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쥐방울 Mar 13. 2024

내가 없었던 건 운동신경이 아닌 운동경험이었다.

인간 종합병원이 되어 한 달 내내 병원을 다녀보고, 새 학기 아이들의 짜증 액받이가 되어보니 자꾸만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을 건 체력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덩달아 말랑말랑해져서 눈물이 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단단한 내공을 위해 지치지 않는 신체를 장착하리라 더욱 굳게 마음먹었다.


마침 집 근처 새롭게 연 피트니스클럽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반짝반짝한 운동기구들보다도 프라이빗하면서 모든 어매니티가 갖춰져 있는 사우나에 반해 바로 등록해 버렸다. 마음속 주인과 손님이 뒤바뀐 느낌이지만 그래도 그 김에 운동기구 한 번쯤은 이용해 보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헬스장이라고는 러닝머신과 사이클, 천국의 계단만 알고 있던 사람치고는 의외로 주 5일이나 꾸준히 출석을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몇 주가 흐르고 이제 서서히 유산소 기구들이 지루해질 때 즈음 피트니스클럽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오픈기념으로 등록한 회원에게 PT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PT서비스는 총 4회로 회당 30분간 이루어졌다. 1회 차는 인바디와 각종 움직임테스트를 통해 현재 몸이 말해주는 수치를 트레이너로부터 설명받고 개인의 운동목적에 따라 설정하면 좋을 목표를 추천받기도 했다. 2회 차에는 Lat pull down, Leg extension, Abdominal, Shoulder press 기구들의 사용법을 배웠다.


마무리로 승모근이 뭉쳐있던 부위는 테라건이라는 근육 이완 마사지기로 직접 풀어주셔서 신문물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3회 차에는 또 새로운 기구인 Seated leg press, Hip abduction, Hip addution, leg curl 사용법을 배우며 마무리 4회 차는 폼롤러와 소도구 활용법을 습득했다.



크고 재미없게 생긴 운동기구들은 가까이 가볼 생각만 해도 뻘쭘하고 어색하기만 할 것 같았는데 생애 첫 PT를 경험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보다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기구에 자세를 잡고 앉아서 제시해 주신 무게로 횟수를 채우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입꼬리가 벌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나의 운동하는 모양새를 지켜보시던 트레이너분은 혹시 숨겨진 힘이 있으신 거 아니냐는 말을 덧붙이셨다. 이후에도 트레이너분의 흥미롭다는듯한 눈빛이 직접 보지 않아도 시야에서 충분히 느껴졌다. 더 이상 기구들이 멀게만 느껴지지 않았고, 헬스장에서 혼자 운동하는 분들이 왜 많은지도 납득되었다.


마지막 4회 차에서 폼롤러로 근육이완과 여러 자세를 통해 동작 난이도를 높이는 법을 배웠는데 트레이너분은 짐볼에 앉아서 말로 설명하셨고, 나는 그대로 들은 동작을 매트 위에서 수행했다. 정해진 시간이 반 이상 흘렀을 때는 트레이너로부터 진심이 담긴 칭찬을 받기도 했다.


"보통 동작을 제가 먼저 보여주고 그걸 따라 하시는데, 회원님은 말로만 설명하는데도 잘 해내시네요."


그 순간 2년 넘게 간헐적으로 해오고 있는 필라테스가 떠올랐다. 필라테스의 특징 중 하나인 큐잉 덕분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임이 분명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해온 것들이 모두 헛되지 않고, 내 몸 안에 축적되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아 내심 뿌듯했다.


이어 매트 위에서 코어의 힘이 필요한 각종 균형 잡기 동작도 제법 이루어지자 난이도를 점점 높이는 지시사항이 이어졌다. 동작을 해낼 때마다 트레이너의 목소리 톤이 점점 높아지더니 끝내 다른 남성분들도 땀을 많이 흘리며 어려워했던 부분이라며 또 칭찬해 주셨다.


어른이 되어 칭찬받을 일이 거의 없는 일상에서 짧은 PT를 경험하고 나니 나에게 부족했던 것은 운동신경이 아니라 운동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고등시절 체육시간에는 달리기도 항상 하위권이었고, 피구를 하면 피해 다니기만 바빴으며 땀나고 힘든 운동을 하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유년시절 운동과 관련된 사교육이나 몸을 움직이며 하루종일 뛰어노는 경험이 없다 보니 내 몸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었다. 운동을 하지 않고 10대와 20대를 보냈어도 어린 나이로 체력을 방어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 여러 가지 운동을 시도하며 지속해보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못하는 운동이 훨씬 많지만 꾸준히 하는 운동과 즐겁게 하는 운동이 있어서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누구나 지금 하는 운동이 힘들기만 하고 따분하다면 지체 없이 또 다른 분야로 눈을 돌려 몸을 움직이면 좋겠다. 세상에 많고 많은 운동 중에 나와 맞는 운동 하나쯤은 있을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오랜만에 명치가 아려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