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에스프레소

by 닭갈비

내가 캔커피를 마시던 시절 우리 집에 처음으로 일제 커피메이커가 생겼다. 업무차 일본을 오가는 이웃에게 엄마가 부탁해서 받은 제품이었다. 그전까지 봤던 커피 원두라고 하면 문방구 선물 코너의 방향제 꾸러미 속에 들어있던 것이 전부였던 터라 똑같이 생긴 것을 핸드밀(분쇄기)에 갈아 커피를 만들어 마신다는 사실이 오르골이나 스노볼을 갈아 마시는 것만큼이나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심리적 거부감과는 별개로 커피메이커가 생기고 얼마간 나는 막 전원이 들어온 작은 기계 앞에서 넋을 놓고 있었다. 본체 한쪽의 탱크에 채운 물이 데워지면 가느다란 관을 타고 고로록거리면서 역류하기 시작한다. 역류한 물은 분쇄한 커피 위에 떨어지고 잠시 후 투명한 유리 주전자에 커피가 흘러내린다. 전원을 넣으면 매번 벌어지는 일이었지만 나는 아직도 커피메이커에서 물이 역류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신문물이 생기면 대개는 그것에서 말미암은 다른 부수적인 물건이나 용어, 개념들이 딸려온다. 커피메이커에도 그런 것들이 있었다. 커피 원두와 핸드밀이 온전히 형태를 갖춘 부수물이었다면, ‘에스프레소’는 그렇지 못한 것이었다.

원두커피라는 것이 막 알려지던 시점이었다. 백화점 한쪽에서 핸드밀이나 커피메이커를 팔았고, 어느 회사 제품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꽤 다양한 원두도 있었다. 적당히 부푼 원두 봉투를 힘주어 누르면 봉투 가운데 뚫린 구멍(아로마 밸브) 사이로 원두향이 흘러나왔다. 엄마와 나는 매장을 돌며 어물전의 생선 더미를 쑤석거리듯 이 봉투, 저 봉투를 주물거렸다. 인스턴트커피의 향과는 확연히 다른 진한 향. 봉투에 적힌 에티오피아니 콜롬비아니 하는 바다 건너의 이름과 더불어 주무른 봉투에서 나는 향은 공감각적으로 이국적이어서 황홀했다. 에스프레소는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들어왔다.


하루는 엄마가 커피메이커에 분쇄된 원두를 넣으며 이게 ‘에스프레소’라고 했다. 어디서 얻은 원두 봉투에 그렇게 적혀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그 원두는 에스프레소용으로 블렌드 한 원두였을 것이다. 당시에는 에스프레소 머신이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고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가정용 머신을 구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물론 에스프레소 블렌드 원두를 머신으로만 마신다는 법은 없으므로 엄마가 그걸 커피메이커에 내려 마신 게 잘못은 아니었다. 다만, 그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이유는 엄마가 커피를 내릴 때마다 몇 번이고 에스프레소, 에스프레소, 를 연발했기 때문이다. 마치 그 단어를 여러 번 외치면 커피의 신이 우리에게 복을 가져다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그랬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때는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흔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유럽 어디선가 온 듯한 그 단어는 지금으로 치자면, TV 세계여행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오지의 토속 음식, 그러니까 굳이 예를 들려고 위키피디아를 뒤져 보자면 그린란드에서 고래, 순록 또는 바닷새 등으로 끓인 수프라는 수아사트나 짐바브웨에서 먹는 옥수수죽이라는 사드자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무슨 맛인지 가서 먹어 보고 싶지만 가는 것부터가 힘드니까 먹을 생각은 아예 할 수 없는 것 말이다.

상상해 보자. 누군가 그린란드 여행을 다녀오며 레토르트 포장된 수아사트를 사 온다면 난 그걸 한 숟갈 떠먹을 때마다 몰래 수아사트, 수아사트, 하고 중얼거릴 것 같다. 발음하기 낯선 그 단어는 성대를 울리고 목젖 뒤에서 터져 나와 혀와 잇새와 입술을 거쳐 말해질 때마다 아주 잠시라도 그린란드에 있는 것 같은 해방감을 줄 테니까.


문제는 그 에스프레소, 우리에게 해방감을 느끼게 해 준 그 에스프레소가 한참 뒤 내 인생에서 다시 나타난 방식이었다. 이것도 역사라면 역사이기에 한 번은 비극이었고, 다른 한 번은 소극이었다.

작가의 이전글컵커피를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