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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 May 28. 2022

저는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아요.

긴 터널의 번 아웃을 지나, 삶의 태도를 다시 설정하며


내가 고장 나던 날의 기억.


2016년 겨울, 처음으로 번 아웃이 왔다.

첫 직장은 디자인 에이전시였고, 그곳에서 대기업 외주 프로젝트들을 정말 많이 진행했다.

1년 9개월가량 근무하면서 멜론의 GUI가이드라인 문서작업을 외주로 진행했었고, 시럽(Syrup)의 Andriod 포토샵 디자인 파일을 iOS 포토샵 디자인 파일로 컨버팅 하는 작업(2016년도에는 화면 하나당 디자인 파일 하나였던 시절...ㅎ), 아이콘 세트 디자인 외주, 캐시비 버스기사용 운행정보 시스템 GUI가이드라인, 그 외에도 다양한 기업들의 외주를 통해 UI 디자인을 제안하고, GUI가이드라인 문서작업을 했다.


당시에 왜 번 아웃이 왔는지 돌아보면,

많이 의지했던 입사동기 언니와 사수였던 주임님이 퇴사를 하시고 신입사원들이 회사에 들어왔고 3명의 신입사원을 교육하면서 실무를 함께 진행했었다. 주임님의 퇴사와 함께 대부분의 업무담당자가 나로 할당되었고, 일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정말. 너무. 많았다.

물리적으로 배포 기한이 정해져 있는 업무들이었기 때문에, 시간 내에 완수해야 한다는 압박이 정말로 심했다.


구. 멜론 GUI가이드라인(Android, iOS) - (라임색 로고의 이전 버전 멜론, 유지보수)

멜론 GUI가이드라인(Android, iOS) - (새롭게 브랜딩 되어 개편된 현재의 멜론)

멜론 PC Player GUI가이드라인 - (구버전 유지보수, 일부만 업데이트)

멜론 Mac Player GUI가이드라인 - (신규 출시, 초기 문서작업 100% 진행)

멜론 워치 GUI가이드라인 - (유지보수)

아지톡 GUI가이드라인(Andriod, iOS) - (유지보수)

공학용 계산기 UI 디자인 및 GUI가이드라인 - (신규, 100% 진행)

LG 폰 테마 디자인 - (디자이너 당 3개 정도 스타일 제안)


수시 요청이 있는 건들과 간헐적 유지보수 요청이 있는 건들을 포함해서 6년 전에 담당자로 지정되었던 프로젝트가 저 정도였고... 신입직원들이 정말로 잘 따라와 주었지만, 업무를 지시하고 이후 컨펌하고 수정하는 것보다 내가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게 빠른 날들이 너무 많았다... 잠에 들어도 꿈에서 아이콘을 자르고, 가이드를 치는 꿈을 꾸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항상 내일 해야 하는 일이 머릿속을 떠다녔고. 잦은 야근과 혼자 주말에 출근해서 최대한 팔로업을 하며 버텼지만,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몸이 고장나버렸다. 


하루는 업무를 시간 내에 끝내고 안도감과 함께 파일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업무를 시간 내에 끝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긴장상태에서 일해서 인지 갑자기 손떨림이 심해지고 왼쪽 머리와 왼팔에 쥐가 내리면서 일시적인 마비 증세가 찾아왔다. 그때 느꼈던 공포는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로도 가끔씩 팔이 저린 증세가 있었고, 회사에 업무 재분장 혹은 경력직 직원 채용에 대한 건의를 드렸지만 개선이 되지 않아, 도망치듯, 내가 나를 구제한다는 심정으로,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때는, 이런 얘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다.)



퇴사는 했지만, 정말로 괜찮은 거 맞아?


퇴사와 함께 모든 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다시 고민해 보고, 살아가고자 하는 인생의 방향을 재설계했다.

당시에는 지금까지 해 온 일이 디자인밖에 없지만 더 이상 디자인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고, 문화예술 쪽 분야에서 디자인을 활용할 수 있는 직무로 커리어 전환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조금 더 진심은 일이 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께 공부를 핑계로 면죄부를 만들어 두고 '놀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놀았다.


2016년 11월 말, 첫 회사를 퇴사하고 대학원 서류를 넣고 면접을 보며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고, 2017년도 3월 문화예술경영학과를 진학했다.

그리고 2018년도 봄, 코리아나 미술관에서 학교 수업 연계로 주에 2-3일 정도 출근하는 형태로 미술관에서 인턴을 했다. 인턴이었기 때문에 크게 어려운 업무도 없었는데, 다시 회사라는 공간에서 누군가의 기대 속에 시간 내에 업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주어지는 업무들은 늘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의 업무들이었음에도 하고 있는 일이 끝나갈 때쯤엔, 새로이 주어지는 일이 내가 소화하지 못하는 일은 아닐지 두려워져 긴장이 되었고, 심한 날에는 몸에 마비 증세가 또 나타났다. 


나는 피해왔을 뿐, 정말로 괜찮은 게 아니었다.



저는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던 중, 미술관에서 박혜수 작가님과 미팅을 하게 되었다. 작가님은 차기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본인의 우울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털어놓으셨고 나는 살면서 본인의 연한 부분을 내어 보이는 어른을 그날 처음 만났다.


아무것도 되지 않고

아무 쓸모도 없는 채로

숨만 쉬고 살면 안 되나요

들꽃처럼

벌레처럼

그냥 살아만 있으면 안 되나요


어떤 분인지 궁금해 찾아봤던 도록에서 이 글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여전히, 위로가 되는 박혜수 작가님의 글.

번 아웃과 약간의 사회 포비아 증세를 겪으면서, 당시에 이 글이 오래도록 마음에 박혀있었다.

다들 열정 중독인 세상에서, 가끔은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당위도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존재 자체만으로도 괜찮아."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아."

"열심히 살지 않는 삶의 태도도 있는 거야."


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달까.


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시 사회인이 되고, 두 번의 스타트업을 거치며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 덕에 통점은 이동했고, 많은 부분 지나 보냈다.

그리고, 다시금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 나와, 외부의 압박에도 아프지 않은 나를 발견하며 내가 건강해졌음을 느낀다.



글을 마치며,


저는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아요. 스스로 병들기보다 포기를 선택할 겁니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공간에 나를 두고, 설레는 하루를 살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거예요. 예쁜 것만 보며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고 계속해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들'만' 할 거예요.

그게 남들 눈에는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언제든 행복하지 않으면 떠날  .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으나, 당분간은 이 생각 속에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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