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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라쿤 May 12. 2024

02. 유라 - 미미

미미하게 시작되어, 미미하게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건네는 헌사




미미 - 유라 (가사)

이마에 미끄러진 먼동의 싹이

뜨거워 질만큼 그대가 떠오르네

예쁘게 뜨겁게 하네

헛된 품에서 꿈을 찾는 내가

어린 자국을 더듬어 보는 내가

슬프게 눈물 나게 하네

착한 마음 나쁜 마음

죄가 되지 않을 만큼만 덜어내

나쁜 마음 그 나쁜 마음

너의 못된 숨은 누구의 목을 물게 되니

착한 마음 그 나쁜 마음

저 나무는 고개 숙일 계절을 안 건지

나쁜 마음 그 나쁜 마음

그 예쁜 손 그 예쁜 눈

미미하게 사라져

미미는 왜 날 떠났어

사랑은 왜 없어져

친구야 날 좀 찾아줘

미미하게 사라져

미미는 왜 날 떠났어

우리는 다시 만나서

우리는 다시 우리는 다시

잠과 잠 좀 자야지의 사이

뜨거워 질만큼 그대가 떠오르네

예쁘게 뜨겁게 하네

날이 밝을 때까지 해야지

여린 풀을 뜯고 있던 내가

슬프게 눈물 나게 기억나게 하네

착한 마음 나쁜 마음

죄가 되지 않을 만큼만 덜어내

나쁜 마음 그 나쁜 마음

너의 못된 숨은

누구의 목을 물게 되니

착한 마음 그 나쁜 마음

저 나무는 고개 숙일 계절을 안 건지

나쁜 마음 그 나쁜 마음

그 예쁜 손 그 예쁜 눈

미미하게 사라져

미미는 왜 날 떠났어

사랑은 왜 없어져

친구야 날 좀 찾아줘

미미하게 사라져

미미는 왜 날 떠났어

우리는 다시 만나서

우리는 다시 우리는 다시





2024 제 21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노래 부문 수상


"싱어송라이터 유라(youra)와 재즈 트리오 만동의 베이시스트 송남현의 작업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져일까. 유라의 정규 1집 [꽤 많은 수의 촉수 돌기]는 잔상이 오래 지속된다는 점에서 유성우와 닮았다. 특히나 그 궤적의 시작점에 위치한 ‘구운듯한 얼굴이 너의 모티프’의 휘영청 흐르는 듯한 사운드는 듣는 이로 하여금 노래의 안팎을 오가며 공상하고 때때로 부유하도록 한다. 특히, 별다른 주저 없이 치고 나오는 유라의 목소리로 시작되는 인트로와 이윽고 이어지는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질주는 왠지 모를 짜릿함을 선사한다. 음색과 은유의 맛을 놓치지 않은 가사는 3분짜리 노래에서 직독 직해를 원하는 세계에 조용히 반기를 든다. 그런 점에서 ‘구운듯한 얼굴이 너의 모티프’는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와도 맥락을 함께한다. 어디까지나 음악의 중심을 뮤지션 내면에 두고 유라 스스로 확장된 정체성을 담아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촉수 돌기의 발현이자, 모티프이며, 우리 모두인 ‘나' 자신의 일부다. 고단한 세상을 살아가게 만드는 관계 중 하나는 ‘내’가 포함된 음악 자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세계와 ‘나’ 사이, 그 관계의 틈을 파고든 유라의 ‘구운듯한 얼굴이 너의 모티프’는 앞으로 지속될 세계의 시간 속에서 유유히 공명할 것이다." - 2024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 노래 '구운듯한 얼굴이 너의 모티프'



뛰어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유라씨. 만동 송남현과의 협업을 통해 재즈와 알앤비의 성공적인 융합을 선보였던 최근 앨범 [꽤 많은 수의 촉수 돌기]. 수록곡 '구운듯한 얼굴이 너의 모티프'는 2024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노래 부문 수상. 그리고 싸이키델릭에 초점을 맞춰 장르 영역을 더욱 확장시키고 있는 듯한, 올해 발매된 두 개의 싱글 'Worm In The Apple', '101 (Home Home)'까지.


'세탁소'나 '깜빡', 그리고 '미미'에서의 유라 이후로 업데이트가 안 되신 분들께서는 앞서 언급한 곡들을 한 번쯤은 들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취향과는 조금 거리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새로운 모습들에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되실지도 모르니까요.




미미 (MIMI)


"EP 앨범 <가우시안(GAUSSIAN)>에 수록된 ‘미미’는 ‘유라’라는 뮤지션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는 곡이다. ‘미미’는 절제했음에도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유라의 목소리는 잔잔하고 나지막하지만 길고 긴 여운을 남긴다. “미미하게 사라져, 미미는 왜 날 떠났어”라는 중의적 표현을 이토록 세련되고 섬세한 감정선으로 노래할 수 있는 건 유라만이 펼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이다." - 2022 한대음 최우수 알앤비&소울-노래 후보 '미미 (MIMI)'


새로운 장르를 도전한다는 게 아티스트 한 개인의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그 시절' 유라와 사랑에 빠졌던 분들께는 아무래도 아쉬운 마음이 앞서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면, 그 시절 유라는 정말 최고였잖아요. 캐치하고 대중적인 멜로디 라인, 일상적인 감정들을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들로 써 내려갔던 뛰어난 작사 능력까지. (저는 유라 님께서 쓰신 글들을 모아 에세이나 시집을 발간해 주신다면 수십 번은 읽어볼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니, 매번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유라와 옛 모습들을 그리워하는 유라의 팬들, 둘 중 어느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미미'라는 곡은 앞서 언급한 유라라는 가수의 장점이 가장 극대화된 곡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중적인 감정들을 가장 개인적인 방식으로 표현해낸,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주관적이고 유려한 표현들로도 수많은 대중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해낸 곡. 유라의 커리어 하이라는 주석을 조심스레 달아봅니다.




가사 해석


Q. 타이틀곡 ‘미미 (MIMI)’의 제목인 ‘미미 (MIMI)’ 는 무슨 뜻인가요?


유라: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름을 임의로 지정한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미미는 영원히 비밀로 할 거예요. 이 곡은 그리움이라는 키워드가 제일 정확한 감정이에요. 나머지는 여러분이 그리는 대상을 이입해 보고 제게 소개해 주시면 행복할 것 같아요.



이마에 미끄러진 먼동의 싹이

(2절 - 잠과 잠 좀 자야지의 사이)

뜨거워 질만큼 그대가 떠오르네

예쁘게 뜨겁게 하네

헛된 품에서 꿈을 찾는 내가

(2절 - 날이 밝을 때까지 해야지)

어린 자국을 더듬어 보는 내가

(2절 - 여린 풀을 뜯고 있던 내가)

슬프게 눈물 나게 하네


이야기를 여는 첫 문장부터 너무나 인상적입니다. '이마에 미끄러진 먼동의 싹이'라니. 먼동이 트며 창문을 넘어오는 햇살이 이마에 드리운 그림자들을 천천히 지워가는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는 더더욱 인상적인 가사인 '잠과 잠 좀 자야지의 사이'라는 문장과 함께 시작되고 있어요. '잠들기 직전'이라는 딱딱한 어구를 바꿔 표현하는 능력이 정말.


'나'는 잠을 자는 것도 잊은 채 밤이 새도록 하염없이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아무래도 나를 떠나간 '그대'였겠죠 (뜨거워 질만큼 그대가 떠오르네). 옛 연인과의 추억들은 너무나도 다양한 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어떤 것들은 주체할 수없이 아름다웠지만, 또 어떤 것들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부끄럽고 화가 나도록 만들기도 하였죠 (예쁘게 뜨겁게 하네). 


그가 떠나간 침대에서, 그렇게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어떠한 방향으로든 강렬하였던 어린 자국들을 더듬어보고 있던 나는, 그런 나의 모습에서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슬픔을 바라봅니다 (헛된 품에서 꿈을 찾는 내가 어린 자국을 더듬어 보는 내가 슬프게 눈물 나게 하네).




착한 마음 나쁜 마음

죄가 되지 않을 만큼만 덜어내

나쁜 마음 그 나쁜 마음

너의 못된 숨은 누구의 목을 물게 되니

착한 마음 그 나쁜 마음

저 나무는 고개 숙일 계절을 안 건지

나쁜 마음 그 나쁜 마음

그 예쁜 손 그 예쁜 눈


내면에서 벌어지는, 착한 마음과 나쁜 마음의 끊임없는 충돌. 옛 추억들로부터 적당히 덜어낸 착한 마음과 나쁜 마음 (죄가 되지 않을 만큼만 덜어내). 지금의 나에겐 둘 중 아무래도 나쁜 마음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듯합니다 (나쁜 마음 그 나쁜 마음). 그리고 나를 떠나간 너를 향해 아픈 문장들을 꺼내 보이고 있죠. 너가 내뱉었던 따뜻한 숨과 입맞춤들은 끝내 변질되어 결국에는 나의 목을 물어버리고 말았다고 (너의 못된 숨은 누구의 목을 물게 되니).


저 멀리 보이는 나무 한 그루. 우리의 사랑이 미미하게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걸 나무는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걸까요. 날씨가 추워지자마자 자신의 이파리를 모두 땅바닥으로 떠나보낸 뒤, 이제서야 추억들을 조금씩 정리해가고 있는 나를 고개 숙인 채 바라보고 서있을 뿐입니다 (저 나무는 고개 숙일 계절을 안 건지).


마음속엔 계속된 동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분명 나의 목을 물어버린 너는 나쁜 마음을 지니고 있었을 텐데, 너를 떠나보낸 나 역시 나쁜 마음을 먹고 있어야만 하는데. 그 나쁜 마음들 뒤로, 너무나도 예뻤던 너의 손과 눈이 아른거립니다 (그 예쁜 손 그 예쁜 눈). 너의 그 모든 예쁜 것들을 잊어버리지 못한다면, 아무래도 나는 너를 평생토록 미워할 수만은 없을 것 같아요.




미미하게 사라져

미미는 왜 날 떠났어

사랑은 왜 없어져

친구야 날 좀 찾아줘

미미하게 사라져

미미는 왜 날 떠났어

우리는 다시 만나서

우리는 다시 우리는 다시


* 미미(微微)하다: 보잘것없이 아주 작다.


미미는 무엇이며, 왜 나를 떠나가야만 했던 걸까요. 미미한 나, 미미한 그대, 그리고 미미한 사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를 해봅니다.


우선 '미미한 나'. 우리의 이별은 그대를 향한 나의 미미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나와 함께 거대한 세계를 지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였던 그대의 실망. 뮤비에 등장하는 유라의 덤덤한 모습과 상대 남자 배우의 절망적인 모습의 대비로부터 이를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미미한 그대'. 미미한 사랑만을 내보였던 주체는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떠나간 그대를 '미미'로 지칭하고 있는 '미미는 왜 날 떠났어'라는 가사로부터 추측해 볼 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우리가 나누었던 사랑이 그 자체로 '미미'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왜 없어져). 한때 내 모든 것들을 거리낌 없이 바쳤던 사랑도, 언젠가는 미미한 과거의 편린 하나에 지나지 않는 시간이 찾아오곤 하죠. 거대하고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던 사랑도 결국에는 보잘것없는 '만남' 하나 정도로 치부되는 순간들을 우리는 종종 마주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유라는 미미하게 사라져버린 그 모든 것들에 '그리움'이라는 따뜻한 감정을 입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만나서 우리는 다시 우리는 다시). 아주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미미 인형이 그 시절 나에게 세상의 전부였던 것처럼, 결국 미미하게 사라져버리는 것들도 한때는 내가 밟고 있는 세상의 전부였기에. 유라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아름다운 세계들을 기억할 것을 약속하며, 앞으로도 그곳을 찾아갈 것을 다짐하고 또 선언하며 곡을 마무리합니다.




마치며


미미하게 시작되어, 미미하게 사라지는 것. 특히 '사랑'으로 이야기되는 '예쁘고 뜨거운' 경험들은 매번 같은 레퍼토리를 선보이곤 합니다. 넓게 본다면 우리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라 할 수도 있겠죠.


미미한 일상 속에서 이따금씩 벌어졌던 뜨거운 기억들. 혹자는 과거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단언하지만, 저는 오히려 아름답게 쌓아 올린 과거가 있었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미련한 사람들 중 한 명입니다. 적어도 제게는 아름답고 찬란한 과거가, 현재에 당도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어주었거든요.


결국 미미하게 사라질지라도, 예쁘고 아름다운 추억들을 남기기 위해 오늘 하루를 더욱 충실히 살아보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서도 오래도록 마음속에 미미를 간직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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