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점이나 명리학을 신뢰하는 편이 아니다. 대부분 미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다르다. 신점은 몰라도 종종 사주풀이 보는 걸 즐긴다. 한 번은 아내에게 떠밀리듯 인사동에 있는 철학관에 함께 가기도 했다.
사주를 믿진 않지만 가끔 신경 쓰이거나 생각날 때가 있다. 내가 50대가 되면 큰 명예와 재물이 찾아온다거나(앞으로 10년도 더 남은 일인데 궁금하긴하다), 아내가 30대 후반에 사업을 벌이면 큰돈을 벌 것이란 얘기는 이따금 우리 부부의 농담거리다. 또 하나의 '예언'은 아이가 태어나면 큰 복을 안고 태어난다는 것이었다. 나와 아내가 사주를 볼 때마다 '낳는 자녀 모두 복이 가득하다'는 게 공통적 풀이였다.
우리 XX이는 복덩이일까. 아직 생후 140여 일. 복을 타고 태어났다기엔 뭔가를 보여주기 매우 짧은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연코 아들이 '복을 가진 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결론에 이른 밑바탕은 당연히 실체적 경험이겠지만, 초보 아빠의 호들갑과 '팔불출'적 풀이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순 없으니 너른 이해를 부탁한다.
따지고 보면 임신 그 자체부터 축복이었다. 우리는 자연 임신을 기다리다가, 적지 않은 나이의 부부들이 으레 한 번씩 들리는 난임 클리닉을 찾았다. 여러 검사 결과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고 본격적인 난임 처방을 진행하려 했다. 그리고 그즈음 아이가 생겼다. 사실 아내는 임신 문제로 꽤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아이를 갖게 되면서 우리 부부는 무거운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
임신 기간 중에도 아이는 순탄했다. 아내는 입덧을 걱정했다. 안그래도 힘든 회사 생활에 입덧으로 몸에 더 무리가 갈까봐 우려했다. 주변에도 입덧으로 고생한 산모들이 많았다. 결론적으로 아내는 먹고 싶은 것들을 맘껏 먹으며 임신 기간을 잘 이겨냈다. 신장이 좋지 않아 '임신 중독증'에 대한 우려도 있었는데, 다행히 아이는 엄마 몸이 힘들지 않도록 건강하게 자라줬다.
아내가 출산 후 얼마 안돼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역시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산후 한 달 초음파 검진에서 발견된 갑상선 결절은 4cm나 됐다. 본래 갑상선암은 별다른 증상이 없다. 임신 기간 중 갑상선 기능 수치가 정상이었기에 이를 예상하지 못한 아내는 꽤 큰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빠르게 수술을 받았다. 갑상선 절반만 떼어내 앞으로 일상생활엔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한다. 아내 수술 집도의 교수님은 "산후 검진을 안 받았다면 모르고 지났을지 모른다. 아들이 효자"라고 말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우리 부부에게 더 없는 행복감(때로는 더 없는 고됨)을 주는 것도 큰 복일 것이다. 덕분에 나 역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기분이다. 이전엔 전방 60도 정도에만 고정돼 세상을 바라봤다면, 지금은 120도쯤 시야가 넓어진 듯하다. 아이의 성장은 곧 아빠의 성장이기도 하다.
한 가지 복이 더 있다. 아들은 내게 글 쓰는 재미를 새삼 느끼게 해 줬다. 신문기자로 7년, 평범한 회사원으로 2년 가까이 지내면서 글쓰기는 곧 나의 업(業)이었다. 하지만 정작 나만의 이야기, 내 글을 썼던 기억은 별로 없다. SNS에 이런저런 토막글을 썼다가도 '자기 검열'을 하며 지운 적이 여러 번이다.
아이는 '나의 글'을 다시 쓸 수 있는 계기와 용기를 줬다. 차곡차곡 아이와 함께 하는 소중한 일상을 기록하면서 내 삶에 또 다른 활기가 생겼다. 모두가 아이 덕분이다. 그래도 '복덩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전히 다른 사주풀이는 와닿지 않지만, '자식복이 있다'는 말은 참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