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로 옮긴 후 방에 TV가 없었다. 마침 집에 안 쓰는 라디오가 있어서 가지고 내려왔다. 중학생 때, 충만한 감수성에 좁고 낮은 다락방에 내 공간을 만들었다. 그 다락방에서 별밤을 들으며 달콤한 상상에 빠지곤 했다.
이왕 혼자 있는 동안 그때처럼 라디오를 들으며 지내자 싶었다. 전원 플러그를 꽂고 라디오를 켰지만 전파가 잘 잡히지 않았다. 안테나를 뽑아 주파수를 잡아보려 했지만 고장이 났는지 한 뼘 이상 뽑히지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안테나를 뽑으려 손으로 잡는 순간에는 소리가 잘 나왔다. 내 몸이 안테나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내내 붙잡고 있을 수는 없으니 라디오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아침, 문득 라디오 옆에 노트북 충전기가 보였다. “혹시?” 뭔가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갔다. 충전기 플러그를 라디오 안테나에 엇갈리게 걸어 보았다. 과연 잡음 없이 깨끗한 소리가 나왔다!
허공은 허공이 아니었다. 수많은 전파로 가득 차 있었다. 눈에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지만 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들을 붙잡기 위해서는 안테나를 길게 뽑아야 한다.
세상에는 또한 많은 생각과 진리가 있을 것이다. 이들도 라디오 전파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고 더 많은 잡음 속에 들어있다. 의식적으로 안테나를 길게 뽑아 세우지 않으면 의미 있는 소리를 잡을 수 없다.
그런데, 무엇이 세상에 대한 안테나일까? 세상의 진리를 붙잡을 수 있는 안테나는 무엇일까?
(16.4.7, 2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