은 무슨, 동정이었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또 미소를 띄웠다.

그 남자는 안심이라는 듯 웃으며 일어났고, 악수를 청했다. 내가 나갈 문을 열어주며 다시 보자는, 말도 안되는 인사를 했다.

밝은 캘리포니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듯, 친절인지 동정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을 받으며 퇴장했다.

반투명한 문을 다시 나온 그 순간, 내 미소는 멈췄다.

나와서는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려 했었다. 멀리 가는 김에 여행도 하려고 많은 것을 챙겨 왔었다. 하지만 기운이 빠져 일단 호텔로 향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침대에 누웠다. 있었던 일을 복기했다. 내 기억 속에 나는 최선을 다했고, 여유로운 듯 미소를 띄고 있었고, 그런 나의 답을 듣는 면접관들도 그러했다. 그랬던 것 같았다. 아닌 것도 같았다.

생각을 하면 할 수록, 내 기억이 맞는 것인지 불확실해졌다.


진짜로는 어땠었을까?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거울 앞에서 아까 했던 것 처럼 미소를 지어봤다. 미소라고 하기 어정쩡한, 입꼬리만 살짝 올라간 표정이었다. 얼어있는 눈 주변 때문인지 입꼬리도 대칭이 아니라, 조금 비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표정이었다. 난 과연 거기서 진짜로 미소 짓고 있었을까?


그럼 그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 것 같은 모습도 실제론 달랐었을까? 진실은 어떤 것일까?

눈을 크게 뜨고, 온 정신을 다해서 집중한 그 현장에서의 나의 기억은 사실 진짜가 아니었다. 현장을 기반으로 한 나의 감상일 뿐이었을 뿐이다. 돌아보면, 내 모든 기억들은 '그런 것 같던 것들'의 연속이었다. 단 하나도, 단언할 수가 없었다. 억울했다. 내 모든 기억과 생각들을 하나도 확신할 수 없다니.

하지만 인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나의 미소는 진짜가 아니었고, 똑똑하고 친절한 사람인 척한 모든 말들은 진심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의 말도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우리 서로는 끝까지, 서로가 진실했는지는 모를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각자가 진실했는지 뿐이다.


진실은 그런 것이다.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목도하고자 해도, 쉽게 오염되는 것. 어딘가에 있다고 늘 말은 듣지만, 아무도 본 적 없는 보석 같은, 그런 것. 그저 마음 속에, 나의 일부는 적어도 그러했다고 믿고야 마는 종교 같은 것. 그리고 언젠가는 꼭 진실하게 나를 보여주고 말 것이라고 믿는 소원 같은 것.



이내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는데 공포에 잠식 당했던 것 같다.

눈 앞에 사회로 나가야 하는 시점이 닥쳐오고, 이제는 어리지도 늙지도 않은 이 애매한 나-노력도 늘 애매하게 하곤 했던 나-를 보며 난 이제까지 무엇을 해왔는지 기억해 내려 애썼다. 매일이 분투였고 전쟁이었는데, 왜 나는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것 같지. 매일 누군가를 이겨야 했는데, 왜 내가 아직도 제일 뒤에 있는 느낌이 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앞으로 난 얼마나 많은 전투에서 승전해야 중간에라도 머무를 수 있는 것일까? 왜 우리는 눈에 띄게 앞으로 갈 수도 없는 기회들을 위해 서로를 해치고 밟고 눌러야 하는 것일까? 나이도 실력도 노력도 애매한, 하필 시기도 어중간한 10월. 누군가는 한 해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지만 나에게는 그저 애매한 시기인 10월. 나는 7월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걸까. 뜨거운 태양 아래 올라오는 아지랑이처럼, 어지러이 나를 흩뿌릴 정도의 노력을 하면 좀 바뀔까. 찬란하게 빛나는 5월의 초록 같은 청춘이 나에게도 오는걸까, 세상이 부여한 믿음에 의문이 초록색으로 가득이었다.


모든 것에 확신이 서지 않아 겁에 질리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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