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고추장무침은 못 참지.
어렴풋한 기억으로 어릴 적 엄마의 손가락 끝 피부가 너덜너덜했던 게 떠오른다. 엄마는 항상 손가락 끝이 그랬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뭇거뭇하기도 해서 좀 지저분해 보였다.
어린 나이에 내가 뭘 알았겠는가. 그저 엄마는 손가락이 끝이 그렇게 생겼는 줄 알았다.
주부가 되어보니 나물 다듬고, 멸치 다듬다 보면 손가락 끝 손톱 밑이 지저분해진다. 다듬기를 끝내고 곧장 따뜻한 물에 불려서 손을 닦고 핸드크림으로 잘 관리한다면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겠지만, 어디 일상이 그러한가.
이거 끝나면 저거 해야 하고 저거 다 하면 또 다른 일을 하다가 잘 즈음에야 꾸역꾸역 양치하고 뻐근한 허리 침대에 눕히면, 그대로 그 푹신한 무생명체와 하나가 되어 버린다.
멸치를 다듬으면서 조심하려고 주의를 기울였지만 잠깐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 사이 가시에 찔려버렸다. 어딘가에 가시가 박혀 있어서 까슬대고 찌릿한데 어딘지 보이지 않는다.
젊고 싱싱한 안구를 가진 딸아이에게 부탁하고, 핸드폰으로 접사촬영을 해서 봐도 도무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딘가를 손가락이 스치면 찌릿하다.
딸과 둘이서 눈을 크게 뜨고 손가락 끝을 이리저리 훑다가 내가 먼저 포기해 버린다.
"지가 언젠가는 나오거나 아님 들어가서 어딘가 떠돌거나, 아무튼 귀찮으니 관두자."
‘그런데... 엄마의 손가락에도 멸치 가시의 수많은 공격이 있었겠지?’
엄마의 멸치볶음은 좀 달랐다.
아주 투박하고 평범한데 적당한 고추장의 풍미와 짭짤하고 달달한 맛이었다. 이젠 음식을 만드실 수 없을 정도로 편찮으시고... 나도 곧 고아가 되겠지......
육아를 하다 보면 멸치볶음은 마치 필수 음식처럼 배워야 하는데, 내가 아는 방법은 기름 없이 볶다가 기름과 양념을 넣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기름에 볶다가 양념을 넣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 방식은 영... 추천하고 싶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름 절은 내가 음식에 베여있어서 맛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오늘의 메인은 엄마표 멸치볶음>으로 해야겠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맛을 떠올리며 새로운 방법으로 시도해 본다.
다듬은 멸치는 강하지 않은 중간 불로 기름 없이 충분히 볶아주는데, 이래야 기름 절은 내와 비린내를 다 잡을 수 있다.
멸치가 건조해진 듯하면 타기 전에 불을 끈다. 사실 타지만 않는다면 좀 오래 볶아도 좋다.
멸치를 잠시 볼에 옮겨 담아두고 그 팬에 그대로 조금의 물, 고추장과 간장, 설탕과 다진 파, 마늘이 들어간 양념을 끓인다. 보글보글 적당히 끓으면 불을 끄고 볼에서 기다리던 멸치를 투하하고 뒤적뒤적하면서 양념을 코팅한다.
나도 이렇게 하는 방법은 처음이라서 몰랐는데, 이것은 ‘멸치 고추장무침’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보다.
양념 코팅이 잘 된 멸치 고추장무침은 막 해서 뜨끈한 밥에 조금씩 올려서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이 반찬 하나로 식감과 고추장 맛과 짭조름한 맛에 달콤한 맛까지 다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서운하면 조미김을 추가해도 되겠지만, 다시 한번 말하는데 그냥 ‘멸치 고추장무침’을 믿고 갓 지은 밥만 준비해도 후회하지 않는다.