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영화과를 가고 싶어 하는가
나는 영화과 입시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영화가 찍고 싶다. 왜 찍고 싶은가?
입시의 과정은 참 지지부진하다. 내가 본래 쓰고 싶었던 팡팡튀는 동화스런 이야기를 잠시 재쳐두고, 읽는 사람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을 서사적인 이야기를 구성하게 된다.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는 시각적 요소가 중요한 것들이다. 팀버튼 감독의 영화의 미장센과 같은, 기발하고 이상하고 비현실적인 것들. 정해져 있지 않은 모든 요소들이 제각각 튀는 이상한 세계의 영화가 만들고 싶다.
하지만 이런 글을 어떤 커리어와 증명도 없는 입시생이 쓴다면, 그 글은 외면받을 가능성이 높다. 높은 확률로 이런 종류의 글들은 논리와 서사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실험해보고 싶은 충동도 든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이 동화적인 요소로 가득 찬 한 편의 글을 낸다면 어떻게 될까?
하지만 입시는 나에게 일 년에 한 번 주어지는 기회기 때문에 너무 위험한 도박이자 실험이다.
영화의 형식들이 있다. 관객의 몰입을 위해 수 십년을 걸쳐 발전해 온 것들이다. 촬영 구도, 어떤 분위기의 색채와 같은 정형화된 미장센들.
이야기의 정해진 구조가 있다. 인물 설계, 이야기 설계에 필요한 것들. 설계에 도움을 주는 건 맞지만, 핵심적인 건 아닌 것들.
음, 서사가 전무한 영화를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정신 없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가 있다. 주요 인물들이 가족이 아니라,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인간적인 관계들이 사라지고 오로지 정신 없는 멀티버스를 오고가는 영상만 남는다면?
나는 그래도 이 영화를 재밌게 볼 것 같다. 레고랜드로 가버리고 태초의 돌 상태가 되버리는 영상의 향연을 어떻게 재미 없게 볼 수 있는가?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높은 확률로 감독은 이런 정신 없는 세계를 먼저 구상하고 서사를 부여했을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재밌는 걸 먼저 떠올리기에.
갑자기 모 감독의 영화 만드는 법 인터뷰가 떠오른다.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오르고, 그것에 맞춰 이야기를 구상한다. 맞다. 이게 방식일 수 있는 것 같다. 모든 창작은 직감으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의 직감은 모두에게 통할 것이다. 인간은 직감적으로 재밌는 것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