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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Jul 15. 2024

바보라는 말에 화가 난다면

막내는 유독 한 살 차이 손위 형제인 둘째 아이의 말과 행동을 잘 모방한다. 장난기 많은 둘째 아이가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아 하다가도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엔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동생에게 날카롭게 굴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엔 아무런 의심 없이 따라 하는 동생을 보고 잔머리가 발동한 모양이었다.


"나는 바보입니다."

"나는 바보입니다."


동생이 따라 하게끔 대놓고 얼굴을 마주 보고 말하는 둘째 아이, 그걸 보고 아무렇지 않게 따라 하는 막내. 둘은 깔깔거리며 재밌어 죽는다. 그 모습을 근거리에서 보고 들은 나만 속이 부글거리고 있었다. 재미있어 보이니 첫째 아이까지 합세하여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다.


"나는 멍청이입니다."

"나는 멍청이입니다."


'저것들이 미쳤나 지금' 히죽대며 즐거운 현장에 결국 찬물을 끼얹고야 말았다. 저것들이라는 표현을 쓴 첫째와 둘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막내의 엄마이기도 한 스스로가 혼란스럽기만 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다 표출하지 않고, 듣고 싶은 말을 하고 알려주라며 마무리했던 그날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생생하다.


며칠 동안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하지 못했던 그날을 떠올리며 앞으로 마주할 날들을 어찌 대비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전교 1등에게도 바보나 멍청이라고 말장난을 할 수 있는 것이 아이들인데 마음속에서 그것에 조금이라도 반응했다면 어쩌면 0.1%라도 아이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초등 고학년에 급격히 늘어난 체중이 걱정되어 엄마가 사용하신 충격요법이 있었다. 돼지라는 표현이 아직도 잊히지 않을 만큼 당시엔 엄마가 싫어질 정도로 충격이 컸다. 어쩌면 나는 엄마가 언급하기도 전에 이미 어느 정도 스스로가 그렇게 느끼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랬기에 그 단어를 흡수하고 아파했을 것이다.


요컨대 30대가 된 지금 누군가 나에게 뚱뚱하다거나 너무 말랐다거나 몸에 대한 어떤 극단적인 평가를 하더라도 와닿지 않고 튕겨져 나갈 것이다. 스스로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었다.


타인의 말에 반응하지 않거나 더 나아가 침착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인지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아이가 정체성을 갖기 시작하는 시기에는 부모의 가치관과 믿음에서 나오는 반응이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세 달 전부터 시작된 발달검사에서 이미 지연이 되고 있음은 기정사실화되었다. 그리고 남아있는 검사 덕택에 최종 진단명은 아직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각종 치료와 자극이 되는 경험을 제공해 주며 애쓰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허망하게 망쳐버릴 수 없다는 강력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변해야 할 것은 내 마음가짐뿐이었다. 제일 어려우면서도 가장 빠른 길이다. 아이의 속도에 맞춰 함께 노력하면 느리지만 결국은 좋아질 것이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심장처럼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함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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