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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Aug 01. 2022

나의 어릴 적 꿈은 화가였다(1)

시골의 작은 동네에서 그림 꽤나 그린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란 나는 막연히 커서 화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개미다리 한 개도 놓치지 않는 세밀한 표현력에 어린 동무들이 감탄을 했고, 이런 주위의 칭찬에 힘입어 나의 자신감도 하늘 높이 상승했다. 내 그림은 점점 작고 정교해졌으며 전문적인 미술 지도를 받아보지 못한 나는 그것이 위대한 화가로 가는 지름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의 작은 우주는 완벽하게 평화롭고 희망만이 가득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경이라는 친구가 전학을 오기 전까지는. 시골에서 보지 못한 공단 원피스에 하얀 스타킹과 에나멜 구두, 윤기 나는 곱슬머리를 하나로 묶은 경은 공무원인 아버지의 발령으로 인근 도시에서 내려왔다고 했다. 읍면리 단위의 시커먼 농촌 아이들에게 도시에서 온 세련되고 얼굴이 하얀 소녀는 마치 천상계의 선녀가 강림한 듯 신비롭게만 느껴졌다.


전교생 200명이 안 되는 시골학교에서 경은 순식간에 여신으로 등극했고, 거의 모든 아이들이 경의 환심을 사고 싶어 안달이 났다. 쉬는 시간마다 경을 둘러싼 아이들의 질문공세와 순박한 조공(?) 행렬이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관심과 인기가 부담스러웠는지 경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공주처럼 우아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예전에 다니던 학교는 커? 수업 끝나면 뭐해? 가족은 누구누구 있어?”  

“이거 우리 집에서 딴 자두인데 먹어봐~ 진짜 맛있다?”

“너 강아지 좋아해? 우리 복슬이가 새끼 다섯 마리 낳았는데..”


나 역시 경이 궁금하고 친해지고 싶었지만 그녀의 옆자리 경쟁은 너무나 치열했다. 원래 나와 어울리던 아이들의 관심까지 그녀에게 쏠리면서 나는 상대적인 소외감에 점차 우울해졌다.


그런 나의 마음에 불을 지른 건 평소 나에게 알 수 없는 경쟁심을 가지고 있던 옥이라는 아이였다. 미술 시간이 되자 옥은 나 들으라는 듯이 경이 누구와는 비교 안 되는 미술의 천재라며 추켜세웠다. 경의 스케치북까지 빌려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호들갑을 떠는데 그런 옥이 미우면서도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경의 그림을 보고야 말았다.    


그것은 나무와 한옥 집을 그린 한 폭의 수채화였다. 푸른 하늘과 산을 배경으로 짙푸른 나뭇잎이 우거진 고목 옆에 기왓장 하나하나가 날아갈 듯 선명하게 살아있는 고즈넉한 한옥집이 있었다. 문 창호와 툇마루, 디딤돌에 고무신 한 쌍까지 완벽히 조화롭고 또 아름다웠다. 시골의 작은 마을이 우주였던 나에게 경의 그림은 처음 접한 우주의 바깥세상이었다. 


알고 보니 경은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미술을 배웠고 도내 미술대회에서도 여러 번 입상한 미술 특기생이라고 했다. 이럴 수가. 얼굴도 하얗고 이쁜데 뛰어난 미술 실력까지 갖춘 그녀를 보니 너무 부럽고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길로 나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 시내의 미술학원에 보내달라며 울고 불며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나도 미술학원에만 다니면 경처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잘 그릴 수 있을지 모른다. 나의 열악한 환경이 위대한 화가로의 꿈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2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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