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의 시각으로
그날 내 시야를 노랗게 물들였던 문제의 컵커피는 내가 고등학교 때 처음 출시됐다. 언젠가 하굣길에 들른 편의점에서 그 커피를 집어 들었던 순간이 아직도 생각난다. 이전까지 내가 마시던 커피는 엄마 몰래 사 먹던 캔커피가 전부였다. 볼 만한 영화가 편성된 주말이면 미리 사 둔 캔커피를 따서 꼭 유리컵에 부어 조금씩 마셨다. 그게 주말 밤을 보내는 나만의 의식이었다. 안타까웠던 것은 어린 입맛에도 그 맛이 단맛을 빼고는 여러 모로 모자랐다는 것인데, 그걸 만회하기 위해 냉장고에서 꺼낸 액상 크림 한 개를 뜯어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 커피와 조우한 것이다. 음료 제품의 용기로는 처음 보는 플라스틱 재질의 컵과 거기 붙은 독특하게 생긴 빨대. 원료란에 적힌 콜롬비아, 아라비카 어쩌고 하는 단어도 꽤 이국적이었다. 커피를 마시려면 빨대를 양쪽으로 잡아당겨 고정시킨 뒤, 플라스틱 뚜껑에 난 구멍을 통해 은박 포장에 꽂아야 했다. 그리고 쭉 빨아올린 첫 모금.
조악한 내용을 파격적인 형식으로 포장하거나, 타성에 절은 형식에 혁명적인 내용을 담은 것들이 주목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에 계속 눈길이 머무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가 파격적인 형식과 혁명적인 내용이 맞아떨어질 때 열광한다는 걸 그 첫 모금은 내게 알려줬다. 풍부한 우유맛과 알맞게 쌉싸름한 커피맛의 기막힌 배합. 이런 커피는 기존의 종이팩이나 금속캔에 담기 아까웠다. 꾸준히 장복할 만했다.
이후 10년 가까이 그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다. 얼마나 자주 마셨던지 어느 날은 아빠가 커피를 상자째로, 오, 자비로운 아빠여, 사다 주기도 했다.
재밌는 건 내 파트너 H도 한때 어떤 브랜드의 컵커피를 중독 수준으로 사서 마셨다는 것이다. 2+1으로 마케팅하는 커피는 세 개씩 사기에 좋은 핑계를 줬다. 세 개를 사 들고 출근해서, 오전에 우울해서 하나, 점심 먹고 졸리면 하나, 저녁 먹고 힘내려고 하나. 스트레스가 심하면 퇴근길에 다시 세 개를 사 들고 집에 와서 못 끝낸 일을 하며 한두 개를 더 마시기도 했다. 그런 속도로 마셔대면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기가 민망해진다. 한창 때는 모였던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을 때, 부피를 줄이려고 컵을 포개 놓고 보면 그 높이가 대략 무릎 높이까지 왔다.
“수거해 가는 아저씨들 중 절반 이상이 이 커피 사서 마셨다에 한 표.”
적어도 H의 직장 동료는 나의 예상에 근접한 반응을 보였다. 당연하지 않은가. 어떤 동료가 같은 커피를 매일 세 개씩 사 들고 출근한다면 그의 집안과 삼국시대부터 척을 지지 않은 한 그게 도대체 무슨 맛인지 물어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게 그렇게 맛있어요?”
“내가 커피 회사에 제보해 볼까? 공장에서 여기까지 관을 깔아 주거나 적어도 바이럴 마케팅에는 써 줄 것 같은데?”
그 기세가 너무 대단해서 나도 마셔 봤다. 물론 구관이 명관이다. 고등학교 때 그 커피의 맛에는 못 미친다. 그래도 버금은 갔다.
“맛있지? 맛있지?”
나쁘지 않은 반응을 눈치챈 H가 동의를 강요하는 표정으로 묻는다. 내가 달리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시중 가격보다 조금 더 저렴한 인터넷에서 두 상자씩을 H의 집으로 배송해 줬다. 오, 나의 자비로움이여. 원색 용기에 담긴 컵커피 스무 통을 가득 채운 냉장고는 앤디 워홀의 작품 <캠벨 수프 캔>처럼 포스트모던했다.
여느 공산품처럼 컵커피 역시 시간이 흐르며 많이 변했다. 벤치마킹한 제품이 경쟁사에서 연이어 출시됐고, 출시 몇 주년을 기념해서 제조 방식이 바뀌었으며, 물가가 오르면서 이제는 가격도 그 시절의 세 배에 가까워졌다.
고등학교 시절 첫 모금의 날카로운 추억은 뒷걸음쳐서 사라졌다. 수많은 회사가 다양한 제품들을 내놓지만 공산품 커피의 갈래라는 것은 결국 셋이다. 쌉쌀한 라인, 달달한 라인, 부드러운 라인. 각각 이름에 블랙 혹은 다크, 스위트 혹은 슈가, 마일드 등의 수식어를 붙여 자신의 유일무이함을 외친다. 안타깝게도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은 아직까지 없었지만.
그러니 컵커피가 겪은 이런 일련의 변화 중 어떤 것도 달가울 수가 없다. 그중에서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건 용량을 늘린 ‘큰 컵’ 제품이 나왔을 때였다. ‘단’ 음료로 한 번에 마시기엔 영 부담스러운 크기였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컵커피의 마지막 모금을 마실 때면 늘 고개를 젓게 된다. 그러면서도 잊을 만하면 하나씩 사고 또 후회한다. 아무래도 첫 모금의 추억은 매우 힘이 센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