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7
'덕심'. 아주 먼 누군가를 향한 무조건적인 마음. 이것이 그에 닿지 못해도,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아도, 그저 이곳에서 생생히 살아숨쉬는 마음. 빛나는 그가 잠깐 이쪽을 보고 환하게 웃을 때면 온 마음이 설레면서도, 언제든 무대의 저쪽으로 가버릴 것을 예상하고 있는, 그렇기에 가는 등에 대고 환호해버릴 수 있는, 그런 아주 역설적이고 이상한 마음.
그럼에도 한 가지 아픈 점은, 그 뿜어져나오는 환함으로부터 받은 것들을 돌려주지 못했다는 점. 다짐한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어떤 직감이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속수무책으로 막아버렸다는 점. 몰랐다. 감사와 예쁜 것들을 전함에도 뻔뻔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것조차 일개 팬의 일방적인 아쉬움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여전히 아프다는 점.
"인생은 결국 스스로를 애도(哀悼)해가는 과정이다."
요즘 부쩍 자주 만나는, 한 참어른 분이 해 주신 말씀이다. 우리는 인생을 애도하며 살아간다. 나만의 역사를 간직하고 보내주며 자라간다. 그와중에 남는 건 주로 받지 못한 것이 아닌 주지 못한 것이다. 또 하나의 애도가 잔상으로 남아간다.
무(無)조건. 내가 사랑했던, 이 엄청난 가치를 애도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믿었던 가치의 붕괴에 서글퍼하며 원인을 찾기 위한 조건들을 덕지덕지 붙인다. 이유 없는 것들에 이유를 욱여넣는다. 그런데 한창 못난 나에게 가는 곳마다 무조건들이 자꾸만 따라온다. 살짝 밀어봐도 더욱 저돌적으로 따라붙는다. 무조건의 뒤에는 항상 신뢰, 호감, 사랑, 환영과 같은 좋은 것들이 붙는다. 왜?라고 연신 물으나 조건 없는 것에 답이 있을 리 없다. 결국 무조건이 전부임을 깨닫는다. 조건화된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이면에 다들 무조건을 만끽하거나 그리워하고 있음을, 그 무조건들이 모여 세상의 부분과 전체를 구성하고 있음을 본다.
인간 본연의 따스함이 다가온다. 순수하게 전해지는 진심들이 보인다. 육신의 온정을 오롯이 느낀다. 세상의 색채가 화사하게 바뀐다. 그때의 나에게 스쳤던 무조건들을 아낀다. 그들의 무조건이 항상 다치지 않고 예쁘도록 조심스레 응원의 덕심을 품는다.
한때 내가 가장 자신 있었던, 분명 다시 자신 있는 바로 그 방식으로, 앞으로의 순간들을 무조건적으로 두껍게 사랑한다. 애도(愛道)를 따라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