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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애 Sep 26. 2022

남편 이야기(1)

-(설마, 안 보겠죠?) 남자의 눈물은 귀하다.

"그러니까 그 애들이 그래요. 참 착한데 상황이 힘들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처음 만난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던 것은 바로 지금은 내 남편이 된 '그 남자'이다.

그러니까 그게 만난 첫날 밥 먹는 자리였다.


당시에 나는 남자들을 많이 만났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도 많았고, 소개받는 사람들도 많았다. 바로, 그 뭐라고 하더라, 인생에도 결혼 적기가 있어서 많은 남자들을 만나게 되는 그런 때가 있다던데 바로 그때였나 보다. 교회에서 리더십도 하고 학교에서는 동료 교사들과 아이들을 만나고, 소개팅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느라 남자든 여자든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다녀야 했던 때라서 나는 거의 전문가에 필적하는 다른 사람 접대용 기술을 익히고 있었다. 속상하고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있어도 수업을 해야 하거나 사람을 만나면 바로 웃을 수 있는 전문가 정신이 몸에 배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침묵이 흐르는 어색한 상황들을 잘 커버하기 위해 말을 많이 해야 하는 편이었다. 나 자신을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판단했었던 나는, 내가 그런 과정을 통해 힘을 얻고 있고, 잘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을 처음 만났던 날은 정말 나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 전날까지 교회에서 교역자님들을 모시고 지방에도 내려갔다 와야 했어서 몹시 피곤할 뿐 아니라 매우 졸렸다. 그렇지만 그날의 소개팅은 내가 몹시 좋아하고 따르던 전도사님이 주선한 자리였어서 졸리다고 막 취소하기가 그랬었다. 억지로 내키지 않는 몸을 이끌고 나간 그 자리에는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나온 청년이 서 있었다. 

그 청년은 내가 피곤한 걸 아는지 모르는지 말을 엄청 많이 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자리에서 나보다 말을 많이 하는 남자는 처음 본 것 같았다. 어쨌든 피곤했는데 말은 덜 해도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당혹스럽게도 남자는 교회에서 자신이 맡은 중고등부의 아이들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경우는 정말 살다 살다 처음이라 반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공감을 해 주긴 하는데. 그런데 당혹스럽기는 해도 나는 처음으로 내가 말을 덜 하고 들으면서 쉴 수 있는 상황에 만족해하고 있었다. 나는 아마 극도의 외향성 인간은 아니었나 보다. 나도 쉬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보충할 시간이 필요한 정도는 내향적인 성향이 조금은 있었던 것이다. 아, 그래서 결혼을 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 남자는 그 후에 남자 친구가 되었고 결혼을 약속한 사이가 되어서 우리 집에 인사를 왔을 때도 눈물을 보여서 나를 몸 둘 바 모르게 만들었고, 내가 속상한 일이 있어서 의논할 때도 먼저 울며 공감해주었다. 늘 내가 해야 했던 역할인 공감하고 들어주고 울어줘야 했던 역할이 조금 바뀐 것이 편하게 느껴졌다. 상대방이 더 잘 울고 조금이나마 공감해주려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결혼 후에 시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남편의 눈물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어머님도 이야기하시면서 같은 이야기 같은 지점에서 눈물을 계속 보이시는 게 아니겠는가. 


아, 그냥 유전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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