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젊작상] 김남숙 <파주> X김지연 <반려빚> 서평
*이 글에는 소설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사랑을 돈주고 살 수 있을까
<반려빚>을 읽고 몇 년 전 집 앞 작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던 기억이 났다. 나는 그때 미용사와 둘만 있는 공간이 너무 불편했다. 미용사는 30대 중후반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얼마 전에 미용 목적으로 코 성형 수술을 했고, 수술 후 자신의 모습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수술에 대해 보상을 받으려고 했던 노력에 대해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녀의 코는 내가 봤을 때 수술 전이나 후나 크게 이상하지 않고 평범했다. 기능적인 문제가 없다면 수술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불행한 이유가 자신의 외모나 돈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때는 코로나로 인해 모든 자영업자가 어려웠음에도 자신이 예쁘지 않아서 미용실에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자꾸 고립되는 이유에 관해서도 비슷하게 말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명품백이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누군가를 소개 받기도, 연애하기도 힘들다고 푸념했다. 나는 그녀의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나도 공감하지 못했지만 적당히 호응하며 머리를 잘랐다. 집에 와서 보니 머리와 얼굴형이 어울리지 않아 며칠을 고민하다가 다른 미용실을 찾아갔다.
<반려빚>을 읽을 때 그때 그 미용실에서 느꼈던 불편함과 비슷한 불편함을 느꼈다. 이야기 속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될 때 나는 불편함을 느끼는가보다.
그저 맘 편히 레드콤보 한 마리를 시켜 먹을 수 있는 정도면 됐다. 물론 치킨을 먹으며 볼 왓챠를 정기 구독할 돈도 있어야 했다. 소파도 좀 편한게 있으면 좋긴 하겠지. 그러려면 소파가 들어갈 만큼 넓은 집도 있어야 하고. 거기에 집에 자가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반려빚)
정현이 누군가를 믿고 안 믿고는 정현이 향후 만들어갈 관계에서 전혀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정현이야말고 그 누구보다도 신뢰 못 할 인간이었다. 정현은 자신의 신용 점수가 또래보다 한참이나 낮다는 조회 결과를 자주 들여다봤다. (반려빚)
정현은 자신이 좋아했던 것은 죄다 이렇게 똥값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반려빚)
매일 같이 돈에 대해 생각하는 정현은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 자신의 행복을 교촌치킨, 왓챠 정기구독, 소파, 자가를 구입할 수 있는 돈으로 치환하고, 서일을 향한 자신의 사랑도 돈으로 표현한다. 자신이 좋아하던 것들이 돈으로 환산되지 않자 똥값이 되었다고 표현한다. 그런 정현에게는 신뢰도는 신용도와 같다. 행복, 사랑, 추억, 신뢰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녀의 전 연인인 서일도 다를바 없다. 사랑을 돈으로 환산하여 받다가 자신이 필요한 것을 찾아서 가버린다. 서일이 필요한 것은 돈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정현이 사랑한 서일은 어떤 사람이었을지 상상해본다. 이십 대 내내 돈을 벌어서 네일샵을 열려고 했지만 전세 보증금을 사기 당하면서 연인에게 손을 벌리게 된다. 네일샵은 뜻대로 되지 않아 그녀는 빚을 미처 갚지 못한채로 정현을 떠난다. 몇 년 후 이혼 위자료인지 뭔지 알지 못할 돈으로 정현에게 빚을 갚는다. 처음에는 서일이 나쁘게만 느껴졌다. 만약 나였다면 사기당하고 나서 그냥 알바를 해서 돈을 먼저 마련할 텐데, 연인에게 금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을텐데. 정현은 왜 자신을 이용하는 서일에게 헤어나오지를 못하나, 생각하면서.
큰돈을 한 번에 만질 수 있는 범죄의 길로 갔을지도 모른다고, 남을 등쳐먹고 사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에서 맘만 먹으면 아주 손쉽게 그런 부류의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려빚)
자꾸만 이 불행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 생각하게 된다. 월급을 지급하지 않아 정현을 신용불량자로 만들뻔 한 사장인지, 차용증 조차 쓰지 않고 사람을 너무 믿어버린 정현인지, 빚을 오랫동안 갚지 않은 서일인지, 서일에게 전세 사기를 친 집주인인지. 생각하다가 이내 이 세상은 풀지 못하는 실타래처럼 모든 것이 엉켜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풀 생각을 하지 않는 잔뜩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2. 과거의 과오를 돈으로 털어버릴 수 있을까
사귀는 동안 정현은 서일에게 자주 부채감을 느꼈다. 왜 빚진 마음이 드는지, 왜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지 알 수 없었다. 늘 자신이 훨씬 더 부족한 것 같아서 서일의 기분이 어떤지 자주 살폈다. (반려빚)
서일은 당연히 고마워했지만 그런데 이게 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전부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반려빚)
정현은 서일과 헤어진 이유가 돈 문제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법 중요한 요소였던 것은 분명했다.
사랑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서일은 필요한 것을 찾아서 떠났는지도 모른다. (반려빚)
<반려빚>의 정현이 서일에게 느끼는 부채감이 궁금했다. 저런 사람에게 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다른 사정이 있는건지 알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사랑은 원래 숫자로 환산이 될 수 없고, 이성적인 이해의 영역이 아니니까. 그냥 조금 더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져야할 뿐이다.
자신이 좋아했던 모습 그대로 나타난 서일을 봤을 때 정현은 선주의 말대로 자신이야말로 미친년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서일과 함께 집에 돌아가고 싶어졌으니까. 그냥 호구 잡힌 채로, 목줄 매인 채로 살고 싶어졌으니까. (반려빚)
합리적인 셈법으로는 도무지 취합되지 않는 자료들이 정현의 마음에는 많이 남아있었다.
정현은 서일을 믿고 싶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한번 더. 하지만 문제는 정현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점이었다. 그간 자신이 선택했던 것들이 자신을 배반한 역사가 너무 길고 깊었다. 그동안 조금이라도 뭔가를 배웠다면 자신은 더는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됐다. 특히 서일은. (반려빚)
처음에는 정현과 서일이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비슷하게 셈할 줄 모르고, 순수하게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돈에 데이면서 조금씩 변해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세 사기를 당한 서일이 먼저 세상에 물들고, 그런 서일에게 당한 정현도 세상에 물들어서, 모든 것을 믿지 못하고 돈이 전부인 망상에 빠져버렸을 지도 모른다. 물을 빨아먹는 휴지처럼, 물질만능주의의 가치관이 점점 퍼지고 있는 상상을 했다. 우리는 지금, 행복도 사랑도 돈주고 살 수 있고, 사람의 가치를 학벌과 연봉, 명품백, 자차와 같은 것으로 매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가득찬 세상에 살고 있다.
나는 어쩌면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저렇게 시시하게 서 있는 현철이 누구보다 시시한 복수를 하러 온 것이라고. (파주)
그 믿음이 망상이라는 것을 알 것 같은 사람이 있다. <파주>의 현철은 군에서 부조리를 겪고 3년이 지난 후 가해자였던 정호를 찾아온다. 12개월 동안 100만 원씩 보상하도록 요구하여 집요하게 받아낸다. 그러나 그에게 남는 것은 허무함이다. 마치 포켓몬 고 만랩을 찍는 것처럼, 끝을 기다리다가 시시해져버린 사람이 된 것처럼.
넌 네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지. 모르잖아. 난 그 속에서 죽을 것 같았는데. 너는 일 년을 못 참아내겠어?
현철을 말을 뱉으며 가려운 듯 얼굴을 박박 긁었다. 속에 있는 말을 다 뱉어도 어딘가 가려운 것 같은 얼굴로, 여전히. (파주)
정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딘가 무서워하는 것도 같았다. 정호는 바가지 같은 더벅머리를 테이블에 떨구었다가 현철을 다시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 정도 했으면 됐잖아. 두 달 치 돈도 줬고, 사과도 했고.
정호가 눈이 벌게진 채로 현철을 쳐다보았다. 현철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아이스초코의 빨대를 한번 더 쭉 빨았다.
그럼 그만 하십시오. 그만하고 말면 되지 않습니까. (파주)
과오, 마음의 상처, 용서와 같은 것도 결국 셈할 수 없는 이성 밖의 영역이다. 진정한 사과가 없다면, 진정한 뉘우침이 없다면 다시금 반복되기만 할 뿐이다. 가해자인 정호는 1년의 형벌을 끝으로 다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열두 달, 백만 원의 돈으로 끝내기에는 진한 허무함이 남는다. <파주>의 주인공은 윤정은 그래서 현철처럼 귀를 긁는 습관이 생기고, 종종 현철을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게 웃는 정호를 마주하면 화가난다.
자신을 가엽게 보는 시선을 견디는 게 너무 수치스러워서 부탁하지 못하는지도 몰랐다. (반려빚)
그런 말을 하고 있는 현철을 떠올리면 나는 엄청난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나는 현철에게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다. 왜 죄는 정호가 짓고 죄책감은 내가 감당해야 하는지 나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현철은 언젠가 내가 불쌍하다고 했다. 그걸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더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정의 내릴 수가 없다. (파주)
정호는 내가 매일 학원에서 어떤 생각과 어떤 눈빛들을 마주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이들의 눈을 보고 있으면 나는 매번 나의 치부를 들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얼마나 하찮은 사람인지 다 꿰뚫고 있다는 듯한 눈빛과, 꼭꼭 숨겨둔 것이 무색하게 나의 지저분한 면모들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들. 언젠가 나 스스로 순순히 그 치부를 보여줄 수밖에 없는 날이 올 것 같은, 처형을 기다리는 염소의 마음을 정호가 알리 없었다. (파주)
<반려빚> 정현과 <파주>의 윤정이 사랑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는 각자의 연인과 비슷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현은 서일처럼 세상에 얕고 약은 사람이 되었고, 윤정은 정호처럼 말에 욕을 달고 살게 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정현과 윤정은 수치심을 아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정현은 수치심 때문에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윤정은 정호의 잘못을 자신이 대신 부끄러워하고, 자신의 치부를 아이들에게 들킬까봐 두려워한다.
3.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가끔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의 미래가 궁금하다. 그래서 종종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한다. 한 번은 소개팅 자리에서 그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 소개팅 남과는 결국 잘 되지 않았지만, 그의 대답이 한참이나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어른스러운 어른은 수치심을 아는 어른이지 않냐고 나에게 반문하면서.
맞다. 내가 일이나 생활에서 만나는 어떤 어른들은 수치심이 없었다. 어떤 어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는다며 얼굴이 벌게지도록 소리를 지르곤 했다. 어떤 어른은 젊은이의 시간을 헐값에 착취하면서 미안함을 몰랐다. 또 다른 어떤 어른은 권위를 내세우려다 권위를 잃은 우스운 모습을 보이고는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그 친구의 말이 맞았다. 부끄러움을 잃은 어른들이 만든 나라에서 나도 외롭고 괴롭게 적응하여 부끄러움을 잃어가는 어른이 되었다.
내가 나도 모르게 부끄러움을 잃어가는 사람이라 부끄러운 적이 있었다. 세월호 사건이나 이태원 참사에서 나보다 더 젊은 이들이 희생되었을 때, 귀찮아서 하지 않고 지나간 몇 번의 대선과 총선을 생각하면서 부끄러웠다. 후배들이 내가 겪은 것과 같은 부당함을 겪을 때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간 순간들이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른들을 나보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볼 때마다 수치심을 느꼈다.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거나 친구랑 이야기를 하다가도, 그러니까 뭔가를 알면 알수록 부끄러움은 커졌다. 그럴 때의 부끄러움은 괴로움을 동반했다.
정호는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무엇이든 다 아는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정호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 말을 하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역겨운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정호의 말에 나는 당장이라도 정호의 목을 졸라버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대신 말했다.
멍청한 건 너지. 그런 짓을 해놓고도 다 잊어버렸으니까. (파주)
사실 서일도 잘못한 건 없었다. 서일은 전세 사기의 피해자였다. 그 전세 보증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한 서일이 이십대 내내 벌어 마련한 돈이었다. 집주인은 법대로 합시다, 라는 말만 반복했고 법대로….. 하자니 서일이 보상받을 수 있는 돈은 원금의 반의 반도 안됐다. (반려빚)
<파주>의 가해자 정호, <반려빚>의 전세사기 집주인, 서일은 상대적으로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다. 정호는 자신의 가해 사실을 축소시키며 미안함을 모르고, 집주인은 겨우 이십 대 초반에 서일에게 ‘법대로 하자’며 압박한다. 서일 또한 뻔뻔하게 정현에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들은 대체로 괴로워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을 쉽게 잊어버리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수치심을 조금 더 느낄 수 있는 윤정, 정현의 삶이 괴로울 뿐이다.
수치심은 공감하는 마음이며, 타인의 괴로움을 이해하는 마음이다. 공감과 이해는 배울수록 커지는 것이라서 뭔가를 알면 알수록 부끄러워지고 괴로워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괴롭지 않기 위해 배우며 알기를 게을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 사람들은 이전보다 책을 덜 읽는다. 유튜브,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같이 우리를 괴롭히지 않고 욕망을 충족시킬 거리가 많다. 하지만 괴롭더라도 책을 읽고 공감과 이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파주>의 정호처럼 돈으로도 털어낼 수 없는 내 과오를 모르고 살고 싶지는 않다.
*김남주 <파주>, 김지연 <반려빚>은 「2024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