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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 May 26. 2022

대표님, 이사님. 존댓말 해 주세요.

내가 지향하는 스타트업의 업무환경에 대하여

많은 스타트업들이 수평적으로 업무 하는 문화에 대한 고민을 하고, 영어 이름, 영어 이름+님, 한글 이름+님을 사용하며 존댓말을 쓰는 문화를 지향한다. 심지어는 파격적으로 반말로 업무 하는 곳도 있다.


두 번의 스타트업을 거치며, 나의 경험 및 견해를 얘기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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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회사는 "영어 이름+님", "존댓말"을 사용하는 문화였다. 나이, 직급에 상관없이 대표님께도 동일하게 "누구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환경이었는데, 처음 경험했을 때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입사 후, 첫 오리엔테이션에서 대표님은 회사의 시작, 현재 지점, 우리의 미션과 방향성, 사내 문화, 지켜야 할 코드에 대해 명확하게 짚어주셨다.

여기서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아무리 친해도 회사에서는 "언니, 오빠, 누나, 형" 혹은 "누구야" 하지 않는 것.

업무환경에서 반말을 쓰는 순간, 친하다는 이유로 불필요하게 발생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에 대해 설명했다. 회사생활을 하며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특히, 성관련)이 술자리에서 생긴다고 말씀하시며, 9시 이후 회식에 대해서는 회사에서 지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이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내가 업무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한다는 게,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가진 대표님과 일한다는 게 굉장히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다녔다. 실제로, 회사에서 형 동생 하며 반말로 지내는 분들이 있다는 걸 인지하신 후, 대표님께서 코드를 지킬 것을 전사 메일로 공유한 적도 있었고, 친구분이 Co-founder로 함께 재직하고 계셨지만, 친분을 이유로 반말하며 업무 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대표님의 건강하게 업무 하는 문화에 대한 고민에 많은 공감을 했고, 아직도 많은 부분 동의한다.


덧붙여, 존댓말로 업무 한다고 해서 꼭 수평적 업무환경을 지향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 회사의 경우, 직급은 있지만 두드러지지 않고 오로지 성과에 의해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환경이었는데, 이후 회사의 빠른 성장과 경영에 "수평적 구조"가 걸림돌이 된다고 경험하셨는지, 이후 존댓말은 쓰지만 "수직적 구조"로 조직개편을 했다. 이 과정에서 상당 부분 기존 멤버들이 반감을 가지고 이탈하는 리스크가 발생했는데(나를 포함하여), 따지고 보면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조직문화에 적응하며 반감을 가지지 않고 업무 하는 게 경영자 입장에서 조직의 안정화에 시간은 좀 걸리지만 더 나은 방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굳이 그런 환경에서 일할 생각이 없지만.



02

현재 재직하고 있는 두 번째 스타트업에서는 "이름+님"으로 호칭하고, 존댓말을 쓰는 문화다. 사실 문화라기에는, 평사원들은 해당 코드를 잘 지키며 업무 하지만, C-Level분들은 친함 혹은 불편함의 정도에 따라 존댓말/반말의 유무가 다른 편이다. 그래서 나는 친하면서도 약간은 "불편한" 관계에서 업무를 지시받고, 수행하는 관계로 오래 지내고 있다.

때때로, 업무적인 선을 "친함"으로 뭉개려는 사람을 만날 때면, 나는 내가 느낀 불편함에 대해 말하는 쪽을 선택한다.(비록 바뀌지 않을지 언정)


요즘 회사의 규모가 부쩍 커지면서 인원이 50명 이상으로 늘어나고 경영진들을 자주 마주할 기회가 사라져서 크고 작게 전할 수 있던 얘기들이 많이 줄었다.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대표님과 이사님과 회식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생겼고, 내가 생각하는 조직문화에 대한 의견을 여쭤보셨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가진 생각들을 비록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실지라도 이야기했다.


우리 회사는 수평과 수직의 경계에 있는 지점에 있고, 경영진 분들이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든, 수평이나 수직에 대한 업무방식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업무를 지시"하고 "수행"하는 관계 거나 "협업을 요청"하고 "수행"하는 정도의 차이이지, 결국 직원들은 비즈니스를 잘 서포팅해야 하는 건 본질이기 때문에.

하지만, 존댓말로 업무 하는 문화는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언니, 동생으로 지내는 관계는 업무에 독이 된다. 직급으로 불리고 싶지도 않다. 파트장님으로 불리는 것과 유희님으로 불리는 것은 차이가 크다. 특히 아랫 직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려면, 더욱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친함을 핑계로 "누구야, 이것 좀 해"라고 얘기했을 때, 직급이 낮고 나이가 어린 직원은 우선순위가 먼저인 업무가 있더라도, 명확하게 그 의사를 전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성격에 따라 아닌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할 말 거의 다하며 사는 편인 나에게도 그 순간에는 해당 사항이었던 적이 너무 많다.) 존댓말로 업무 하는 건, 수직문화에 대한 부정이 아니고 안전한 환경에서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이런 얘기를 대표님이나 이사님께 할 수 있는 건, 늘 나를 존댓말로 대해주시기 때문이다. 반말로 업무 하는 방식이 필요한 조직(마초적인 문화 같은)이 있다고도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반말로 업무 하는 환경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며, 이런 문화에 대해 고민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라고.

그리고 오늘 아침, 3주 전 내가 OT를 진행했던 신입사원의 슬렉을 받았고, 직급이 아닌 "유희님"으로 불릴 수 있는 관계임에 다행이라 느꼈다.


사실, 요즘 디자이너로서의 직무 수행보다, 사내 행사를 기획하고 사내 문화를 만들고 혹은 채용에 필요한 스크립트를 작성하고, 신입사원 교육을 요청받기도 하면서, 내가 잘하고 있는지, 디자이너로써 성장이 아니라 이 조직에서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

아직도 고민이 많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는 우리 회사가 너무 좋다. 내가 만들어가는 서비스가 너무 재미있다. 맞지 않은 부분들을 비난하기보다, 가감 없이 이야기하는 건 애정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사진 분들께 내가 가진 생각을 말할 수 있는 환경도 감사하고, 서로서로의 감사함을 아는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어서, 더욱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마치며, 나는 다정한 관계의 힘을 믿는다.

좋은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서, 서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관계.

나를 내가 행복할 수 있는 환경에 두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도록 하기 위해, 계속 이런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그게 중간관리자의 역할이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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