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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통화 스크리닝 첫 상대자가 내 아이일 줄이야

by 쥐방울

애플의 최신 운영체제 iOS26이 2025년 9월 한국에도 정식 배포되어 소프트웨어가 업데이트되었다. 리퀴드 글라스를 비롯해 다양한 측면에서 큰 변화가 도입되었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통화 스크리닝'이라는 기능이었다.


아이폰 통화 스크리닝이란 연락처로 등록되어 있지 않거나 이전 통화 기록이 없는 번호로 전화가 왔을 때 iOS가 백그라운드에서 전화를 받아 발신자에게 용건을 묻고 내용을 사용자에게 텍스트로 전달해 통화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다.


이것이야말로 사용자에게 획기적인 기능이라고 생각했다. 보이스피싱, 보험 권유, 무작위 설문조사 및 각종 스팸 전화의 차단효과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당연히 그럴 줄로만 생각하고 설정에서 통화 스크리닝 기능의 활성화 버튼을 눌렀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일요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늦은 산책을 하러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둘은 배드민턴을 하기도 하고, 둘은 놀이터에서 놀며 각자 시간을 보낸 뒤 한 시간도 채 안되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둘째와 셋째 아이가 바퀴 달린 것을 타고 먼저 출발하고, 첫째 아이와 우리 부부는 걸어서 후발대로 뒤따랐다.


막내를 바짝 쫓아가지 못했지만 집까지 수십 아니 수백 번도 더 함께한 길이었고, 오빠를 따라 집에 잘 가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렇게 10분 뒤 우리 부부도 걸어서 어느새 집 앞까지 거의 다다랐다. 1층 공동현관에 들어서기 전 무심코 휴대폰을 들어 확인하는데 속으로 비명을 지를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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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발신자로부터 온 부재중 통화는 평소와 다른 형태였다. 20초간 상대방이 남긴 통화 용건의 음성과 함께 텍스트로 번역된 메시지가 바로 아래에 띄워져 있었다. 승강기를 타려고 1층 공동현관으로 들어서려는 배우자에게 외쳤다.


여보! 막내가 엄마 잃어버렸대!


이 말만 남기고 앞서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춘 채, 모르는 번호로 온 발신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은 아이가 울고 있어서 다가가니 엄마를 잃어버렸다고 하여 아이를 통해 전화를 준 것이었다. 다행히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있어서 근처에 계신 경비원분이 아이와 직접 와주셨고 중간에서 금세 만날 수 있었다.


학교 가는 길과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초등 1학년인 막내는 갑자기 엄마를 잃어버렸다며 울었다고 했다. 어두운 밤이어서 그랬는지 함께 가던 오빠가 먼저 쌩하니 가버려서 그랬는지 정확한 원인은 100% 알 수 없지만 표정을 보니 아이의 감정은 확실히 엄마를 잃어버린 것처럼 당혹스럽고 슬피 울고 있었다.


처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응되지는 않는다. 아이는 잊을만하면 다시 경각심을 채워주려는지 선물을 물어다 주는 까치처럼 이런 이벤트를 안겨준다. 그럼에도 작년과 달라진 점이 꽤 많아져서 어미는 놀라움과 감사함을 동시에 흡수하느라 머릿속이 바빴다.


모르는 이가 이름을 물어서 답하고, 엄마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자신이 아파트 어느 동 몇 층에 사는지까지 정확히 말한 것이다. 이제는 길고 긴 아파트 이름까지 알고 있다. 집 비밀번호만 제외하면 어미의 개인정보는 탈탈 털렸지만 최근에 이보다 더 감격스러운 일은 없었다.


가슴을 쓸어내린 주말밤이 지났다. 처음 사용한 아이폰 통화 스크리닝 기능에 아이의 목소리가 담긴 때만 떠오르면 바로 비활성화로 전환하고 싶었다. 이러려고 이 기능을 활성화해 놓은 것은 아니었기에. 내 아이가 건 전화를 어미가 못 받는 우를 범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결국 바꾸지 않았다. 아이가 분명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아이와 그동안 수시로 했던 스스로에 대한 인적사항 복기에 효과가 있음을 느꼈고 꾸준히 무엇이든 지속해야겠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우리는 함께 나아지고, 아이폰 통화 스크리닝 기능은 기존의 예상처럼 순기능으로 곁을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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