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난생처음 홀로 떠난 교환학생
나는 공부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어른들이 대학을 가면 공부를 안해도 된다길래 고등학교가 인생의 마지막 공부라고 생각하고 했다. 쉽게 말하자면, 공부를 더 안하려고 공부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빠르게 변했다. 체감 상, 사회적으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힘든 사회가 되었다. 녹록치 않은 현실에도 '꽤나 괜찮은 곳'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대학의 학점은 물론이고, 여러 대외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스펙, 입사 시험을 위한 1년 가량의 준비까지. 생각보다 세상은 공부 없이 살 수 없었다. 심지어 재미없는 공부.
그 고등학교부터 시작 된 모든 공부는 지겹게도 재미가 없었다. 웬만한 일들에는 쉽게 재미를 붙이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재미가 없었다. 이걸 왜 해야하나, 그런 생각만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공부를 하는 것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그런 생각을 머릿 속에서 지우는 과정이었다.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능동적이고 조금 더 실용적이고, 조금 더 의미있는 것을 탐구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똑같았다. 노트 대신 노트북에 기자회견을 하듯 받아적는 것 이외에는 말이다.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3년 간 대학이라는 곳을 다녀도, 배운 게 없다고 생각했다.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베버, 마르크스, 부르디외. 막스, 푸코 같은 학자들의 이름만 좀 외웠다. 별 것도 없으면서 있는 척 말하는 요령만 늘었다. 나같은 애가 사회로 나가도 될까, 의구심이 들었다. 나같은 애들이 사회로 나가서 일하면, 우리 나라가 유지가 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그렇게 소꿉놀이처럼 운영되어도 괜찮은걸까? 그래서 무서웠다. 하찮은 사람으로 사회에 나가기가. 온 세상의 어려움을 별 것도 아닌 상태로 맞서기가. 시간을 멈추고 싶었다. 유명한 영화에 나올 것처럼 시간을 멈출 수는 없어 울타리에 조금 더 남아있기를 택했다. 그래서 택한 교환학생이었다. 조금 멈춰서서 생각을 해보자. 이래도 되는지, 내가 그럴 수 있는지.
교환학생에 와서 다양한 수업을 들어보려고 했다. 그냥 재미있어 보이는 수업을 담았다. 그러다보니 실습 위주였다. 무대를 연출하는 수업, 영상 제작을 실습하며 배우는 수업 등. 사회학도 들었다. 이민자와 사회, 현대 사회와 분석, 젠더와 섹슈얼리티, 영화와 사회. 실습 수업이 아닌 경우도, 실용적이라고 느꼈다. 시의적인 주제를 가지고 수업에서 다같이 토의했다. 수업이 두시간이면 두시간 전부. 학생들은 본인들이 믿는 바를 솔직히 말했다. 가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모른다고 말했다. 그 곳에 그저 말을 받아적는 '기자회견'은 없었다. 모두는 자신 각자의 대변인이었다, 심지어 격식조차 없는. 그들은 누구에게 잘보이기 위해 말하지 않았다.
이민자에 대한 수업이 기억이 난다. 한 학생이 다양한 삶의 어려움으로 자신의 터전을 옮기는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에 당위적으로, 인륜적으로 공감은 하지만 실제적인 경제성에는 의문이 있다. 이민자 수용에 있어 경제성이 있다는 근거가 있는지, 또는 경제성이 설사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돕는 것이 맞는지 물었다. 이민자에 관한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몇몇은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나 역시 어떤 의견을 말해야할 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한 친구가, "좋은 주제를 말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런 주제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드네." 하고 말했다. 그 이후에 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그 친구에게서 나는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마저 얘기하고 있었다. 처음에 '저런 얘기를 왜 굳이 발표로 하지, 이 수업에도 참여 점수가 있나' 싶었다. 곧이어 생각이 바뀌었다. 고마움을 느껴서 고맙다고 말한 건데 난 왜 그걸 부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이지. 이 수업은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이 오가고자 만들어진 것이고, 학생들은 서로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아래,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의 사고에 있어 안전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고맙다는 말을 하나 한 것에 난 이론적으로 틀린 이야기를 한 것 보다 신기해하고 있었다.
내가 평생 받아온 교육에서는 질문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가장 적절한 것을 대답으로 주어야 했다. 보통 그것은 1~5까지의 숫자로 끝나거나, 특정한 정답이 있는 약술형이었다. 난 그래서 머릿속에 그런 답을 찾고 있었다. '답이 없을 수 있다' 또는 '정확한 답을 하지 않고 의견을 말하기만 해도 된다'는 교수의 말은, 정답을 틀리게 말하는 학생을 미리 위로하는 쿠션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답이 없는 질문은 없다'가 나의 의식 깊히 박혀있던 믿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정말 정답은 없을 수 있었다. 아니면 우리 모두가 정답일 수도 있었다. 정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진짜 이렇다고? 평생 나의 생각이 아니라 질문자의 의도를 더 궁금하게 만든 내 과거의 학습 경험이 원망스러웠다. 이렇게도 할 수 있는데, 나한테 왜 그랬어?
이런 경험이 있고 나서는, 수업의 토의에 조금 더 적극적인 학생이 되었다. 조금 틀려도 되고, 안끝난 듯한 말을 해도 된다. 그저 감상만 있어도 괜찮은 그런 곳, 수업에 나는 조금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물론 기말고사는 재미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