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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Sep 09. 2024

발달검사의 최종보스 아이큐

올 4월에 발달지연으로 내원했던 대학병원의 첫 진료에서 받은 처방 중 마지막 검사를 앞둔 날이었다. 근 몇 달을 이것을 위해 달려온 셈이나 마치 이것이 아이 인생에 전부가 아닌 듯 마음가짐을 했던 기간이었다. 평일 오전에 유치원을 결석하고 대학병원으로 향하는 막내의 일정을 첫째와 둘째 아이에게도 공유했다.


그러자 동생이 자신은 하지 않았던 인지검사를 왜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든 모양이었다. 몇 초간 빠르게 고민하는 뇌 회로를 굴려보았자 뾰족한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엔 담당 교수님께서 가볍게 했던 말씀을 잊지 않고 인용했다. "요즘엔 취학 전에 한 번씩 해보는 게 트렌드라네."


몇 달 만에 찾은 대학병원은 여전히 낯설다. 동네 병원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한 로비는 긴장감을 주면서 동시에 그래도 살아있으니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준다. 진료과 예약시간 전에 무인 키오스크에서 당일 검사비용 55,100원을 수납했다.


처방받았던 소근육, 언어, 인지 중 유일하게 급여처리가 되는 인지(IQ) 검사여서 더 대기가 길다는 말을 실감했다. 진료과 검사실은 정확히 예약시간 3분 전에 호명을 들은 후 입장할 수 있었다. 검사자와 마주 보고 앉은 아이의 대각선 방향으로 조용히 한 시간 넘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묵언수행에 들어갔다.


검사를 지켜보던 과정에서 혼자만의 놀라움이 있었다. 몇 달 전 특수교육대상자 선정을 위해 진행했던 검사와 매우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점이라면 병원에서 진행한 것이 겨우 몇 가지 정도 더 추가된 듯했는데 아이에게 이전의 경험은 전혀 예습효과로 보이지 않았다.


언어검사 이후 주 2회를 빠짐없이 진행했던 언어치료 덕분인지 매일 보는 어미의 눈에는 아이가 그동안 학습한 게 헛되지 않았고 또 성장한 것이 느껴졌으나 처음 보는 낯선 이는 서류상의 연령수치로 보이는 백분위를 또래와 비교할 테니 어미는 이미 어느 정도 점수가 나올지 예상이 되는 반 무당이 되어가고 있었다.


"비를 맞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이라는 질문에서 아이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해 버렸다. 분명 우산을 알고 있으며 펴고 접는 것까지 다 할 줄 아는 아이가 '비가 올 때 쓰는 것'은 알지만 '비를 맞지 않기 위해'라는 미묘한 다른 표현을 인식하지 못한 듯했다.


"알을 낳는 것은?"이라는 질문에서 아이의 답변은 병아리였다. 어디서 본 적도 있고, 들은 적도 많은 아이는 닭을 말하고 싶었을 테지만 본인이 100% 숙지하고 있지 않는 것은 종종 이러한 실수가 생기기도 했다. 이렇게 언어로 주고받는 문항들은 그저 뒤에서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입술을 앙 다물수밖에 없었다.


퍼즐이나 그리기 활동은 잘 해내고,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이 찾아내야 하는 활동에서는 느릿하면서도 여유 있는 행동을 보여주어 이미 각 영역별로 편차가 심할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검사를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다 되어갈 즈음 아이는 집중력을 겨우 바닥까지 긁어모아 잘 마칠 수 있었다.


고생한 아이의 손을 잡고 잘 마쳐주어 고맙다는 말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자 그제야 공복이었던 것이 떠올라 허겁지겁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집에 돌아오자 컨디션을 회복했고, 어미는 잘 붙들고 있던 체력이 집에 돌아오자 바닥을 드러냈다.


돌을 씹어먹어도 소화불량을 모르던 사람인데 식사 후 속이 불편하다고 느껴지자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몇 주째 참고 있었던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었다. 다행히도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소화불량을 단번에 해결해 주고 흔들리던 정신력도 살아나게 해 주었다.


언젠가 했던 문장완성검사에서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나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을 때'의 다음빈칸에 적은 답변은 '빠르게 받아들이고 방법을 찾아봐야지'였다. 일주일이 지나 나올 결과에 대해서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땐 어쩌면 결과에 상관없이 이렇게 외칠지도 모르겠다. '아이스크림에 케이크까지 더블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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