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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Aug 12. 2024

스마트폰 없이 하루 보내면 평화로울 줄 알았는데...

퇴근 없는 일상으로 쉬는 법을 잊은 어미는 큰 결심을 해버렸다. 일주일에 단 하루, 엄마도 쉼을 가지는 요즘말로 자유부인을 누리겠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설명하기에 자유부인이라는 단어가 적합해 보이지는 않으니 유대교에서 쓰이는 안식일이라는 명칭을 빌려오기로 했다.


나만의 안식일 원칙도 정해놓았다. 디지털 기기 피하기, 사랑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기, 건강을 챙기기, 조용한 곳을 찾아내기, 남을 위해 베풀기 등 열 가지나 목록을 적어두었다. 매주 금, 토, 일 중 하루를 정해 안식일을 취하려고 하나 언제나 예외는 생기는 법.


홀로 밖에 나가지 못할 시 플랜 B는 디지털 안식일로 집에서 대체할 수 있도록 설정해 두었다. 플랜 B는 아이들이 아프거나 배우자의 출근으로 아이들의 돌봄이 필요한 경우, 가족여행 또는 휴가일정으로 모두가 함께 해야 하는 순간에 시행하고 하루동안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정해두었다.


디지털 기기는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 모니터 모두 포함이고 나를 제외한 가족 구성원에게는 강제성이 없다. 마침내 시행하기로 정해둔 날짜는 다가왔고, 방학이면서 아픈 가족이 있었으므로 디지털 안식일을 진행한다는 사항을 아이들에게도 미리 고지해 두었다.




평소 아침에 기상하자마자 가장 먼저 마주한 스마트폰을 꺼두었으니 시간을 보러 거실에 걸려있는 벽시계를 바라봐야 했다. 하던 대로 유튜브의 구독 채널에 새로 업로드된 영상을 볼일도 없고, 일종의 의식처럼 진행하던 친한 앱에 접속해서 출석체크를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멍하니 있다가 집에 있으면 항상 눈에 띄는 집안일을 시작했다. 세탁기를 돌리고, 주방을 정리하면서 아침밥을 준비하고 다시 건조기를 돌리면 한 시간은 훌쩍 넘게 지나가있다. 식사시간은 하루에 세 번이니 적어도 같은 작업을 세 번은 반복하는 셈이어서 낮시간은 제법 무료하지 않았다.


오후 한때 배우자와 아이들이 근처 쇼핑몰에 간다는 소식에 별생각 없이 따라나서기도 했다. 스마트폰은 꺼두었으니 소지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되어 아예 집에 두고 나와버렸다. 밖을 볼 수 없는 쇼핑몰에서 스마트폰이 없으니 가장 궁금한 것은 현재 시간이었다. 시계의 기능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었던 셈이다.


스마트폰이 없으니 가장 난감한 순간이 생기기도 했다. 배우자가 나에게 평소 자주 사용하지 않은 계좌번호를 물어보는 순간 디지털 안식일을 괜히 하기로 했나 싶어 위기감이 있었지만 다행히 예전 메신저에 계좌번호 남겨둔 것을 찾게 되어 잘 넘길 수 있었다.


아이들은 평소 좋아하던 책의 새로운 시리즈가 나왔는지 엄마에게 물어보러 왔다가도 엄마가 스마트폰을 쓸 수 없으니 온라인서점에 접속해서 검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내일 알아봐 달라며 말하기도 했다. 나 또한 수시로 들여다보던 스마트폰이 곁에 없으니 아이들의 놀이 제안에 귀찮아하지 않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육아하는 낮시간이 지나고 무사히 저녁이 찾아왔다. 이제 조금의 휴식을 취하다 잠들면 되는 시간이다. 조금의 휴식이란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구독하던 짧은 영상을 즐겨보며 히죽거리는 것이다. 평소 하던 행동을 하지 않으니 여간 어색하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이 꽤 길게 느껴졌다.


집안일도 마감하고 디지털 기기도 사용하지 않으며 진짜 휴식을 취할 줄 알았던 나의 상상과는 달리 머릿속에서는 잡념이 점점 가득해졌다. 해야 할 일들, 평소 걱정하던 것, 글쓰기 주제 등 장르 구분 없이 사정없이 튀어 오르는 잡념들로 당황스러웠다.


스마트폰을 포함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보다 어쩌면 잠시라도 명상을 하는 것이 더 어려운 편에 속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잡념을 해결하기 어려운 현대인이지만 안식일은 지속해야겠기에 다음 주에는 운동을 추가해서 기절할 정도로 놀라운 건강한 하루를 보내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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