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도영 Sep 11. 2022

귀성길은 짧지만, 추석은 추석입니다

#28

아들이 태어난 후, 첫 명절을 맞았다. 양가 부모님 댁은 차로 30분~1시간 정도면 닿는 멀지 않은 곳. 매해 명절마다 들려오는 '서울~부산 10시간 소요' '고속도로 곳곳 막혀, 오늘 밤 귀성길 정체 정점' 같은 뉴스가 내겐 먼 나라 이야기라는 건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양가를 방문하는 건 그 자체로 쉽지 않은 도전이다. 일단 출발 전, 준비해야 하는 짐이 한가득이다. 분유병과 손수건, 기저귀, 작은 장난감 등을 가방 하나에 모고 아이를 눕힐 쿠션과 이불, 아기띠 등을 챙다. 여기에 부모님들 명절 선물까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생후 135일 아들을 오른쪽 팔에 얹는다. 럴 땐 손이 네 개 정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 댁에 도착해 처음 한두 시간 정도는 '해피'하다. 손자 재롱에 피어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웃음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갓난아이가 생기고부터 모든 가족 모임의 주인공이 통일됐다. 본가에서 10년 키워온 강아지 '꽃님이'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미안해, 오빠라도 안아줄게..). 아들은 최근 새로 완성한 장기 '뒤집기'를 연이어 선보이며 그간 밀어둔 효도를 한다. 영차영차.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갔는지 먹었던 분유도 몇 번 게운다.


만남의 설렘이 지나면 위기가 찾아온다. 수 차례 뒤집기로 녹초가 된 탓인지 아기는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이럴 땐 어른들이 돌아가며 '안아주기' 봉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덧 8kg에 육박하는 아들을 10분 이상 안아주기 어렵다. 평소 적었던 아들의 낮잠은 낯선 할머니 댁에 오니 더 줄어든다. 보채기 강도는 점점 세진다.


이젠 각종 장난감으로 시간을 벌어본다. 차. 그제야 집에 두고 온 장난감들 몇 개가 아쉬워진다. 짐이 많다고 뺀 유모차, 아기 체육관, 에듀테이블이 눈에 선하다. 아이와 함께 긴 외출할 땐, 이삿짐 싸는 수준으로 많은 물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렇게 깨닫는다.


추석에 모인 가족은 그렇게 모두가 아에 '참전'한다. 한 집에만 애기들 여럿이 있던 과거엔 도대체 어떤 명절을 보냈던 걸까. 아이 하나 보기도 이렇게 버거운데 말이다.


해가 떨어지고 날이 어둑해지면서 나와 아내의 불안감은 커진다. '얼른 집에 가서 아기 목욕시키고 재워야 할 텐데.' 저녁을 먹은 뒤 아쉬워하는 어른들을 뒤로하고 재빨리 짐을 싸서 차에 탄다. 문득 몇 년 전 설 때 '자고 가라'는 엄마의 말에 '어휴, 집에 가서 자야지. 그게 편해'라고 답하던 누나가 떠오른다. 그땐 차로 20분 거리에 살던 누나가 왜 그렇게 서둘러 집으로 향했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 그 마음을 안다. '닥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다행히 집에 돌아온 아들은 크게 보채지 않았다. 이 어린 녀석이 벌써 'Home, Sweet Home'을 안다. 목욕을 마치고 막수(마지막 수유)를 한 아들은 트림할 새도 없이 곯아떨어졌다. 녹초가 된 나와 아내도 그렇게 명절 미션을 마치고 서둘러 잠을 청했다. 연휴를 마치고 누군가 '그래도 양가가 가까웠으니 명절이 편했겠다'고 말하면 나는 정색하고 이렇게 답하려 한다. '귀성길은 짧아도, 추석은 추석인걸요. 세상에 편한 명절은 없습니다'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아기는 죄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