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야 줘, 기회는.
“아니, 글을 쓰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수가!”
매일매일 쉴 새 없이 글을 써대던 나는 빈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한 자도 타자를 치지 못한 채 얼이 빠진 얼굴로 탄식했다. ‘우연이 인연이 되는 기적’이라는 글감이 주어진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빈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릿속에 갑자기 ‘꽃보다 남자’라는 만화책 내용이 떠올랐다. ‘우연’히 재벌 남자랑 만났는데, 그 남자가 나를 좋아하게 되고 그래서 벌어지는 드라마틱한 ‘인연’에 관한 이야기가. 내 삶에 그런 게 있던가? 그 정도는 돼야 읽는 사람들이 재미있어하지 않겠는가.
나는 우연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가운데 일어나는 것들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주어지는 상황 가운데 ‘선택’을 할 수 있다. 바로 그 ‘선택’이 우리 인생이 엄청 재미있어지는 포인트인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결혼 적령기 때 만난 많은 남자들 중에 지금의 남편이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인도하심일지 몰라도 그 사람을 선택한 것은 나였다. 그 당시에 연애 고수였던 동료 선생님에게 남자들이 보내온 문자들을 보여주며 상담을 요청했을 때,
“이 사람이 제일 재미없는 사람인 것 같으니 이 사람만 빼고 다 괜찮은 것 같아.”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꼭 찍어서 그 사람이랑 결혼 한 나는 바로 그 ‘선택’을 한 것이다. 음, 그래서 ‘우연이 인연이 되는 기적’이라는 글을 쓰려고 할 때 남편과 만났던 일을 쓸까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남편에게,
“우리 만나서 결혼한 것이 우연이 인연이 된 것이 아닐까?”라고 말하니까 대뜸,
“오, 아니지, 우리는 필연이지.”라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아, 필연이었구나. 헐, 몰랐네.
따지고 보면 내가 ‘영어 교사’가 되게 된 것도 처음부터 열망해서 된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 ‘우연’히 주어지는 ‘인도하심’ 가운데에서 계속되는 ‘선택’을 하고, 그것이 나를 ‘교사’로 만들었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을까?’
나는 늘 처절할 정도로 이 문제를 고민했지만, 답은 늘 알 수가 없었다. 세상의 직업들을 다 경험해 볼 수는 없고, 어떤 직업들이 있는지 다 알 수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적성에 맞지 않는 ‘전자·전기 공학부’를 다니다가 다시 시험을 봐서 ‘영어교육과’에 갔다. 두 번째로 한 ‘선택’이었지만 그것도 딱히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학교를 졸업할 때가 다가올수록 영어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러면 대체 거긴 왜 갔을까. 뚜렷하게 뭐 하나 하고 싶은 일이 있었으면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겠는가. 그리고 마치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듯이 떠밀려서 ‘영어 교사’로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아이들을 보면 애정이 샘솟았던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낯설고 힘든 존재였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사랑해주고 인도해주었다. 바로 이 포인트가 내가 교사로서 살아가게 만들어 준 ‘기적’이 아닐까.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만 좋은 교사가 되는지 알 수 없었던 나를 의지해 주었고 나와 의논해 주었고 심지어 나를 격려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차차 마음을 열고 기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지금은 삐딱하게 앉아서 ‘나 너 싫어, 영어도 싫어.’를 온몸으로 발산하고 있는 학생을 만나도 이해하고 싶고 예뻐할 수 있는, 늘 진심을 다 주고 싶어 하는 ‘교사’가 되었다. 아마 아이들에게 받은 사랑이 많아서 차차 그 사랑을 돌려주고 싶게 된 것이 아닐까.
어쨌든 나의 삶에 일어난 쉼 없는 그 ‘우연’들, 바로 그 ‘인도하심’ 속에서 나는 남편을 선택하고 직업을 선택했다. 앞으로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게 될지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우연’이라고 불리는 ‘인도하심’ 가운데를 걸어가려고 한다. 언제 무엇을 어떻게 만날지 어떻게 알아. 하지만 만나면 기쁜 마음으로 꽉 잡아 안아주며 말해줘야지. ‘오, 너 잘 만났다. 내가 얼마나 너를 기다렸는데.’ 그러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