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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Dec 14. 2022

꼭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할까?

오래 건강하게 일하기 위한 마인드셋


극약처방으로 퇴사를 하고 며칠 뒤. 곰곰이 집에 앉아 지난날들을 생각해 보았다.


정신승리를 외치며 아등바등 대던 내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남들도  그렇게 산다.' 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버텼던 지난 3년. 나는 브레이크 없이 끝없이 달리기만 한 자동차에 불과했다. 자동차 속 엔진은 달아오르는 온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그렇게 나라는 자동차는 추진력을 잃고 망가졌다. 제동 없이 그저 냅다 달리기만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몸도 정신도 고장 난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퇴사' 밖에 없었다. 엔진을 다시 구동하기 위해선 A/S 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음 회사에선 어떤 자세로 업무에 임할지 차근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나를 위해 아래 4가지 원칙을 마음속에 심기로 했다.



첫째, 나를 위해서 일하자.

둘째, 번아웃이 올 상황을 미리 차단하자.

셋째, 회사는 내 삶보다 소중하지 않다.

넷째, 정신승리 하지말고 인생승리 준비하자.






마인드셋을 완료한 나는 태국 방콕으로 곧장 여행을 떠났다. 푹푹 찌다 못해 살갗이 녹아내리는 5월의 방콕은 체감온도가 무려 48도에 달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극한의 더위였다. 불지옥에서 휴식이라니. 평소 같았으면 짜증이 솟구칠 날씨였지만 퇴사  여행을  나에게 폭염은 '뜨거운 자유'처럼 느껴졌다.  방콕을 다녀온 며칠 . 달콤하게 늦잠을 자고 있는 머리맡 위로 다급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음... 여보세요?"

"이영씨, 자고 있었어?"

"네, ... 무슨 일이세요?"

"우리 회사에 T.O가 났는데 면접 보러 지금 올 수 있어?"

"네에...? 지금요?"

"응, 지금. 이력서 먼저 메일로 보내주고 바로 준비되는 대로 와."



사회 초년생 시절 지식도 경험도 없던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첫 회사 과장님의 전화였다. 팀 내 직원이 갑자기 퇴사하게 되면서 경력직이 필요한 상황. 때마침 내가 쉬는 것을 아시고 나에게 연락을 주신 것이었다. 과장님께서 근무 중인 회사는 다른 건 몰라도 워라벨만큼은 확실한 곳이었다. 야근은 물론이거니와 주말, 명절 할 것 없이 일해온 나에게 '워라벨'은 아주 중요한 조건이었다. 일단 면접부터 보고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부랴부랴 준비하고 면접을 보러 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면접 결과는 초고속 합격이었다. 3개월 정도는 푹 쉬고 싶었는데 고작 3주 차에 재취업이라니. '이 또한 운명이겠지.' 하며 예정보다 빠르게 재취업을 결정했다.


기존에 수출을  업무로 해오던 나는 이곳에서 원자재 수입을 담당하게 되었다. 시시각각 바뀌는 국가별 정책에 맞춰 수출을 핸들링해야 했던 지난날에 비하면 수입 핸들링쯤은 식은  먹기였다. 물론, 수입도 무역조건인 인코텀즈(Incoterms) 화주(화물의 주인) 따라 난이도가 천차만별로 나뉜다. 다행히 내가 받은 업무는 무역조건도 간단했고 화주도 젠틀한 편에 속했다. 드디어 나에게도 '일과 삶의 균형' 생길  같다는 생각에 설렜다. 게다가 입사 전 마음속에 심어둔 '네 가지 원칙'은 나의 무기이자 방패가 되어 나를 지켜주었다.


예상대로 3개월, 6개월,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업무는 점차 안정기에 들어섰다. 매일이 순탄했다고 할 순 없지만 지난날에 비하면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정도의 강도였다. 하지만 힘듦을 토로하며 퇴사하는 동료들도 더러 있었다. 이미 개똥밭, 소똥 밭 할 것 없이 구르며 일해 온 경험이 거름이 되어 상대적으로 덜 힘들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계치를 올리는 데는 시간과 경험, 그리고 약간의 고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무슨 두루뭉술한 개 뼈따구 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잘 생각해보자.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취준생 때, 사회 초년생 때, 직장인 N연차 때. 우리에겐 각자 어떤 어려운 시기라는 것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 당시 가장 힘들었던 일들은 지금 돌이켜보면 '별 것 아닌 일'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그때보다 지금의 나의 한계치가 자연스레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계치는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다. 한계치가 높아지면 같은 상황에서도 조금 더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된다. 나는 이 것을 한계치력(力)이라고 생각한다. 체력이 높아지면 신체적 피곤함을 덜 느끼듯 한계치력이 높아지면 정신적 피곤함을 덜 느끼기 때문이다. 둘의 공통점은 삶의 질을 향상할 수도 저하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계치를 올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지금, 현재 나의 한계치가 어디까지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컴퓨터를 예를 들어보자. 내가 가지고 있는 컴퓨터의 사양이 구동하고자 하는 프로그램보다 월등히 낮다고 치자. 억지로 프로그램을 켤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정상적으로 구동이 되긴 어려울 것이다. 운이 좋지 않다면 먹통이 되어 고장이 나거나 아예 메인보드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나 역시 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고 냅다 달리기만 하다 결국 터져버렸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의 한계치를 파악해두고 그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몇 가지 '나만의 원칙'을 세워두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지난날의 나처럼 번아웃과 우울증, 예정에 없던 퇴사의 길과 멀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나는 한계를 뛰어넘는 사람보다는 한계를 계속 높여나가는 사람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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