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게 책육아라고는 말할 수 없다. 아기가 막 태어났을 때에는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을 반복하다가 돌 무렵부터 놀이시간이 조금씩 늘어났으나 아무것도 모른 채 어미가 되었으니 돌잡이 시리즈 같은 플랩북을 넘기면서 시간을 보냈다.
답답해 미칠 것 같았던 육아 덕분에 육아서적만 한 트럭 보다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되니 서서히 다른 분야의 책들로 눈길을 돌린 덕분에 읽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힘들 때 읽고, 위로받고 싶을 때 읽고, 궁금증을 참지 못해서 읽고, 나에게만 흥미로운 읽을거리들을 골라 읽었다.
읽는 순간들이 일상 속에 아무렇지 않게 스며들었을 때 인생에 무척 큰 장점으로 다가왔기에 물려줄 것이 크게 없는 어미로서 나는 아이들에게 읽는 삶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보고 싶은 책을 혼자 골라서 스스로 읽는 것을 목표로 잡으며 기간은 3년을 잡았다.
가정보육 하던 아이들은 남는 게 시간이었기에 한참을 밖에서 뛰어놀아도 집에서 책을 읽어줄 시간은 충분했다. 목소리가 갈라지도록 연신 커피를 물처럼 마셔대며 아이가 원할 때는 언제든지 읽어주고, 코로나 시국에는 어차피 못할 바깥생활이니 잠자는 시간도 훌쩍 넘겨가며 닥치는 대로 읽어주었다.
사실은 알고 있다. 아이들은 책이 좋아서 읽어달라는 것이 아니고, 그 순간만큼은 엄마와 딱 붙어서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본능적으로 나온 행동이었겠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재미있는 이야기에 곧 빠져들었기에 다행히 지속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지 않을 때는 내가 보고 싶은 책을 골라 나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이런 시간들을 보내는 동안 걸림돌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배우자였다. 책을 들이대면 난독증 핑계를 대기도 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털어내는 사람이라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에는 지속하기가 어렵기도 했다.
아이들이 어쩌다 아빠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경우에는 눈이 피로하다거나 목이 아프다며 거절하기 일쑤였다. 특히 아들은 책 보다 훨씬 재미있는 영상 혹은 게임을 하는 아빠 곁을 떠날 줄을 몰랐다. 결국 집안에서 책을 읽는 어른이 둘이면 더 낫겠지만 한 명이라도 지속하자는 마음가짐으로 나아갔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어미 혼자 스스로 읽는 재미를 알려주고 싶어서 목표로 삼았던 3년을 다 채우지 않았음에도 첫째 아이는 2년 만에 달성하고야 말았다. 서당개 스타일인 둘째 아이는 꾸준한 흘려듣기 덕분에 1년으로 단축되기도 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하는 느린 아이 막내 한 명뿐이다.
첫째 아이는 아빠가 바로 옆에서 게임을 하는 등 어떤 환경에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가진 읽는 어린이가 되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배우자에게 레이저 눈빛을 보낼 필요도 없고, 오히려 잡초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어 고맙다고 해야 할 시점이었다.
어느 주말,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나간 배우자의 목적지는 도서관이었다. 돈 쓸 일 없는 도서관은 가성비를 중요시 여기는 배우자의 단골스폿이다. 자신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니 큰 불만이 없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보는 동안 어쩌면 조용히 스마트폰을 바라볼 시간이 날지도 모른다.
그날따라 낮잠 자는 막내를 제외하고 첫째와 둘째 아이만 데리고 도서관에 간 배우자는 읽어달라는 어린이가 없으니 갑자기 여유가 생겼는지 서가를 둘러보다가 한 책에 눈길이 가서 조금 읽어보고는 빌려오기까지 했다. 어느 부분이 흥미로워서 더 읽어보고 싶었다며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결혼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백팩에는 항상 대출가능권수를 꽉 채운 아이들의 책만 가득했는데 이번에는 아빠의 책도 한 권 포함되어 있다며 아이가 먼저 호들갑을 떨며 말해주었다.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속으로는 흠칫 놀랐다. 이제는 완전히 버린 카드인 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그것도 벽돌책 사피엔스를 빌려오다니.
벽돌책의 진도는 우리 집 막내가 성장하는 속도만큼이나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어쩌면 완독을 하지 못하고 반납하게 될 확률도 높아 보인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은 나와 아이들에게 꽤나 큰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주말 저녁에 딸아이와 노는 대신 침대에서 벽돌책을 보는 아빠에게 아이는 한마디로 마음을 표현했다.
"그래도 아빠가 유튜브 보는 것보다는 낫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