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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똥구리 Jan 14. 2024

선유도 여행

"쉬엄쉬엄 걷고 싶다"

  고군산 군도에는 선유도, 신시도, 무녀도 등 예순세 개의 섬이 있다. 지금 몇몇은 섬이라 부를 수 없다. 섬끼리 이어지고 육지와 연결되었으니 이제는 섬일 수 없다.


  어느 가을 선유도에 여행을 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위, 도로 끝이 하나의 점으로 모아지는 쭉 뻗은 새만금 방조제를 달리다 보면 옥도면 신시도에 대각산이 있다.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대각산 가운데 골짜기를 올랐다.


  대각산은 산이라 하기엔 민망한 수준의 해발 고도(188m)를 보이는 낮고 작은 산이다. 그럼에도 대각산 정상에 오르면 그 감동은 천 미터 고봉에 오름에 뒤지지 않는다. 푸르게 푸르게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그 자체로 감동이었고 점점이 떠 있는 조그만 섬들은  귀여운 장난감 같았다. 섬과 섬 사이 네모반듯 깔끔하게 정돈된 김 양식장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바다에 접한 산이라 조금만 올라가도 풍경은 그만이었다.


  섬을 넘어 내려가니 작은 들판이 펼쳐 있었다. 백 년 전에는 바다였을 곳이다. 섬 속 산과 산 사이 조그만 바다를 막아 펼쳐 놓은 곳이다. 둑 위를 걸었다. 바다 위를 걸었다. 가을 햇살에 하늘거리는 익은 벼와 소금기 머금은 갈대숲이 어우러져 더없이 한가로운 풍경이었다.


  그때 고군산에는 섬과 섬을 잇는 교량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군산까지, 군산에서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고 선유도까지 단숨에 갈 수 있다. 그것이 모자라 신시도-무녀도-장자도-선유도를 잇는 다리와 도로를 놓고 있었다.


  선유도까지 굳이 고속화 도로를 만들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산을 깎고 바다를 메워가며 아스팔트 길을 내는 광경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오랜 세월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 낸 바닷가 절경이 어느 순간 거대한 콘크리트 무덤이 되고 있었다. 대교와 도로가 완성되면 사람들은 선유도를 편하고 빠르게 다녀갈 것이다. 이제 선유도는 신선이 노니는 섬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섬 중의 하나이고 좀 넓은 주차장이 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선유도에 가는가? 아무리 좋은 곳 어디라도 휙 둘러보면 아무것도 볼 것도 느낄 것도 감동도 없다. 그 안에서 그 안의 바다와 그 안의 숲과 그 안의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있고 그제야 온전한 내 경험이 된다.


  고군산에는 높진 않지만 바다 풍경이 아름다운 산과 아담하지만 한가로운 들판이 있었다. 섬과 섬끼리 이어주는 작은 다리로 서너 시간 걸어가면 안 될까? 산을 넘고 들을 질러 쉬엄쉬엄 둘러 가면 좋지 않을까. (15.6. 17, 24.1.4) ⓒphotograph by soddongguri('1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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