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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영 Sep 24. 2022

양평동을 떠납니다.

#32

'이 감자탕 집도 오늘이 마지막이네.'

나는 뚝배기에 가득 담긴 뼈다귀를 바라다. 아내 친구들의 집 방문 덕분에 자유시간을 얻어 혼자 점심을 해결하려 들른 참이었다. 신혼 시절부터 아내와 함께 꽤 많은 끼니를 곳에서 해결했다. 푸짐한 양과 맛, 착한 가격 그리고 젊은 사장님의 친절함까지 우리 부부 맘에 쏙 든 '최애' 동네 맛집. 언제 이곳을 다시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뚝배기만 말없이 쳐다봤다.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2019년 가을 우리의 신접살림을 차렸던 이 동네를 떠난다. 정확히 3년 만이다. 이별을 예상했지만 다소 빠른 결정이었다. 아내의 건강 회복을 위해, 처가댁 근처인 서울 외곽으로 서둘러 이사를 결정했다. 서울이 큰 도시임을 감안했을 때, 서남권에서 동북권으로 꽤 먼 이동을 하게 된 셈이다.


처음 아내는 이곳을 낯설어했다. 같은 서울이지만 나고 자란 곳과 멀어 이질적이라고 했다. 반면 경기도민에서 서울시민이 된 나는 처음부터 이 동네가 맘에 들었고 쉽게 정을 붙였다.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서울 지도를 수없이 보면서도, 이 집만큼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다. 아내를 잘 설득해 우린 양평동에 정착했다.


다행히 아내는 금방 적응했고, 이 동네를 좋아하게 됐다. 화려하거나 힙한 식당은 없지만 신혼부부가 갈만한 소소하고 정갈한 동네 맛집들이 꽤 모여 있었다. 한강과 안양천 산책로가 가까워서 걷기를 좋아하는 우리에겐 그만이었다. 남들은 차로 다니는 대형 마트 두 곳을 걸어서 다닐 수도 있었다. 바로 옆 목동처럼 고요하지도 당산동처럼 붐비지도 않았다. 단점이 없진 않지만 나와 아내가 첫 시작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동네였다.

아들아, 이 동네가 네가 태어난 곳이란다

이곳에서 아이도 생겼고 무탈히 출산해 5개월을 키웠다. 임신 중인 아내를 위해 마카롱 집과 붕어빵 포장마차, 곱창 트럭을 찾아 헤맸던 것도 이 동네다. 아들이 생후 100일을 넘기고선, 세 식구가 매일 같이 동네 주변과 안양천을 걸으며 소박한 바깥나들이를 했다. 나에겐 하루 중 가장 힐링되는 시간이었다.


보다 현실적인 이유로 이 동네의 매력을 느끼기도 있다. 우리가 사는 아파 2분 안으로 초/중/고교가 모두 몰려있다. '초품아'가 아니라 '초중고품아'인 셈이다. 아이가 없던 시절에도 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클 때까지 이곳에서 쭉 살고 싶단 생각을 했다. 학교가 가까우면 엄마아빠 걱정을 덜어줄 것 같았다.


이제 이런저런 추억을 뒤로하고 양평동을 떠난다. 솔로였던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고 또 하나의 생명을 얻을 때까지, 양평동은 그 작은 서사의 배경이었다. 이제 막 그 첫 장(章)을 맺으려 한다. 언제 또다시 이곳에 와볼 수 있을까.


양평동에서 태어났지만, 아들은 이 동네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내가 태어난 서울 행당동을 잘 알지 못한다. 가족이 차를 타고 함께 그곳을 지날 때, 부모님이 옛 추억을 떠올리시던 모습이 떠오를 뿐이다. 양평동에서의 기억은 사진으로 남겠지만 언젠가 아들이 크면 꼭 데려와서 보여주고 싶다. 엄마아빠가 여기서 시작했고, 네가 태어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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